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안 발표 이후 주가 곤두박질
오너일가만 이익 보는 불공정 논란에 투자자들 마음 떠나
계열사 주가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낮아져…개편 무산 가능성

[인사이트코리아 = 이숙영 기자] 두산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2차 정정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주주 설득에 실패한 모양새다. 오너일가 배 채우기 식으로 무리하게 진행된 개편이라는 시장 평가에 두산그룹 자체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두산의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 전과 비교해 37.1% 떨어졌다. 두산은 이날 전 거래일 대비 0.07% 하락한 15만1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개편 발표 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7월 11일에는 24만1500원에 거래됐다.
두산 주가가 추락하는 것은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를 희생양 삼아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두산은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리하고 밥캣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알짜 기업인 밥캣과 적자 기업 로보틱스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마음이 돌아서며 지주사 두산의 주가가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이번 개편이 주주가 아닌 오너일가에 유리하게 짜였다고 보고 있다. 통상 그룹 개편은 계열사 간 시너지와 그룹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되지만 두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이유는 계획대로 개편이 진행되면 최종적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두산 총수일가여서다. 개편으로 두산 오너가는 그룹 캐시카우 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3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
두산 오너가는 지난해 말 기준 두산 지분 39.87%를 가지고 두산을 지배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으로 7.6%를 보유하고 있다. 2대주주는 박 회장 동생 박지원 부회장으로 지분율은 5.50%다.
개편 전에는 두산이 에너빌리티를 지배하고 에너빌리티가 밥캣 지분 46%를 가진 구조다. 밥캣에 대한 두산의 실질 지배력은 13% 수준 남짓이다. 하지만 밥캣이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되면 밥캣에 대한 두산의 실질 지배력은 42%까지 올라간다.
이에 대해 주주보다는 오너일가를 위한 개편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주주는 물론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두산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요구로 다시 제출한 정정신고서에도 문제가 된 합병비율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 상황으로 볼 때 두산의 개편이 예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개편 핵심인 에너빌리티·밥캣·로보틱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낮아져서다. 세 기업의 이날 종가는 각각 1만8040원, 4만300원, 6만8700원이다. 이는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각각 13.6%, 20.1%, 14.6% 낮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보다 낮아지면 주주들은 손실을 피하기 위해 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에너빌리티‧밥캣‧로보틱스는 주식 매수청구 한도를 정해놨다. 각각 6000억원, 1조5000억원, 5000억원이다. 이를 넘으면 개편 절차를 재검토해야 한다. 주가가 떨어지고 주주 불만이 극에 달해 매수청구 한도가 넘어갈 수 있다.
금융당국이 두산 개편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조하며 압박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 학계 간담회를 개최하고 불공정 합병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불공정 합병 등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며 “회사와 주주이익이 동일하며 충실의무 대상인 회사에 주주이익이 포함돼 있다는 견해가 다수임에도 현실에서는 이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의 발언은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합병 자체가 무산된다. 이 원장은 앞서 8일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만약 (두산 신고서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미 지난 정정 요구로 신고서 효력 발생일이 기존 17일에서 28일로 밀린 상태다.
두산은 이번 개편과 관련해 다음달 25일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주총에 앞서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주주 반대의사 통지 접수를 받는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9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