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박 발주량 급감..“.슈퍼사이클 종료 임박했다” 분석도
美 MRO 탈락...日 조선업 부흥 천명 “강력 라이벌 가능성“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10여 년 만에 맞은 ‘슈퍼사이클(초호황기)‘로 역대 최대 실적을 연일 갈아치고 있는 와중에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국내 조선업계에 협력의 손짓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미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까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는 경고음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81% 급감하는 등 슈퍼사이클이 종료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데다 1990년대 조선 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이 최근 정부 주도로 산업 재건에 나서며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선박 발주량 급감...슈퍼사이클 종료 조짐일까
4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56만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지난해 동월 대비 81% 급감했다. 올해 1~5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1592만CGT) 역시 지난해 전체 발주량(7353만CGT)의 21.7%에 불과했다. 지난달 국가별 수주량을 살펴보면 중국이 137만CGT를 수주하며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한국은 105만CGT를 수주해 2위를 기록했다.
업계 일각에선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정점을 지나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슈퍼사이클은 2021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정도 지속된 지난 슈퍼사이클을 고려했을 때 아직 완전히 종료됐다고 속단하긴 이르지만 발주량 하락 추이가 완연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경우 이미 물량이 꽉 차 선별 수주를 하고 있어 향후 몇 년간은 업황 악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3사는 이미 3~4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특히 고부가가치 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컨테이너선 등에서 등에선 중국에 비교 우위를 유지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달 척당 CGT는 한국이 5만8000CGT, 중국이 2만7000CGT로 집계돼 우위를 차지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90년대 강자 일본, 조선업 부흥 위해 총력전
일본이 다시 조선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점도 국내 조선업계가 경계할 대목으로 꼽힌다. 1990년대까지 세계 조선 1위를 지켰던 일본은 중국·한국의 추격에 밀려 2000년대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최근 정부 차원에서 ‘조선업의 재생’을 산업 정책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며 반등을 노리고 있다.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의 지원 대상에 조선업도 포함시켜 투자 및 기술 개발을 전면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약 9조4500억원을 투자해 일본의 선박 건조 능력을 두 배로 늘려 전 세계 선박 건조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조선업계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LNG 운반선 대신 미국이 육성하고자 하는 상선, 군함, MRO(유지·보수·정비) 등에 역량을 집중시킬 방침이다. 일본 1위 조선업체 이마바리조선이 2위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인수가 완료될 시 이마바리조선은 세계 선박 건조량 순위 6위(2024년)에서 한화오션을 제치고 4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마바리조선은 상선이 주력이고 JMU는 군함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만큼, 두 회사가 강점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마바리가 두 회사를 하나의 회사처럼 경영하면 조선 부문의 다양한 수요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도 ‘미·일 조선 재생 펀드’를 설립하는 등 미국과의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조선업계는 미 해군, 해안경비대 등과의 파트너십 이력이 풍부하고 자국 해상안보 관련 입찰 경험도 축적돼 있어 기술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국내 조선업계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를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았던 국내 조선업계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MRO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해상수송사령부(MSC)는 지난달 7함대 소속 군수지원함 1척에 대한 MRO 입찰 결과를 통보했는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ST엔지니어링에 밀려 수주에 실패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중국과 달리 선진시장 지향적이며 품질·기술·납기 중심의 입찰 전략을 구사한다”며 “특히 미국과 안보 협력 강화 국면에서 일본 조선업이 재부상할 경우 한국과 정면 승부가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