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바야흐로 K방산 전성기다.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국내 방산 업체들은 3분기에도 실적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방산업 호황 중심에는 해외 수출이 자리한다. 우리 업체가 생산한 무기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이른바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유럽, 중동 등 전 세계에 퍼졌고 대표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 현대로템 K2 전차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처럼 긍정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방산 수출을 도와야 할 국가기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K방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각국은 올해 1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전까지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함과 동시에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우리 방산 업체들에겐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기존 지상방산 뿐만 아니라 잠수함 등 해양방산 분야에서도 수주 길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조선·방산업계 양대산맥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전 정부부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점이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초대형 국책 사업으로 양사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진행한 기업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을 맡아온 그동안 전례를 따라 수의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탈취·누설에 따른 실형 판결을 근거로 들며 HD현대중공업이 법적 리스크를 갖고 있는 만큼 수의계약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두 회사를 중재해야 할 방사청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만 해도 방사청은 수의계약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30일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감점 기간을 내년 12월까지로 1년 연장하면서 기류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전 정부 결정이 탐탁지 않은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양사가 모두 사업에 참여하는 상생협력안을 밀자 방사청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게다가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석종건 방사청장은 정무적·정책적으로 배제된 정황이 포착됐다. 두 회사가 합심해 ‘원팀(One Team)’을 꾸려 수주전에 나서도 수주가 쉽지 않은 상황에 리더십이 실종된 방사청은 권력에 숨죽여 제대로 된 정책 수립에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10조원 규모의 호주 신형 호위함 입찰 당시 양사는 원팀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 참여했다. 결국 일본·독일 등 경쟁국 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았음에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제 더 이상 내부 갈등으로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방위 산업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재 두 회사는 캐나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차세대 잠수함 도입사업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사업비 규모는 향후 유지·보수를 포함 최대 60조원에 달한다. 캐나다 국방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조달 프로젝트다.
캐나다는 내년 상반기 중 최종 사업자를 확정하고 2028년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캐나다 국방부는 지난 8월 말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과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를 숏리스트(적격 후보)로 선정했다. 한국과 독일 2파전이 확정됐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수주 결정권을 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지난 10월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직접 찾아 한화오션이 캐나다에 제안 중인 장보고-Ⅲ 배치-Ⅱ 잠수함을 탑승한 후 만족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양사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부분은 여전히 수주 경쟁에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늦었지만 방사청은 지금이라도 기준점을 확실히 잡고 정치권 입김과 관계없이 KDDX 사업의 성공만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