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벽에 갇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 말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달성이 4년 뒤 2029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2027년으로 예상했는데 6개월 만에 2년 늦췄다.

IMF 전망이 현실화하면 한국은 2014~2029년 15년 동안 국민소득 3만 달러 덫에 갇힌다. 한국보다 앞서 소득 3만 달러를 통과한 선진국들이 평균 6년 만에 4만 달러 시대로 나아간 것과 비교해 너무 늦다. 더구나 올해 1인당 소득이 3만4642달러로 지난해보다 4% 감소하고 내년부턴 경쟁국인 대만에 추월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 가는데도 경제체질 개선과 사회구조 개혁을 게을리 한 탓에 경제의 실력인 잠재성장률이 1%대로 하락하고 혁신도 신산업도 일구지 못해서다.

대만의 한국 추월은 경제성장률 추세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의 성장률은 올해 잘해야 1.0%, 내년 이후에도 1~2%의 저성장이 고착화할 전망이다. 이와 달리 대만은 올해 2.9%에 이어 2030년까지 2%대 성장을 구가한다. 그 결과 대만의 1인당 소득은 2029년까지 한국을 능가한다.

한국이 과거 1만, 2만, 3만 달러 벽을 넘어선 데는 주력산업의 발달과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있었다. 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4년에는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이 있었다. 2만 달러를 넘어선 2005년에는 반도체가 일등공신이었다. 3만 달러를 돌파한 2014년에는 반도체가 앞장서고 자동차·화학·정유가 뒤에서 밀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다 할 중추산업이 보이지 않고 대외환경도 미국이 촉발한 고율 관세정책과 보호무역주의가 지배한다.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 의존도만 높아졌을 뿐 20년간 변동이 없다. 철강·석유화학·조선업은 중국의 추격에 쫓기고 구조조정 시기를 놓쳐 위기가 심화했다. 인공지능(AI)·로봇·전기차·배터리 등 첨단산업은 이미 중국이 앞섰다.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일본처럼 저성장 늪에 빠져들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일본의 1인당 소득은 2022년 한국에 추월당했다. 거품 붕괴 이후 산업구조 개편과 인구감소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대선 공약이나 정책 목표로 내세웠지만 이루지 못했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손쉬운 재정에 의존하며 단기 경기부양에 나서고 규제개혁과 노동개혁도 구호에 그쳤기 때문이다. 긴 안목의 산업대전환 정책이 미흡했고, 산업 변화에 맞춘 인재 양성도 소홀했다.

6·3 조기 대선 과정에서도 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 달성 공약이 등장했다. 경제 성장과 소득 증대는 기업·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생산적인 정치가 뒷받침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사사건건 트집 잡고 거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 민주주의)’로는 정치 선진국은 물론 경제 선진국도 어렵다. 오죽하면 “경제는 정치가 잠잘 때 성장한다”는 말이 나돌까. 한국이 소득 3만 달러 늪에서 허우적대느냐, 4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로 나아가느냐는 대선 이후 정치 변화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인사이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