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쏘아올린 ‘비상계엄 뜬금포’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다. 연말 송년 모임에서도, 카카오톡의 단톡방에서도 화제는 온통 비상계엄과 탄핵뿐이다. 세상이 이 이슈 하나에 함몰된 듯한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9일 한 매체가 전한 뉴스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새 사령탑 한진만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취임 첫 메시지에 대한 소식이었다.
한 사장은 이 메시지에서 뒤진 기술력과 저조한 수율 등 파운드리 사업이 부진에 빠진 원인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처방을 제시했다. 특히 “사업부 리더들은 임직원들이 불필요한 보고서 작성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 달라“며 조직문화 혁신도 당부했다. ‘과도한 보고서’의 폐해는 최근 삼성전자 OB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던 문제인데 한 사장이 현직 경영진 중 처음으로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한 사장은 아울러 “내년에는 가시적인 턴어라운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 사업부가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사업부로 성장하리라 확신한다”며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한 사장의 이 같은 행보에 기자는 신선함과 함께 일종의 안도감도 느꼈다. 단순히 그의 메시지 내용이 희망적이어서가 아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경영자들이 있음을 확인하는데서 오는 안도감이다.
대부분의 CEO(최고경영자)에게는 이 즈음이 연중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대내외 기업 환경을 차분히 점검하고 사업계획 수립에 올인해야 할 때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이, 더 넓게는 정치권이 분탕질을 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당장 경영의 큰 변수인 금리와 환율이 요동치면서 내년에는 어떻게 움직일지 전망하기가 난감해졌다. 기업들이 참고해야 할 정부의 내년 경제운용계획도 제때에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상목 부총리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획재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치권의 ‘내각 총사퇴’ 압박으로 정작 그 자신의 거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처럼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안개 속일 때 그 안개를 헤치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은 오롯이 CEO의 몫이다. 한 사장이 취임 첫 행보로 회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메시지를 던진 것은 그런 역할에 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사장의 행보는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영어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구름이 해를 가려도 구름의 테두리는 환하게 빛난다는 뜻으로 역경 속에도 희망은 있다는 의미다. 한 사장처럼 세태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CEO들이야말로 작금의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주는 실버 라이닝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