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요직이 속속 채워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선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AI수석)이다. 우선 정치와 아무 인연도 없는 민간 전문가라는 점이 참신하다. 직책이 이전 정부에서는 없었던 자리라는 점도 그렇다. 이재명 정부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AI수석 자리 신설과 인선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각설하고, 차제에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재익 수석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김 수석은 1980년대 초 혼란기의 대한민국 경제를 안정화 시킨 주역이다. 뿐만 아니라 아니라 그는 한국이 훗날 IT강국으로 발전하는 초석도 다졌다.

TV예능프로 ‘아는 형님’에서 개그맨 이수근의 유년 시절 생활상이 소재가 된 적이 있다. 1975년생인 이수근이 본인의 어린 시절,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에 자석식 전화기만 있었다고 말한다. 이에 서장훈 등 다른 출연자들은 “그 시절에 자석식 전화기가 웬말이냐”며 믿어주지를 않는다. 이들의 갑론을박은 결국 전화로 연결된 이수근의 부친이 아들의 기억이 맞다고 증언(?)해 주면서 결론이 난다.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듯 1980년대 초까지도 한국은 통신 후진국이었다. 이수근의 고향같은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가정집에 전화를 이전 설치하려면 거액의 웃돈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백색전화다.

이런 실정에서 197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떠난 김재익은 통신 기술이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전자 교환기(TDX)로 진화하는 것을 목도했다. 귀국 후 경제기획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한국도 TDX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관료들과 전화기 제조업체들은 반대했다. “우리 경제 수준에는 무리”라거나 “아직 쓸 만한 기계식 교환기를 버리는 건 예산과 외화 낭비”라는 등의 이유였다. 심지어 김재익이 미국 통신장비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루머가 돌아 중앙정보부에 불려가는 고초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과 반발에도 김재익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기획국장 재직 중 TDX개발 프로젝트를 논의하는 관계부처 차관회의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이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분들은 역사에 을사오적과 같은 죄인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아 결국 안건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김재익은 이런 결기와 열정으로 대한민국의 통신혁명에 불을 당겼다. 대한민국이 IT강국으로 일어서는데 이바지한 그의 공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통신 선진화를 예산 및 정책상 우선순위에 배정한 것이고, 둘째는 ▲통신 산업의 점진적 민영화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며, 셋째는 ▲정보통신(IT)의 산업적 가치를 정부 내에 처음으로 인식시킨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전인미답의 AI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챗GPT의 등장 이후 미국, 중국 등은 앞다퉈 새로운 AI도구를 쏟아내는 중이다. 신작들의 진화 속도도 점입가경이다. 작년 9월 노트북LM에 새로 장착된 '오디오 오버뷰'는 1시간이 넘는 동영상 강연도 순식간에 요약해 팟캐스트 형식의 오디오로 들려준다. 그 성능이 경이로울 정도다.

이러다보니 아차 한눈을 팔면 하루아침에 AI후진국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하정우 수석은 이런 상황 속에 글로벌 AI 전쟁의 사령탑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반세기 전 남다른 인사이트로 통신강국의 초석을 다졌던 김재익 수석처럼 하정우 수석이 AI강국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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