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15% 타결…조선업에 1500억 달러 투자
한화오션,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로 유리한 고지 점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전격 방미에 니사 을; 정부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한화, 편집=이세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전격 방미에 니사 을; 정부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한화, 편집=이세령>

[인사이트코리아 = 이세령 기자] 그야말로 전격적인 미국 방문이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야기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 상호관세율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음을 사로잡을 우리 쪽 카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전략이다. 조선업 부활이 간절한 미국의 입맛을 충족하는 대신 대미(對美) 관세율을 낮추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현지시각) 워싱턴DC 인근 주미대한민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 관세협상에 우리가 제안한 조선업 협력안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조선업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내 선박 건조가 최대한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마스가 전략이 주효하기 위해선 국내 조선사 양대 축 중 하나인 한화오션의 적극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차기 한화그룹을 이끌 김동관 부회장의 방미 결정은 주효했다는 평가다.

“우리도 몰랐어요. 지금도 미국에서 부회장이 누굴 만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답답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방미 길에 오른 뒤 여러 언론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느라 눈 코 뜰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김 부회장이 한미 협상의 구원투수 성격으로 미국 워싱턴에 급파된 것은 지난 28일. 재계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마스가 전략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미국 도착 즉시 우리 협상단에 합류했다.

올해 초 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를 인수하기로 한 한화는 우리측 협상팀에 힘을 보태는 차원에서 한화필리십야드 추가 투자와 현지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나선 미국 트럼프 정부에게 조선업 부활은 중요 과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한국과 조선 협력 의지를 밝히고, 지난 4월에는 존 펠란 해군성 장관이 미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방한해 국내 조선소를 방문할 정도로 조선업 부흥 의지가 강하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은 펠란 장관 내한 당시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함께 방문한 2개 사업장 중 하나다. 이들은 이번 협상에서 자사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관련 인사들과 접촉하며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로조선소 4번독(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 건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로조선소 4번독(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 건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韓, 美 조선업 재건에 1500억달러 투자…MASGA 본격 시동

30일(현지시각) 체결된 한미 관세협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한다. 그 대신 미국은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3500억 달러 중 절반에 가까운 1500억 달러(208조원)가 미국 조선업에 대한 전용 투자 펀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조선업 재건에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 조선사의 미국 투자, 대출, 보증 등을 포함한 1000억 달러 규모의 마스가 프로젝트를 미국에 제안한 바 있다. 이번 15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도 마스가와 연계된 내용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 달러는 선박 건조, 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며 우리 기업들의 수요에 기반해 구체적 프로젝트에 투자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최고의 설계·건조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기업들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들이 힘을 합한다면 자율운항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 미국행…한미관세협상 물밑 지원 ‘주목’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별다른 진통 없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앞서 협상을 마친 일본, EU(유럽연합)과 비교하면 진행 속도가 빨랐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선 이처럼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 김 부회장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지원을 꼽는다.  

그동안 한화오션은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추진해 왔다. 지난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현재 미국 소형 수상함 및 군수지원함 시장점유율 40~60%를 확보하고 있는 호주 조선사 오스탈(Austal) 경영권 확보도 추진 중이다.

오스탈은 현재 미국 앨라배마 모바일과 샌디에이고 등지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필리조선소와 오스탈 운영을 동시에 하게 될 경우 한화오션은 단숨에 군용·상용 선박 모두를 아우르는 북미 조선업의 핵심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3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와 호주 오스탈 지분 확보 등 미국 직접 진출을 선택해 계열사와 함께 지분을 인수하며 업스트림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이라며 “한화해운을 통해서는 국내 건조 LNG선의 미국 국적 변경을 진행하고 있고, MRO 수주를 통해 미국의 전략 변화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와 관련된 세부사항은 남아 있다. 협상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2주 후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단 주변에선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투자, 대출, 보증을 위해 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해 1000억달러 규모의 정책금융을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철강제품이 쌓여 있다.<뉴시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철강제품이 쌓여 있다.<뉴시스>

철강업계, 고관세·중국산 저가 공세에 가격 경쟁력 위기

반면 철강업계는 울상이다. 이번 한미관세협상 결과, 철강이 관세 인하 품목에 포함되지 않아 기존의 50% 고율 관세가 그대로 유지된다. 미국은 지난 3월 수입산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에는 관세를 50%로 인상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철강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보고, ‘러스트벨트’로 대표되는 중공업 지대 백인 남성 노동자층의 지지를 의식해 철강 관세 인하를 제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는 가격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한 현지 판매가 인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 외에도, 중국산 저가 물량의 공세와 국내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 원자재 가격 변동성까지 겹치며 철강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 차원의 철강업계 지원책 마련과 함께 무역 분쟁 대응, 산업 구조 고도화 정책 추진이 시급한 상황이다.

조선업 주가 강세 vs 철강업 하락…산업 간 희비 교차

이 같은 분위기는 업종·종목별 주가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업이 미국 투자 확대와 현지 진출 기대감에 주가 강세를 보인 반면, 철강업은 고관세 부담과 수요 위축 우려에 하락세로 마감하며 한미 관세협상 후 산업 간 희비가 뚜렷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이날 조선업 주가는 전일 대비 4.61% 상승, 전체 28개 종목 중 18개 종목이 오르며 강세를 보였다. 종목별로는 한화오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7.68% 오른 10만6600원에 거래를 시작해 12.42% 오른 11만1300원에 장마감했다. HD현대중공업도 전 거래일 대비 3.61% 상승한 48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반면 철강업 주가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철강 업종 전체는 전일 대비 1.62% 하락했고 57개 종목 중 36개 종목이 하락 마감했다. 종목별로는 포스코홀딩스가 전 거래일 대비 1.44% 하락한 30만8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동양철관은 전일 대비 14.1% 하락한 1675원, 하이스틸은 13.95% 하락한 4905원으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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