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몇 년간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무거운 사법적 굴레를 짊어진 경영자였다. 국정농단 사건, 경영권 승계 의혹, 회계 부정 논란 등으로 인해 ‘산 넘어 산’식의 재판이 이어졌다. 결국엔 한동안 영어의 신세가 되기도 했다.그러다보니 이 회장 본인 뿐 아니라 그를 보좌하는 경영진들에게도 ‘사법 리스크 탈피’가 지상과제가 됐다. 자연스레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잦아졌고 글로벌 투자·M&A 전략의 속도도 눈에 띄게 둔화했다.이렇게 이 회장과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주
한국 경제가 끌어안고 있는 해묵은 화두가 하나 있다. 바로 ‘생산적 금융’이다. 이 용어는 ‘금융의 역할은 실물경제, 즉 생산과 투자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경제학의 오래된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도 자본의 성격을 산업자본(생산적)과 이자생산자본(비생산적)으로 구분한 바 있다.하지만 한국에서 생산적 금융은 구호로만 강조돼 왔을 뿐, 현실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한 채 미결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새삼스레 생산적 금융을 화두로 던진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금융권
국회가 지난 24일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정식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제3조 개정안’이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약칭은 2014년 한 시민이 쌍용자동차 노조에 4만7000원의 성금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낸 데서 유래됐다. 4만7000원은 당시 법원이 노조에게 물린 손해배상금 47억원의 10만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노란봉투법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 기업 노조의 교섭 대상에 원청 기업도 포함되도록 했다. 둘째, 쟁의행위 대
사위가 어슴프레한 동틀 녘, 또는 해질 녘. 목동들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짐승이 양치기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관용어를 만들어 냈다.우리 경제도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개인지 늑대인지 헷갈리는 대상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이다. 이 법은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취지대로만 된다면 개정 상법은 한국 증시의 양치기
이재명 정부의 요직이 속속 채워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선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AI수석)이다. 우선 정치와 아무 인연도 없는 민간 전문가라는 점이 참신하다. 직책이 이전 정부에서는 없었던 자리라는 점도 그렇다. 이재명 정부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AI수석 자리 신설과 인선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각설하고, 차제에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재익 수석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김 수석은 1980년대 초 혼란기의 대한민국 경제를 안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은 내우외환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나라 안에서는 전임 대통령의 병정놀이가 초래한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쏘아올린 관세 폭탄으로 무역 전쟁이 불붙었다.이중 더 우려되는 것은 외환이다. 내우는 어찌됐건 6.3 대선을 치르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수습의 가닥이 잡힐 것이다. 반면 무역전쟁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무역전쟁은 트럼프가 지난 4월2일 소위 ‘liberation day 선언’과 함께 관세 폭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됐다. 폭격의 주 타깃은 중국이었다
지난 2월 X(옛 트위터)가 내놓은 AI Grok3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일이다. ‘엘론 머스크의 스캔들은 어떤 게 있나’라고 약간은 짓궂은 프롬프트를 넣어봤다. 그러자 녀석은 스페이스X 승무원 성추행 의혹(2016)부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언쟁(2025)까지 8가지 이슈를 소상히 알려줬다. 한글로 2500자에 달하는 분량이었다.녀석의 강직함(^^)에 감탄하며 이번엔 DeepSeek에게 ‘시진핑의 스캔들은 어떤 게 있나’라고 물어봤다. 이 녀석의 답변은 한글로 딱 200자였다. 요지는 ‘시진핑은 항상 당과 국가의 발전, 국민의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핏빛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가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자신의 걸작 ‘절규(원제:Schrei der Natur)’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이 작품을 본 사람 중에는 그림 속 인물이 절규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뭉크의 설명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출근하다 길에 떨어진 100 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게 합리적일까. 정답은 돈에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그에게는 돈을 줍는 데 걸리는 1초의 시간이 100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놓치지 않던 시절 우스개처럼 돌던 얘기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기업하는 사람은 1분, 1초의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교훈(?)도 담겨 있다.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얘기가 떠올랐다. 이 회장이
하필이면 입춘에 매서운 한파가 찾아왔다. 덕분에 해마다 이맘때 회자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 말은 JP(고 김종필 국무총리)가 10.26 이후 등장한 신군부 세력을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원작자는 동방규(東方珪)라고 하는 당나라 시인이다. 그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오언절구에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노래했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는 뜻이다.그런데 이 시에는 오늘날에도 교훈이 될
‘화두(話頭)’는 불교 용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몰입하는 ‘생각의 실마리’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나왔지만 불가의 울타리 밖에서도 빈번히 사용된다. 경영계가 대표적이다. 해가 바뀌면 기업인들은 이런저런 화두를 쏟아낸다. 올해는 ESG, AI, 위기 등과 관련된 화두가 많이 언급됐다.그 중에도 눈길을 끈 것은 최태원 SK회장이 던진 ‘무역질서 변화’라는 화두다. 최 회장은 1월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무역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에서 ‘양자주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 세계 경제
[인사이트코리아 = 임혁 편집인] ‘…오늘날 세계는 이념과 체제를 떠나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제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자원과 기술은 무기화되었고 보호무역주의의 장벽은 더욱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1989)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외교도 우정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미국 새 정부의 등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위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1993) 기술 강국 일본은 활력을 되찾아 더 앞서 나가고 있고 빠른 속도로 추격해 오는 중국은 우리의 경쟁력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2007) 우리의 경쟁국들은 앞서 뛰어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올린 ‘비상계엄 뜬금포’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다. 연말 송년 모임에서도, 카카오톡의 단톡방에서도 화제는 온통 비상계엄과 탄핵뿐이다. 세상이 이 이슈 하나에 함몰된 듯한 분위기다.이런 와중에 9일 한 매체가 전한 뉴스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새 사령탑 한진만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취임 첫 메시지에 대한 소식이었다.한 사장은 이 메시지에서 뒤진 기술력과 저조한 수율 등 파운드리 사업이 부진에 빠진 원인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처방을 제시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 식으로 치면 철새 정치인이다. 그는 1985년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그러나 2년 후 공화당으로 이적했고 그 후에도 개혁당, 민주당, 공화당을 오락가락했다. 특히 아들 부시의 집권기엔 민주당원이었다가 오바마 시절에는 공화당원으로 변신했다. 연달아 두 정권과 반대편에 서는 선택을 해온 것이다.이런 행보가 보여주듯 그의 정치적 정체성은 진보-보수의 기준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흑묘백묘론 신봉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좌든 우든 관심 없고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준거의 틀
찜통더위가 물러가더니 어느새 출퇴근 때 선뜻한 냉기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은 그 냉기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조락(凋落)의 계절이 찾아왔다는 알림장이다.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런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변덕스러운 요물(?)이 눈에 밟힌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행태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4일 ‘3Q24 : Result In Line, Guidance Supports Consensus’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는 AI 관련주로서 랠리를 보였다”며 “SK하이닉스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단기적으로 틀렸다”고 시인
[인사이트코리아 = 임혁 편집인] 요즘 금융권 뒷담화의 주인공은 단연 우리금융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사건 때문이다. 금융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선 으레 이 얘기가 화제에 오른다.이와 관련해 급기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8일 국민과 고객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임 회장은 이날 긴급 임원회의 석상에서 예고에 없던 사과문을 내놓았다. 사과문에서 그는 “전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된 부당대출로 인해 국민들과 고객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
[인사이트코리아 = 임혁 편집인] “한국 금융인 중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요?”10년 쯤 전 황영기 당시 금융투자협회장을 만나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황 회장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박현주’라는 답을 내놨다. “글로벌 자본시장에 대한 안목이나 투자를 결정하는 배포 면에서 박현주 만한 인물이 없다”는 평과 함께.지난 3일 국제경영학회(AIB)가 ‘2024년 최고 경영자상’ 수상자로 박현주 회장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1982년에 제정된 이 상은 글로벌 경영인에게 주어지는 상
법학에서 가르치는 세 가지 ‘법의 사명’이 있다고 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다. 첫째는 ‘정의’다. 여기에는 번거로운 설명이 필요 없다. 둘째는 ‘합목적성’이다. 법은 국가의 목적에 맞추어 형성되고 운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안정성’이다. 법의 제정과 시행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법적용은 상식에 부합하고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요구일 터다.요즘 세간의 화젯거리로 떠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 판결을 접하고 법의 이 세 가지 사명을 떠올렸다. 이번 판결이 과
지난 주말 정부가 한바탕 해프닝을 벌였다. 해외직구에 대한 규제를 두고서였다. 정부는 16일 아동용품 34종과 전기·생활용품 34종, 생활화학제품 12종 등 총 80종에 대해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제품의 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른바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라고 하는 중국계 플랫폼들을 통한 해외 직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따른 대처였다.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곧바로 비판에 직면했다. 우선 소비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라는 지적이었다. 어느 네티즌은
선거가 끝났다. 민심의 판정은 분명했다. 참패한 여당은 시쳇말로 '멘붕' 상태다. 반면 대승을 거둔 야권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잔칫집 분위기다.그러나 그 기간은 짧아야 한다. 선거엔 졌지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건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다. 그들이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댄다면 국가적으로 큰일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마냥 승리감에 도취해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그런 점에서 정치권에는 이제 선거 국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싶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라 밖으로도 눈을 돌려 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