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7월 21일부터 8월 23일까지 34일 연속 열대야가 나타났다. 이를 포함한 총 열대야 일수는 1907년 근대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무더위가 그치고 선선해진다는 ‘처서 매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폭염 때문에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여름 중 올해가 가장 선선했던 시기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온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반도 기온이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딛고 선 땅마저 급속한 도시화로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져 있어 낮에 머금은 열을 밤에 뿜어낸다. 열섬 현상이다.
신진대사를 통해 열이 생성되는 우리 몸은 매시간 1도 정도를 몸에서 빼내야 정상 체온을 유지한다. 기온이 높고 꿉꿉하면 체내 열을 발산하지 못한다. 공기 중 상대습도를 반영한 습구온도가 35도 이상으로 높아지면 땀을 통해 체열을 식히기 어려워 열사병 등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 도심을 걷다 보면 가로수 그늘이 반갑고 고맙다. 과거 ‘여름철 더위’ 하면 내륙 분지 대구였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릴 정도였다. 오명을 벗기 위해 대구시는 가로수와 숲을 부지런히 늘렸다. 1995년 8만4000그루였던 가로수가 2023년 23만9000그루에 이르렀다. 도심 숲도 2005년 1392ha(약 418만평)에서 2021년 2759ha(834만평)로 확대됐다.
그 결과 대구는 낮 최고기온 순위 10위권 밖으로 탈출했다. 대신 요즘 더운 지역으로 광주광역시가 지목된다. 바다에 가까워 고온다습한 남서풍 영향을 받고 강수량도 많아 체감온도가 높은 데다 녹지가 부족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는 탓이다. 우리나라 100년 기후통계를 보면 여름은 한 달 정도 늘고, 겨울은 한 달 정도 줄었다. 그만큼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체감더위가 심각하자 기상청이 처음으로 ‘폭염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 기후 데이터는 물론 폭염이 사회·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폭염 재난은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폭염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농부, 건설·택배 노동자, 쪽방촌 노인 등 취약계층과 에너지 빈곤층이다. 폭염 시 작업중지권 등 안전망 제도화와 에너지 바우처 확대 등 조치가 절실하다.
기상청 예보는 온도계 설치 높이 1.5m 기준이다. 햇볕이 지표면에 반사되면서 나오는 복사열 때문에 아스팔트 바닥에 가까울수록 체감온도가 높아진다. 밭일을 하려 몸을 웅크린 노인(노면에서 약 50㎝)이나 유모차에 탄 아기(75㎝)는 예보되는 기온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 노출돼 위험하다.
폭염은 올봄 우리가 겪은 ‘금사과’에서 보듯 농산물과 식료품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 산업생산과 일자리와 노동생산성, 경제성장률 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따라 2050년경에는 여름배추 재배지가 눈에 띄게 줄고, 2090년 쯤에는 아예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4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후정의모임이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며 서울 강남대로를 행진했다. 30여 년 전부터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는데 과연 달라진 게 뭔가.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