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엔비디아·TSMC 불화 제기…협력사 다각화 필요 부각
젠슨 황 “엔비디아, 컴퓨팅 플랫폼 회사…생태계 도움 필요”
삼성, TSMC 협력 가능성도…HBM4 로직다이 생산서 비롯

초격차를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때아닌 위기론에 휩싸였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처럼 징후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삼성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대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그렇기에 삼성에는 ‘위기극복’이라는 DNA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인사이트코리아>는 6회에 걸쳐 ‘이재용의 신경영 시즌Ⅱ’ 시리즈를 기획한다. 국내외 각계 각층이 말하는 재도약의 해법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인사이트코리아 = 정서영 기자]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에 다시 기회가 찾아올까.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예의주시하는 바다.
관련 업계에선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 간 미세한 균열이 보이는 것을 주목한다.
“당연히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If necessary, of course, we can always bring up others).”
지난 9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발언이다. 당시 젠슨 황은 삼성전자 등 또 다른 반도체 제조 업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십을 확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6일 SK그룹이 개최한 심포지엄 ‘SK AI 서밋’에서도 젠슨 황은 “엔비디아는 컴퓨팅 플랫폼 회사로 생태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컴퓨터 회사에 불과하다”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완성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성 요소를 만드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냉혹한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자사 이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많은 업체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로선 엔디비아-TSMC 동맹의 틈을 파고들 기회가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엔비디아, 파트너사와 협력 필수”
현재까지 엔비디아-TSMC 협력은 탄탄하다. 30여년간 끈끈한 동맹을 이어오고 있다.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은 모리스 창 TSMC 회장과 사이가 각별하다. 두 사람 사이는 젠슨 황이 엔비디아 창립 초기 모리스 창에게 첫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후 TSMC는 엔비디아 GPU 위탁 생산을 맡고 있다. 사실상 엔비디아 물량 대부분을 TSMC가 제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 효율성은 좋지만, 공급처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경우에 따라 약점이 될 수 있다. 엔비디아를 ‘슈퍼을’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최근 엔비디아 차세대 인공지능(AI)칩 ‘블랙웰’ 생산 과정에서 발견된 결함 때문에 양사가 갈등을 빚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미국 테크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블랙웰에서 결함이 발견돼 당초 출시 시기보다 늦어지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언쟁을 벌였다는 게 골자다.
젠슨 황이 직접 나서 불화설을 일단락시켰다. 젠슨 황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TSMC와 긴장이 고조됐다는 소문은 가짜뉴스”라며 “블랙웰 설계상 결함이 있었고, 이로 인해 수율이 낮았다. 100% 엔비디아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
당시 반도체 업계에선 젠슨 황이 잘못을 인정한 발언의 배경을 두고 “TSMC 말고 딱히 대체제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 가운데 AI칩 수요 증가로 TSMC 공급이 한계에 달할 우려도 커졌다. 이는 삼성전자에겐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젠슨 황은 AI칩 블랙웰 수요에 대해 “미친 수준”이라며,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친 만큼 엔비디아로서 공급망 다변화는 중요해진 시점이다.
다만 관건은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 수율(완성품 비율)이다. 현재 삼성전자 3나노 1세대 공정 수율은 60%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음 세대인 3나노 2세대 공정의 수율은 20%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개 중 2개의 제품 양산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수율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향상돼 높은 수율은 반도체 업계에서 중요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3나노 수율을 올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며 “첨단 공정을 할수록 성능은 좋아지고 비용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적과의 동침?…TSMC 협력 가능성 제기
그동안 삼성전자에게 TSMC가 경쟁사에 불과했다면, 돌파구 전략은 모순적이게도 ‘TSMC’와의 협력이다. ‘적과의 동침’인 셈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밀리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HBM4’를 선점해야만 SK하이닉스로부터 다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6세대 HBM인 HBM4부터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맞춤형 HBM을 생산해야 한다. 이에 HBM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하는 로직다이를 생산하기 위해선 파운드리 공정에 맡겨 생산한다. TSMC는 HBM4에 사용될 로직다이를 직접 제조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로직다이는 HBM의 가장 밑단에 배치되는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파운드리 사업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HBM4 개발을 위해 TSMC의 미세공정을 활용하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일단 삼성전자는 TSMC와 협력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라며 “복수 고객사와 맞춤형 HBM 사업화를 준비하고, 고객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제조 관련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고객 요구를 우선으로 외부·내부 관계 없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