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걱정돼서 잠이 안 온다“

최근 우연한 기회가 생겨 지인 친구인 HMM 직원 A씨와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3년여 전 결혼해 막 2살이 된 딸을 두고 있는 초보 아빠다. 지난해 소위 ‘영끌‘을 해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했고 양가 부모님 도움과 역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연차를 쓰며 육아를 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A씨는 가끔 버거울 때도 있지만 하루하루 커나가는 아이를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 5월 고난이 찾아왔다.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 HMM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현재 본사는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1‘에 있다. 지난해 말 기준 HMM 임직원 1890명 중 900여명이 서울서 근무 중이다. 

본사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A씨는 400km가 넘게 떨어진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 아내, 딸과 떨어져 하루아침에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은 물론,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부산 숙소 마련, 교통비, 식비 등 본사를 이전하지 않으면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덤이다. HMM에는 A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은 벌써부터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공약이 발표되고 초기만 해도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본사 이전이 현실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HMM은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막상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수많은 공약 가운데 하나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였다. 

산업은행 사례를 봤을 때 이 같은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후보 시절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공약했지만 취임 이후 직원 반발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HMM은 최대주주인 산업은행(36.02%)을 비롯해 한국해양진흥공사(35.67%), 국민연금(5.16%) 등 정부 지분율이 71.69%에 달하지만 엄연한 민간 기업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산업은행과는 결이 다르다. 산업은행 이전도 쉽지 않은 데 HMM 본사 이전 난이도가 훨씬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대선 직전 “근로자들을 설득해서 동의를 받되, 끝까지 동의하지 않으면 그냥 이전하겠다”며 HMM 본사 이전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190석이라는 든든한 국회 권력을 등에 업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업계 관계자들이 간과한 것이다.

실제 대통령 당선 이후 부산 내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전재수 의원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지명하며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연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부산 출신 전 후보자는 HMM 본사 이전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HMM으로선 대통령에 이어 또 하나의 강적이 등장한 셈이다.

이 대통령이 북극항로 개척을 통해 부산을 해양강국 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 아래 HMM 본사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 차원에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사안이다. HMM은 바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해운사이기 때문에 부산항이라는 국내 최대 항구가 위치한 부산에 본사를 두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A씨처럼 본사 이전과 관련돼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직원이 태반이고 HMM 앞에는 SK해운 인수, 매각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전임 정부의 오만과 불통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만큼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속도 조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려주길 기대해 본다.

심민현 인사이트코리아 기자
심민현 인사이트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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