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협상이 마무리되는 듯싶었는데 상황이 꼬였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3500억 달러 투자 때문이다. 자칫 한국은 천문학적 돈만 대고 손가락만 빨 소지가 있다. 이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터졌다. 조지아 주(州)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건설 현장에서 한국 기술인력 317명이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을 불법 근로자로 잘못 인식하고 한 일이지만 미국의 엄청난 실수였다.
이들은 단기상용(B1)과 이스타(ESTA·미국 무비자 전자여행허가제) 비자를 갖고 있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B1 비자로는 장비 설치, 서비스, 수리 업무를 할 수 있다. 이스타 비자 경우도 기업에서 돈을 받지 않으면 회의 참여나 감독업무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우리나라 전문 인력을 구금했다. 이에 전 국민이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칼자루를 쥐게 됐다.
미국이 한국 전문 인력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언가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터졌다. 이번 일로 미국 국민 역시 놀랐다. 미국을 돕기 위해 온 우방국 전문 인력을 가두는 게 말이 되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은 이것을 되돌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한국에 성의를 보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번 사태로 조지아 주에서 트럼프가 속한 미 공화당 입지가 대폭 줄어들었다. 사건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당국이 할 일을 했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우방이 미국을 돕기 위해 공장 건립을 할 경우 외국 기술 인력이 꼭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사태를 진화하려 했다. 그럼에도 조지아 주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 대기업 공장건설이 지연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일자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이곳 주지사와 공화당 하원의원이다. 현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이고 전체 14석 연방하원의원 중 공화당이 9명, 민주당이 5명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주가 대표적인 경합 주(swing state)라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선호하는 당이 바뀐다. 사태가 빨리 수습되지 못하면 내년 11월에 있을 선거에서 공화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공화당은 연방하원의원 220석을 차지하고 있다. 과반인 218석을 간신히 넘겼다. 조지아 주 한주 만에서 패배로도 의회 권력은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이 판세는 한국에 절대 불리하지 않다.
이번 일로 트럼프가 한국을 더 세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줄었다. 자신에게 불리해지면 트럼프는 상투적으로 더 센 압력을 가했다. 이번에는 쉽지 않다. 한국기업들이 미국 내 39곳에서 공장을 짓고 있어서다. 이 중에는 경합주도 많다. 조지아 말고도 애리조나(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도심항공교통용 배터리 공장), 인디애나(삼성SDI, 자동차 배터리 공장), 펜실베이니아(한화오션, 조선소)가 있다. 트럼프는 한국이 고분고분하지 않음을 이유로 현 25% 관세를 50%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기업의 대규모 공장건설을 일시에 중단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도 조지아 주에서와 같은 동요가 일어나며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불리해진다. 트럼프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다.
한·미 간 관세협상은 곧 있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를 계기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영국방문에 비춰보면, 그는 칭찬과 대접에 약하다. 그래서 회의 기간 중 그를 융성하게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한국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이런 마음을 극대화해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