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 임시 회의 열고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에 '유감' 표명
SK "통신사업은 1984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
이통사업 진출에 참여한 현직 CEO "특혜 없었다" 체험담 증언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후 이같은 입장을 내놨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SK가 성장해온 역사'라는 문구다. 서울고법이 이번 판결에서 SK의 성장을 노태우 정부와의 ‘정경유착’ 결과로 치부한데 대한 항변의 뜻이 담겨 있다.
최태원, “SK 성장史 부정한 판결 유감”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노 관장의 선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SK그룹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룹 성장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이 도약한 계기가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이고, 여기에는 1988년 결혼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지난 71년간 쌓아온 SK의 그룹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들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을 시작으로 오너 일가와 임직원 등 SK그룹 구성원 전체가 오랜 기간 쌓아온 가치를 ‘이혼 부부의 분할 대상 재산’으로 치부한 2심 판결의 부당함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다. 최근 10여년 간 최 회장이 강조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을 경계한 행보라고도 볼 수 있다.
SK그룹의 CEO들 역시 지난 3일 서울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법원 판결이 SK그룹의 성장 역사를 훼손했다는 최 회장의 생각에 궤를 같이 했다. 한 CEO는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과거 정부 특혜가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과 관련해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라며 서울고법의 판단에 반박을 제기하기도 했다.
SK그룹, "성장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특혜 받지 않았다"

이와 관련 SK그룹은 4일 <인사이트코리아>에 “노 전 대통령이 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법원의 판결과 연관있는 사안은 SK의 이통통신사업 진출”이라면서 “당시는 SK 성장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우여곡절이 벌어진 때”라며 소상한 전후 사정을 밝혔다.
SK측에 따르면 최종현 선대회장은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1984년 선경 미주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는 등 오랜 기간 무선 정보통신 사업을 준비했다. 그 결과 1992년 8월 20일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대한텔레콤(SK텔레콤 전신)은 압도적 점수 차이로 다른 기업들을 따돌리고 최종사업자에 선정된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 정권이 사돈기업에 유망사업을 몰아줬다’는 특혜시비가 정치권에서 불거졌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꼭 일주일만인 8월 27일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다.
이후 선경은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한다. 1994년 1월 24~25일 이뤄진 주식 공개매각에서 선경은 시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 5000원에 한국이동통신 주식 127만 5000주(전체 주식의 23%)를 인수한다. 선경 내부에서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최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는다”고 명확히 짚었다.
SK그룹 측 관계자는 “최종건 창업회장부터 최종현 선대회장, 최태원 회장에 이르는 지난 70여년간 SK그룹은 한국 산업 발전사와 맥을 같이해 왔다. 전쟁 폐허 속 조그만 직물공장에서 시작해 원사공장으로, 그 이후 특유의 패기와 열정으로 정유·에너지와 정보통신, 반도체, 바이오 분야로 사업영역을 차례차례 넓히는 도전적 경영을 지속한 끝에 국내 자산규모 2위의 대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이혼 소송,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은?
최 회장 측이 대법원 상고를 예고한 상태지만, 재계에서는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유지될 경우 SK그룹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 회장 재산에서 2조원 이상의 SK(주) 지분을 제외하면 1조3808억원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SK실트론 지분 29%(6000억원 추산) 매각, SK(주)로부터의 배당 확대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급이 늦어질 경우 천문학적인 지연이자가 붙는다는 점에서 결국 SK(주)의 지분을 건드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나온다.
최 회장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낮아질 경우 SK그룹에 대한 지배력도 취약해진다. SK그룹은 이미 20년 전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은 전례가 있다.
한편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지난 2018년 최 회장이 친족들에게 나눠준 주식까지 분할대상 공동재산에 포함된다고 봤다. 해당 주식은 고 최종현 회장의 사망 후 상속과정에서 확고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친족들이 최태원 회장에게 양보했던 주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법원 측이 최종현 선대회장에서 최태원 회장으로의 경영승계 및 기업 성장 과정에 대한 고려를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정적인 그룹 지배력 차원에서 경영권 분쟁없이 최태원 회장에게 집중 상속했던 오너 일가의 지분을 모두 노소영 관장과의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지배력을 좌우하는 지분은 ‘가문 공동재산’ 개념이지 ‘부부 공동재산’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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