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 '300억 SK 유입' 이유로 재산분할 1조3808억 판결
300억 실제 존재하는지, SK에 유입됐는지 여부 불분명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후폭풍이 거세다. 두 사람 이혼 소송에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등장하면서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노태우 300억 비자금’
지난달 31일 두 사람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역대 최대인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재산분할 근거로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1991년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유입됐고,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후광 덕분에 SK그룹이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번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상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향후 이뤄질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쏠린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유무형의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지만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많기 떄문이다.
대법원은 형량이나 재산분할 액수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고, 하급심에서 법리를 올바로 적용했는지를 따진다. 이번 이혼 사건의 경우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SK에 유입된 게 맞는지 ▲유입됐다면 이것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지 여부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유입 여부에 대해 최태원 회장 측은 강하게 부인한다.
노소영 관장의 어머니 김옥숙 여사는 이번 재판에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쯤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지급했다는 증거로 두 장의 메모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8.4.1 현재’, ‘1999.2.12 현재’라고 적힌 메모에는 각각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김 여사의 메모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각으로 작성됐는지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재판부는 선경건설이 1992년 12월 노 전 대통령에게 발행한 300억원 상당의 약속어음 등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약속어음은 선경건설이 노 전 대통령 측에 300억원을 주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300억원이 SK에 들어갔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기업들로부터 4000억원을 거둬들여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본인이 국민 앞에 사죄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옥숙 여사 메모나 약속어음만으로 300억원이 SK에 유입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비자금을 거둔 전력으로 볼 때 거꾸로 SK가 노 전 대통령에게 현금 대신 300억원짜리 약속어음을 끊어줬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설사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로 유입됐다고 해도 아버지(노 전 대통령)의 불법자금을 딸(노소영 관장)의 기여로 보는 게 맞는지도 따져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논리라면 노 전 대통령 부인, 아들까지도 "SK 성장에 기여했다"며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항소심 판결이 SK 성장 역사를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SK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결혼할 때보다 기업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는 SK임직원과 주주들의 공이 컸다. 그럼에도 '300억 비자금' 유입을 근거로 최 회장 재산의 35%, 1조3808억원을 노 전 관장에게 분할하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툴 여지가 크다.
최 회장 측 “사돈 기업 특혜 없다...판결 편향적”
또 다른 쟁점은 SK그룹 석유·이동통신 사업 확장이 노 전 대통령의 특혜를 받았냐는 점이다. 재판부가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의 기여를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해 1심에서 특유재산으로 봤던 SK 주식을 분할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재산분할 액수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가리킨다. 원칙적으로는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선경그룹은 숱한 구설에 올랐다.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선경그룹과 포항제철, 코오롱 등 3사의 치열한 수주전 끝에 선경그룹이 최종 사업자로 낙점됐다. 사돈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거세자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난 뒤인 1994년 SK그룹은 민영화된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인수하고 1999년 신세기통신을 품으며 국내 제1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됐다. SK 측은 특혜가 아니라 노태우 정부 이전부터 통신업을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1984년 미주경영기획실 내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한 뒤 오랫동안 정보통신사업을 준비해온 것이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최 회장의 변호인단은 항소심 판결 이후 입장문을 통해 “항소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 그간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며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