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트코리아 = 이숙영 기자]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을 두고 연일 논란에 휩싸였던 두산이 주주서한으로 설득에 나섰다. 두산은 주주서한 초점을 사과와 해명에 맞췄다. 하지만 성난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 불만의 핵심인 주식교환비율에는 입장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등 두산그룹 3개사는 사업구조 재편과 관련해 발생한 논란에 대한 해명을 담은 주주서한을 발표했다. 스캇 박 두산밥캣 대표는 “주주 여러분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며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하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두산은 지난 7월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밥캣을 떼어 내 투자법인을 신설한 뒤, 이 투자법인을 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최종적으로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가 그룹 캐시카우인 밥캣을 품는 구조다.
합병 과정에서 논란이 된 것은 주식교환 비율이다. 밥캣과 로보틱스의 주식교환 비율은 1대 0.63이다. 밥캣의 매출은 로보틱스의 19배 이상이고, 순자산 규모도 5조원 이상 크다. 그런데도 두 회사를 비슷한 가치로 주식을 교환하는 것에 반발이 일었다.
주주는 물론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감독원마저 합병 증권신고서를 반려하자 두산은 주주서한으로 급히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두산은 주주서한에서 “자본시장법에서도 시가로만 교환비율을 산정하게 되어 있다”며 “밥캣과 로보틱스의 교환가액인 8만114원과 5만612원은 시장에서 판단하는 가치를 왜곡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와 함께 합병 후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박 대표는 “산업용 장비와 로봇의 시너지로 주식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며 “로보틱스는 비전인식, 디지털트윈, 딥러닝 등 강력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해 밥캣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도 대표는 “밥캣 분할로 생기는 1조원을 원전 산업 생산 설비 증설에 투자하겠다”며 “1조원을 미래성장동력에 투자할 경우 단순 배당수익보다 훨씬 더 높은 투자수익로 인해 더 많은 이익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설득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냉하기만 하다. 네이버 종목토론방에는 주주서한이 공개된 이후에도 “날강도 기업” “계속 합병 추진하고 법정에서 보자” “이 정도 강도짓을 하다니” 등 주주들의 불만이 끓어넘치고 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시장 상황도 두산을 돕지 않았다. 때마침 덮친 ‘블랙 먼데이’ 사태까지 겹쳐 5일 증시에서 두산의 주가는 고꾸라졌다. 두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가가 각각 15% 가까이 빠졌다. 두산에너빌리티도 전거래일 대비 10.34% 하락했다.
이번 주주서한은 향후 시너지나 합병비율이 정당하다는 주장이 아닌 밥캣의 저평가, 교환비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담았어야 했다. 알맹이가 빠진 이번 주주서한은 두산이 소액주주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도 결국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을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다. 두산은 이미 지난 한 달간 시장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이번 주주서한은 두산이 신뢰를 회복할 기회였기도 하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한때 두산은 ‘사람이 미래’라고 강조했다. 잃으면 돈보다 되찾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주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