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방산 4사 중 유일한 실적 하락
7월 강구영 전 사장 사퇴 이후 2달째 공석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전경.<KAI>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전경.<KAI>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대형 방산 사업 수주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리더십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랙호크 성능개량 사업과 전자전기 체계 사업 모두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내주면서 KAI의 올해 수주 달성률은 2년 연속 목표치를 밑돌 가능성이 커졌다. 

실적 역시 기대치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경쟁사들은 모두 ‘K-방산’ 수출 호황 속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반면 KAI는 올해 상반기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KAI) 중 유일하게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업계 일각에선 이재명 정부가 하루빨리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운 전문성을 갖춘 신임 사장을 선임해 KAI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임 강구영 사장은 윤석열 대선캠프 출신으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KAI는 수출입은행이 지분 26%를 보유한 대주주이기 때문에 정부가 KAI 사장을 뽑는다.

KAI, 연이은 수주전 고배...3조원 놓쳤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최근 한국형전자전기 체계 개발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2034년까지 전자전기 4대를 확보하는 사업으로 정부가 확보한 예산은 1조9000억원(공고상 1조7775억원)이다. 체계 개발부터 양산까지 포함한 규모다. 

방사청은 현재 제안서 평가 후 디브리핑·이의 제기 여부 확인, 평가 결과 검증 등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KAI-한화시스템 컨소시엄이 결과를 뒤집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전자전기는 적의 대공 레이더와 통신망을 무력화해 아군의 공세를 지원하는 특수 항공기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일부 국가만 보유한 고도 기술 무기체계로 한국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독자 전력화를 추진한다. 방사청은 외국산 중형 민항기인 캐나다 봄바르디어 G6500을 개조해 전자전기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KAI는 지난 4월 약 1조원 규모 블랙호크(UH-60) 성능개량 사업에 이어 다시 한번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당시 상당수 업계 관계자들은 블랙호크 원 제작사 시콜스키와 한 팀을 꾸려 입찰했고 헬기 개발에 강점이 있는 KAI가 수주할 것으로 관측했지만 예상을 깨고 대한항공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연이은 패배가 단순한 불운이 아닌, 구조적 한계라고 해석한다. 대한항공은 기체 개조·정비(MRO) 경험과 LIG넥스원의 전자전 장비 기술을 결합해 ‘시스템 통합 능력’에서 앞섰다는 평가다. 반면 KAI는 항공기 플랫폼 제조 역량은 뛰어나지만 유지보수와 전자전 등 통합 솔루션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격차는 해외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은 단순 기체 공급을 넘어 성능 개량·전자전 대응·장기 유지보수 패키지까지 포함한 종합 제안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리더십 공백이 부른 의사결정 지연...노조 “차기 사장 조속 임명“

리더십 공백도 수주전 패배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KAI는 강 전 사장이 퇴임한 지 두 달이 넘도록 차기 사장 인선이 지연되면서 의사결정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 차재병 부사장이 대행 체제를 이끌고 있지만 대형 프로젝트 협상이나 해외 고객 신뢰 확보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될수록 전략적 판단이 늦어지고 사업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KAI는 수주전 패배뿐 아니라 실적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KAI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52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 감소했다. 방산 4사 가운데 매출이 줄어든 곳은 KAI가 유일했다. 같은 기간 수주 달성률이 37.4%에 그친 영향으로 분석된다. 

내달 열릴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등 대외 행사를 앞두고 경영 리더십 부재는 KAI의 대외 신뢰에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KAI 노동조합(노조)도 조속한 사장 선임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차기 사장을 조속히 임명해 책임경영을 복원하고 자금과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시급하다“며 “사장 공백이 길어질수록 경영과 개발의 속도는 늦어지고 KAI가 쥐고 있던 산업 내 주도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사장 공백 상태로 ADEX 2025 전시회를 맞이한다면 기회는 사라지고 KAI는 국제적 신뢰마저 잃게 될 것“이라며 “신임 사장은 사업 수주에 앞장서며 현장을 존중하고 산업 생태계를 꿰뚫어보는 전문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KAI 신임 사장 후보로 내부 출신 1명, 관 출신 1명을 유력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대주주 수출입은행도 행장이 공석 상태라 최종 선임은 빨라야 다음 달 초 이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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