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초혁신경제 선구안 넓힐 조직 신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생산적 금융 확고히 실천”
8월 중 중기대출 잔액 3.3조원 순증…1~7월의 3배

[인사이트코리아 = 박지훈 기자] ‘진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정부의 생산적 금융 주문에 4대 금융그룹 회장들이 앞다퉈 답을 내놓고 있다. AI·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대해 우호적인 여신조건을 제시하며 취급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신한은행은 정부가 추진하는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에 발맞춰 전담 애자일(Agile·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소규모 조직문화) 조직을 신설하고 성장지원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잠재성장률 급락 ▲중국의 기술 추월 및 미국의 관세부과 등 세계무역질서 변화 ▲기업규모·지역·소득수준별 양극화 심화 등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의 핵심으로 ‘인공지능(AI) 대전환 15대 프로젝트’와 함께 SiC 전력반도체, 그래핀, LNG 화물창, 특수탄소강, K-식품을 비롯한 초혁신경제 15개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정부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업에 재정·세제·금융·규제 등 패키지 지원방안을 짜고 있다.
이 같은 경제정책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시한 ‘진짜 성장’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정책을 뒷받침 하기 위해 부동산 중심 가계담보대출 관행을 억제하고 기업에 대한 투·융자를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을 금융권에 거듭 당부하고 있다.

정부 새 경제정책에 지원 약속
신한은행이 이번에 신설하는 조직은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와 관련 있는 대기업, 중견·중소기업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평가해 기존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한도·금리 등 여신 조건을 우호적인 수준으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결정은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구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진 회장은 지난 10일 정부가 주최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호대회에서 “담보 위주의 영업관행은 금융권에 선구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정확한 신용평가 방식과 산업 분석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초혁신경제 ‘선수’들을 알아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로 했다. 관련 산업 선도기업에 근무했거나 벤처캐피털 운용·심사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를 뽑아 신설 조직에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새로운 경제성장전략을 지원하려는 분위기는 신한은행 외에도 금융권 곳곳에서 일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19일 세계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국제 콘퍼런스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길: 금융 혁신의 역할’을 개최해 글로벌 석학, 전문가들과 고민을 나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은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등을 목표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며 “우리금융은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을 확고히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임 회장이 말한 혁신경제와 균형성장은 정부가 이번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책방향이다. 즉, 우리금융이 정부의 AI 대전환과 초혁신경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우리금융 산하 우리은행은 이미 바람직한 생산적 금융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 발주 기록만으로도 첨단산업 중소기업에 운전자금대출을 내주는 ‘우리CUBE데이터론’이 그것이다.
하나금융은 AI·로봇 산업에서 생산적 금융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지난 7월말에는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와, 이달 10일에는 웨어러블(착용형) 로봇기업 엔젤로보틱스와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맺었다.
하나금융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업금융 노하우를 활용해 기술력을 보유한 AI·로봇혁신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협력하고 맞춤형 금융서비스 영역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미래 산업을 선도해 나갈 AI·소프트웨어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든든한 동반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KB금융도 ‘KB중소기업 동반성장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 의지에 부응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위한 KB모아드림론, KB 우량산업단지기업 우대대출, KB 유망분야 성장기업 우대대출, KB수출기업 우대대출 등 맞춤형 특화상품을 새로 꾸리고 있다.
특히 KB 유망분야 성장기업 우대대출은 성장 가능성이 높고 우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대출금리 등을 우대해 지원한다. 정부 부처와 정책금융기관이 협력해 운영하는 국가전략사업 ‘혁신 프리미어 1000’으로 선정된 혁신·첨단기업을 대출 대상에 추가할 예정이다.

투·융자 여력 늘리는 정부…4대 은행, 기업대출 확대로 화답
정부는 은행권이 부동산 중심 가계대출이 아닌 혁신기업대출에 힘쓸 수 있도록 규제에 변화를 줬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을 기존 15%에서 20%로 높이고 주식 위험가중치는 400%에서 250%로 낮추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31조6000억원 규모 위험가중자산(RWA)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대출 평균 위험가중치가 43%라는 점을 고려하면 73조5000억원의 기업대출 여력이 발생할 전망이다.
정부의 새로운 비전과 이에 대한 은행권의 화답으로 중소기업대출 취급도 늘어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8월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546조3933억원으로 1개월 전보다 3조3299억원 증가했다. 올 1~7월 순증액이 1조원 남짓인 걸을 고려할 때 상당한 성장세다.
은행권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줄곧 생산적 요구를 당부하면서 업계가 중소기업대출 취급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며 “위험가중치 조정으로 늘어난 투·융자 여력이 고스란히 기업금융시장으로 흘러가려면 기업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 개선 등 추가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