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젊은 CEO 팔머 럭키...우리 방산업체와 협력
안두릴, 美 신흥 AI 방산 기업...조만간 한국 지사 설립
韓 국방비 증액 가능성 보고 선제적 진출 해석도 나와

지난 6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를 방문한 팔머 럭키 안두릴 창업자가 HD현대가 개발 중인 무인수상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주원호(첫줄 왼쪽 세번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 팔머 럭키(첫줄 왼쪽 두번째) 안두릴 창업자.<HD현대>
지난 6일 HD현대 글로벌R&D센터를 방문한 팔머 럭키 안두릴 창업자가 HD현대가 개발 중인 무인수상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주원호(첫줄 왼쪽 세번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 팔머 럭키(첫줄 왼쪽 두번째) 안두릴 창업자.<HD현대>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미국 AI 방산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 이하 안두릴)가 우리 방산업계를 향한 본격적인 구애에 나섰다. 팔머 럭키 안두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부터 방한해 HD현대, 대한항공 등 주요 방산업체와 연쇄적으로 비공개 회동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K방산이 수주·생산·납품 역량을 앞세워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 국방비 증액 기조에 따라 한국 역시 국방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 선제적인 투자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국내 방산업체와 손 잡은 美 방산 스타트업 선두주자

8일 업계에 따르면 럭키 창업자는 방한 기간 HD현대, 대한항공을 찾아 각각 무인 함정, 무인기 개발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먼저 안두릴은 지난 6일 HD현대와 ‘함정 개발 협력을 위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이번 MOA는 지난 4월 양사가 맺은 양해각서(MOU)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양사는 HD현대의 AI 함정 자율화 기술(Vessel Autonomy) 및 함정 설계·건조 기술과 안두릴의 자율 임무 수행 체계(Mission Autonomy) 솔루션을 상호 공급한다.

구체적으로 한국 시장에서는 HD현대가 개발 중인 무인수상정에 안두릴의 자율 임무 수행 체계 솔루션이 탑재될 예정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안두릴이 주도해 개발한 유·무인 함정에 대해 HD현대가 설계, 건조를 담당하고 AI 함정 자율화 기술(Vessel Autonomy)도 함께 공급한다. 또 양사는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각각 선보일 무인수상정(USV)의 프로토타입(시제품) 공동 개발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한국 시장의 USV 프로토타입은 2027년께 선보일 계획이다.

안두릴은 지난 7일 대한항공과도 ‘한국 및 아시아·태평양 무인 항공기 분야의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협력합의서(TA)’에 서명했다. 양사는 안두릴 제품 기반 한국형 무인기 모델 공동 개발, 안두릴 제품 면허 생산 및 아태 지역 수출, 안두릴의 아시아 무인기 생산기지 한국 구축 등을 공동으로 추진한다.

1992년생인 팔머 럭키는 가상 현실(VR) 헤드셋 메이커 오큘러스 공동 창업자로 2017년 안두릴을 설립했다. 2014년 오큘러스를 페이스북(현 메타)에 20억 달러(2조2000억원)에 매각한 후 안두릴 창업 전까지 페이스북 경영에 참여한 바 있다. 테크업계에서 성공한 창업자가 군사 분야에 뛰어든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그가 세운 안두릴은 미 국방부, 국토안보부 등과 다수의 무기 및 감시 시스템 계약을 체결하며 단기간 내 주목받았다. 또 전통적인 방산기업이 아닌, AI(인공지능)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신흥 방산 테크 기업’으로 미국 현지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나가고 있다. 회사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스타 메사에 위치해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AI 기반 전투 운영체제 ‘래티스(Lattice)’와 자폭형 요격 드론 ‘앤빌(Anvil)’,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정찰용 드론 ‘고스트(Ghost)’ 등이 있다. 래티스는 전장에 배치된 드론과 감시 장비, 자율 차량을 실시간으로 통합 제어하며 AI가 위협 요소를 자동 판별하고 작전을 제안한다.

안두릴은 지상·공중뿐 아니라 해상·수중 전장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자율 수중 드론 ‘고스트 샤크(Ghost Shark)’나 ‘다이브-LD(Dive-LD)’는 이미 미국 해군과의 계약을 통해 실전 배치되고 있으며 발사 후 회수 가능한 재사용형 무인기 ‘로드러너(Roadrunner)’는 미사일과 드론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 장비로 인정받고 있다.

韓 국방비 증액 가능성, 팔머 럭키 선제 진출 통할까 

럭키 창업자의 이번 방한은 단순한 기술 교류 수준을 넘어 안두릴이 한국을 AI 기반 군사 플랫폼의 핵심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 내에서 군사 AI 산업이 윤리 논란으로 정체돼 있는 상황과 대비된다. 

미국의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과거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 참여 논란 이후 군사 AI 프로젝트에서 잇따라 발을 뺀 바 있다. AI 기술의 군사화에 대해 직원들의 내부 반발과 사회적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민간의 AI 역량이 국방 분야로 원활히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에서는 민간 빅테크 군사 AI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는 없다. 실제 네이버, 카카오, LG CNS 등은 직접 방산 사업에 뛰어든 적은 없지만 국방기술진흥연구소(KDIA)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AI 관련 연구 협력을 검토해온 전례는 있다. 민간 AI 기술을 국방 목적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한국이 미국보다 정치적·윤리적 부담이 적고 기술 이전도 더 유연하다는 점에서 안두릴 입장에선 매력적인 환경이라는 평가다.

게다가 한반도는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국방 기술의 빠른 실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GDP의 5% 수준의 국방비를 요구했고 이를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전망이다. 국방비 증액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정부의 국방 예산은 올해 기준 61조원에서 2배 이상 확대될 수 있다. 럭키 창업자는 이 같은 흐름을 눈여겨보고 국내 방산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존킴 안두릴코리아 대표(왼쪽)와 팔머 럭키 안두릴 창립자.<안두릴>
존킴 안두릴코리아 대표(왼쪽)와 팔머 럭키 안두릴 창립자.<안두릴>

한편 럭키 창업자는 이날 안두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안두릴은 보잉코리아 출신 존킴을 한국 대표로 선임하고 향후 국내 방산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한국 방산 니즈에 맞춘 제품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존킴 대표는 “안두릴은 자율성과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대한민국이 적은 수의 플랫폼으로도 더 정밀하고 효율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고도화된 네트워크 기반 군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한국 지사 설립과 인력 확대는 한국 시장에 대한 안두릴의 장기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인사이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