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 경영권 위협에도 조 한진그룹 회장 안심...세력 지원
우호 세력 중 재계 주목받는 한진 지분 4.1% 보유 펀드
차익 실현 가능성에도 만기 연장...중심에 정용진 신세계 회장
8살 나이 차에도 친구같은 사이 알려져...우정·사업 일석이조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한진그룹이 다시 한번 경영권 분쟁의 먹구름 아래 놓였다. 2019년 이른바 ‘남매의 난‘이 가족 간의 분쟁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반면 이번엔 대외적으로 조용히 전개되는 ‘지분 전쟁’이다.
그 중심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호반건설 창업주 김상열 서울신문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면서 대한항공 경영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호반그룹은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호반 경영권 위협에도 조원태 한진 회장 ‘걱정無‘...이유는
7일 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진칼 주식 총 67만5974주를 장내 매수했다. 투입된 현금만 478억원에 달한다. 이에 호반그룹의 한진칼 주식 보유비율은 17.44%에서 18.46%로 1.02%p(포인트) 늘어났다. 조 회장과 지분 격차는 1.67%로 좁혀졌다. 그만큼 호반그룹 행보는 파격적이다.
하지만 조 회장에게는 든든한 우호 세력들이 건재하다. 조 회장은 이미 2019년~2021년 사이 이른바 ‘조현아 연합’(조현아(개명 후 조승연)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의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치른 바 있다. 당시 대한항공 경영권을 쥔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조 회장은 공정위 신고 전력, 경영 전략 논란, 내부 지지 부족 등 총체적 위기 속에서도 우군 전열을 단단하게 꾸리며 경영권을 지켜냈다.
이번에도 든든한 우호 세력들이 조 회장에게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이날 기준 조 회장 측이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 20.62%를 포함해 대표적 우군인 델타항공(14.9%)과 LX판토스(3.83%)를 비롯해 이번에 백기사로 밝혀진 사모펀드 지분 9%만 더해도 48.35%에 달한다. 여기에 GS리테일(1.5%) 등 한진그룹과 우호적 관계를 맺은 기업의 보유 지분을 더하면 50%가 넘는다.
우군 가운데 재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주체는 이른바 ‘한진칼 펀드’로 불리는 사모펀드 지분 9% 가운데 4.1%를 보유한 ‘유진 그로쓰 스페셜오퍼튜니티 일반사모투자신탁 1호’(이하 유진 그로쓰)다. 나머지 4.9%는 SK에너지, 현대차 등으로 구성된 ‘대신 코어그로쓰 일반사모투자신탁’이 들고 있는데, 이 펀드는 만기가 없는 개방형 펀드라 차익 실현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유진 그로쓰는 이마트(1000억원)와 HD현대오일뱅크(500억원), 유진한일합섬(50억원) 등이 출자했다. 2021년 말 최초 설정된 이 펀드는 올 하반기 만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최대 출자자인 이마트를 중심으로 펀드 만기를 연장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정용진 주축 ‘한진칼 펀드’ 만기 연장, ‘재계 우정 동맹’
만약 유진 그로쓰가 만기를 연장하지 않았다면 조 회장 과반 지분이 무너져 이달 내 호반그룹의 경영권 흔들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동안 이 펀드는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 측에 우호적 스탠스를 유지해왔다. 특히 이번 만기 연장은 단순한 재무적 판단을 넘어선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정 회장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두 사람은 8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서울 경기초, 청운중 선후배 사이로 정 회장이 1990년대 미국 브라운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조 회장도 인근 마리안 고등학교에 재학했다.
실제 2022년 두 사람이 나란히 야구장을 찾은 모습이 포착되며 공식석상 밖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바 있다. 신세계가 인천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를 창단할 당시에도 조 회장이 지역 기반 관련한 조언을 건넸다는 후문이 있다.
정 회장은 신세계 내에서 대외 정치적 수 싸움보다 실질적 영향력 확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인물로 전해진다.
이번에 호반그룹 공격적 지분 매집으로 조 회장이 위기에 빠지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지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이마트를 통한 간접적인 펀드 출자 방식은 ‘위험은 낮추고 영향력은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개인적인 친분뿐만 아니라 사업적 계산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와 대한항공이 항공물류·유통 연계, 인천 지역 기반의 전략적 이해관계 등 그룹 간 공통 접점이 있는 만큼, 지분 연대가 향후 신세계에게 차익 실현 그 이상의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펀드 연장은 단순한 지분 투자 이상으로 신세계와 한진 간 보이지 않는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정 회장과 조 회장 사이의 관계가 단지 친분이 아닌 전략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용한 동맹이라는 점에서 재계 내 ‘보이지 않는 지형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