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지리적 이점·세제 효율성...12월 현지법인 설립
필리핀, 수빅 조선소선 실무...美 해군 함정 건조 가능성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지난 10월 27일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HD현대>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지난 10월 27일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HD현대>

최근 철강, 조선, 방산 등 국내 중후장대 기업들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진출이 활발하다. 이 지역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경제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미래 수익 창출 기대감이 높다. 아세안 소속 국가 역시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 기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인사이트코리아>는 포스코·HD현대·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세안 진출 성과 등을 짚어본다.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싱가포르 현지 법인 설립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정 회장은 싱가포르 법인을 중심으로 동남아 조선 사업을 총괄할 방침이다.

또 하나의 중요 거점은 필리핀이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통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중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를 유치할 계획이다.

HD현대, 동남아 총괄 싱가포르 투자법인 설립

25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중공업과 다음 달 싱가포르에 투자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양사가 각각 60%, 40%씩 출자한다. 새 투자법인은 HD현대베트남조선과 HD현대중공업필리핀, HD현대비나 등  아세안 생산거점을 집중 관리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아시아의 새로운 거점으로 아세안 지역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왔다. 2021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슈퍼사이클(초호기)로 국내 조선소 독(선박 건조장·dock)이 풀가동되고 있는 데다 노조 리스크를 증대시키는 노조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해외 생산 능력 확충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셈이다.

지역 사업을 총괄할 국가로 싱가포르를 선정한 이유는 지리적 이점·세제 효율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싱가포르는 글로벌 금융사와 해양 물류 기업이 집결한 아시아 최대 금융 중심지다. 그만큼 조선·해양 산업을 영위하기에 용이하다. 

또 미국 제7함대가 일본에 본부를 두고 안보 동맹을 맺은 국가에 정비·보급 거점을 설치했는데 싱가포르 창이 해군 기지도 요충지 중 한 곳이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첫 MRO 수주전에서 싱가포르 국영기업 ST엔지니어링에 패배했다. 그만큼 미 해군 MRO 방면에선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로 한화오션과 마스가를 두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HD현대 입장에선 한 수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최고 24%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반면, 싱가포르는 최대 17%로 상대적으로 낮다. 법인 설립 후 3년간 발생한 순이익에 대해선 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HD현대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필리핀·베트남 등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해외 조선소 간 인력, 기자재 공급망 활용 등 협업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HJ중공업>
필리핀 수빅 조선소 전경.<HJ중공업>

필리핀 수빅 조선소선 실무...美 해군 함정 건조 가능성도

싱가포르가 투자를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면 필리핀에선 함정 건조, MRO 수행 등 실무가 이뤄진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6월 필리핀 현지 법인을 세우고 수빅조선소 운영 주체인 아길라수빅과 10년간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아울러 최근 필리핀 법인에 1089억원을 출자해 본격적인 건조 능력 향상에 돌입했다.

수빅 조선소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10㎞ 떨어진 수빅만 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해 있다. 2006년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약 300ha(헥타르) 규모 미 해군 기지 부지를 사들여 초대형 조선소를 건설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이 2019년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조선소 운영이 중단됐다. 서버러스 캐피탈이 2022년 인수했다.

정 회장은 지난 8월 서버러스 캐피탈과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수빅 조선소를 미국 해군 함정 건조, MRO 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앞서 필리핀 정부도 같은 방안을 미국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9월 수빅 조선소에서 11만5000톤급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건조를 위한 강재 절단식을 개최하며 마스가 본격화를 앞두고 담금질에 들어갔다. 이 선박은 HD현대필리핀이 짓는 첫 선박이다. 강재 절단식은 선박 건조를 위한 첫 강재를 잘라내는 행사로 선박 건조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는 “필리핀은 정부의 지원 속에 천혜의 자연환경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갖추고 있어 신흥 조선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라며 “HD현대필리핀을 활용해 글로벌 수주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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