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졸 신화’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의 일침
신경영 키워드로 ‘신뢰’ 제시... ‘파괴적 결단’ 서둘러야

 초격차를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때아닌 위기론에 휩싸였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처럼 징후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삼성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대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그렇기에 삼성에는 ‘위기극복’이라는 DNA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인사이트코리아>는 6회에 걸쳐 ‘이재용의 신경영 시즌Ⅱ’ 시리즈를 기획한다. 국내외 각계 각층이 말하는 재도약의 해법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지냈던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이 지난 11월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삼성전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강현욱>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지냈던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이 지난 11월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삼성전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강현욱>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202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자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삼성 반도체인의 신조라 불리는 이 문장을 공유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양 전 의원은 삼성전자에 고졸 여직원으로 입사해 반도체부문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치권은 그의 화려한 이력을 탐냈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끈질긴 요청 끝에 정치권에 입문했다. 인재 영입 1호였다.  

양 전 의원이 지나온 길이 삼성 신화였다. 그가 몸담고 있을 동안 삼성은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에 올랐다. 그랬기에 양 전 의원은 삼성 반도체의 시작부터 성공까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랬기에 지금의 위기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한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자리에서 양 전 의원은 위기 원인과 해법의 키워드로 ‘신뢰’를 제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의 대상은 시장이 될 수도 있고, 사내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구체적인 해법으로 그는 “실제 후배들을 만나보면 말단 직원들조차 어떻게 해법을 찾아야할지 우왕좌왕한다”면서 “위기 탈출을 위해선 선장인 이재용 회장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이나 이건희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비슷한 수준의 파괴적 결단이 나와야만 ‘삼무원(삼성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조직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덪붙였다. 

또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은 주52시간제에서 예외를 두도록 하고 사법부도 이 회장과 관련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해 삼성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도 빨리 해소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양 전 의원은 현재 차세대 재외동포 인재 양성조직인 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양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삼성전자에 1985년 입사한 만큼 삼성의 여러 부침을 겪어봤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삼성전자 위기론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삼성전자는 늘 15년 후의 산업 지형과 패러다임을 예측하고 그에 맞게 대비해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007년을 대비해 1990년대 초부터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7년에는 2022년 정보화 시대를 이끌 재목으로 ‘AI’와 ‘자율주행’을 꼽았다. 그리고 드디어 AI 시대가 열렸는데 그간에 보여준 ‘기술초격차’ 기조가 아닌, 경쟁사에 밀리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사이에 제대로 대비를 안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은 엔디비아, TSMC, 삼성 순이다. 글로벌 산업지형에서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많아진다고 10년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는데, 관련 시장이 커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쪽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건 분명 패착이다.

이는 치명적인 리더십 문제이기도 하다. 제 후배들(삼성 내부인)은 ‘최고 수장의 메시지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임원급은 물론이고 중간 관리자나 그 아래 직급 직원들까지 위기를 다 느끼고 있다는 건 확실한 위기다. 과거 삼성전자 위기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한 업계 전반 문제였다면 최근 불거진 위기는 삼성전자에만 해당하는 위기라는 점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격차를 운운하던 삼성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위기론이 정신없이 쏟아지나.

“SK하이닉스의 급부상이 계기를 마련했다.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자 축에도 들지 않았던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엔디비아와 협력하며 시장점유율 키웠고,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이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상의 변화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게 곧 있을 채용이다. SK하이닉스가 채용 프로세스를 12월 초 발표한다고 하는데  아마 삼성전자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실제로 올해 초 1월 미국 가전박람회 CES에 가서 만난 사람들 중 삼성에서 함께 입사한 동기(부사장)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다 SK하이닉스로 옮겼다고 하더라.”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지냈던 양향자 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가 지난 11월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삼성전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강현욱>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지냈던 양향자 K-디아스포라 세계연대 상임대표가 지난 11월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삼성전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강현욱>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론에서 반도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전 회장님들은 목표 철학 등 이야기를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특히 선대회장은 철학가이자 사상가였다. 사원 개개인이 자기일 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게 만들어줬다.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과묵하신 분(선대회장)의 포효였다. '다 바꿔라' 이런 말에서 임직원 역량을 한번에 쫙 모으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재용 회장에겐 그런 카리스마가 안 보인다.

또 선대회장은 경청을 잘 하셨다. 여러 이야기를 마다하지 않고 들어야 한다. 미래산업에 대해 토론을 하고 방향성 결정해서 삼성전자 비전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재용식 신경영에 담야야할 내용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반도체산업은 양심 산업이라 양심을 속이면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정확히 문제를 파악하고 메시지를 던지고 솔루션도 내야한다. 구성원들에게 큰 비전을 심어주고, 본인 가치가 상승되는 느낌을 부여해서 리더를 따라가고 싶게 만들어야한다.

현재 삼성전자에서는 최상위 각 수장들과 임직원들과의 신뢰가 훼손됐다는 게 보인다. MZ세대는 내 가치가 발현되는 일에 몸을 바친다. 그들의 힘을 못 끌어낸다는 게 아쉽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출장도 잘 못 가게 한다는데 SK하이닉스의 경우 저 정도로 출장을 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엔지니어에 대한 기대와 처우가 다르더라.

한마디로 이 회장의 ‘파괴적 결단’이 절실하다. 이러다가 임직원들이 다 죽을 수 있다. 포스트 이재용이 있다면 승계로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지만 현재는 이 회장 외 누가 삼성을 이끌 리더십 발휘할 환경이 아니지 않나.”

-조직문화 측면에서 보신주의에 대한 지적이 많다.

“최근 '삼무원'(삼성공무원)이라는 조롱이 있는데 한마디로 직원들이 ‘주 52시간만 일하고 집에 가자’고 한다는 의미다. 이제는 저성과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없고 그렇다보니 채용도 원활히 안 되는 것인데,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삼성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1위 타이틀을 위해 땀흘리는 기업이었지, 지금처럼 적당히 일하는 곳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해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사업의 경우 제품 가격을 낮추든가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3분기에 재고가 쌓였다. 경우에 따라 4분기에 (3분기 실적보다) 더 무너질 수 있다.”

-전 기술통으로서 삼성전자가 나아가야할 사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보나.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시장 점유율 전 세계 1위 전략을 유지해야한다. 이미 SK하이닉스에 판정패 했지만 그래도 국내에선 괜찮다고 본다. 메모리 반도체만으론 1등 기업으로 갈 수 없어 파운드리도 해야하는 건 알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위기로 내몰면서까지 무리를 할 필요 없다. 파운드리를 분사시키면 경쟁력 없어 죽는다. 분사하면 누가 이끌어나갈 것이냐를 생각할 때 메모리 반도체에서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중국 등도 반도체 개발에 애를 쓰고 있고, 네덜란드 ASML도 노광장비를 내세워 우위에 오르고 있다. 너무 경쟁사를 의식하지 말고 기술 개발을 했으면 한다. 파운드리, CIS 등 2위 산업군은 TSMC와의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30~40년 동안 삼성이 축적한 기술은 아무나 못따라온다. 기회는 아직 있다.

희망적인 것은 엔디비아가 TSMC하고만 교류 할 수는 없기에 삼성전자가 잘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독과점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엔디비아와 밀접하게 지내면서 미국과의 외교를 진행하고 기업 간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 반도체 인재가 필요하다고 보나.

“보통 반도체 수장을 공정‧설계 경력자를 번갈아가면서 앉힌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공정 기술자 출신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설계자 출신이 15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시안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한다. 삼성전자의 방향성과 한계를 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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