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김동관 민간 외교 추진…정의선, 30일 워싱턴 방문
러트닉 美 상무부 장관, 韓 제안 불만족 시사...압박수위 높여
현대차·기아, 부품 현지화 추진…전문가 “협상용 카드”로 해석

[인사이트코리아 = 김동수 기자]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총력전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까지 워싱턴을 찾아 민간 외교전에 합류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10억 달러(한화 약 29조원) 투자 계획에 더해 미국 현지 부품 조달 확대를 추진 중이다. 단순한 관세 회피를 넘어 대규모 투자와 연계된 대(對) 트럼프 협상 카드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트닉 美 상무장관 “모든 것을 가져와라”…韓 제안 불만족?

우리 정부는 오는 8월 1일(현지시각) 상호관세 발효 전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과 유렵연합(EU)이 상호관세와 자동차·부품 등 품목별 관세를 15%로 낮춘 상황에서 최소한 동등한 수준으로 협상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 테이블 밖에선 민간 외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까지 워싱턴으로 향했다. 30일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민간 외교단’ 합류를 위해 워싱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관세 인하 여부가 그룹 명운과 직결되는 만큼, 이들이 협상에 힘을 보탤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마스가(MASGA)’라는 이름을 붙인 수십 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와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 의향을 바탕으로 ‘1000억 달러+α(알파)’ 규모의 대미 직접 투자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통보한 25% 상호관세율과 품목별 관세율을 최대한 낮춘다는 계획이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 행정부 반응은 기대보다 냉랭하다. 지난 2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에 “관세 협상과 관련해 최선의, 최종적인 무역 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려달라”고 촉구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종 제안을 제시할 때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러트닉 장관 발언을 우리 정부의 투자·고용·시장 개방 카드가 부족하다는 미국 측 메시지로 본다. 앞서 일본과 EU는 각각 5500억 달러, 6000억 달러씩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한국에 4000억 달러(약 55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는데, 우리 정부가 제안한 금액은 턱 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 연구단장은 “미국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상호관세 발효가) 임박한 상황에서 한 번 더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을 코너로 밀어붙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車 부품 현지화…관세 협상 카드 활용 가능

우리 정부는 일본과 유럽연합(EU) 수준의 관세율을 얻기 위해 사실상 재계 총동원령을 내렸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현지화 전략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에서 차량 생산을 늘리고 부품 현지화에 속도를 낸다. 미국 조지아주(州)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을 30만대에서 50만대로 증설한다. 현대차는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품 소싱 다변화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영하고 자동차 부품 200여개의 현지화를 추진한다.
관세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또 다른 협상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과 현지 업체들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차량 170만8293대를 판매했다. 일본 토요타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포드에 이은 4위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현지 부품 조달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현지 부품 조달률은 48.6%로 혼다(62.3%)와 토요타(53.7%)보다 낮다.
아울러 지난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 부품 규모는 역대 최고치인 82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무역 적자를 앞세워 관세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현대차·기아의 부품 현지 조달 확대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며 “하나는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라는 것과 이에 따른 고용 창출”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현실적으로 현대차·기아가 모든 협력사를 현지로 데려갈 수 없다”며 “결국 부품을 현지화 할 경우 미국 업체들의 이익이 늘어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현대차그룹의 부품 현지화가 관세 협상에 ‘핵심 카드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기업의 추가 투자 등과 미국의 이익을 함께 어필할 수단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단장은 “관세도 피하면서 미국 현지 업체들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들의 실적도 좋아지므로 우리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만족스러운 카드”라며 “이러한 부분까지 포함해 8월 1일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숫자(대미 투자 규모)를 제공하는 게 현재로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