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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6 18:52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혼자는 우리를 만든다⑧] 결혼 굴레서 프랑스 청년들 해방시킨 ‘팍스’
[혼자는 우리를 만든다⑧] 결혼 굴레서 프랑스 청년들 해방시킨 ‘팍스’
  • 특별기획취재팀
  • 승인 2023.10.21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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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가정, 남성 집안일 비중 높고 부모 양성 사용 많아
팍스 체결 건수, 혼인 신고에 육박…결혼 루트로 자리 잡아
프랑스 파리 남서부 인근 도시 베르사유는 다산을 장려하는 로마 카톨릭을 신봉하고 대대로 부자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해 아이 3~4명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합계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80명으로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체코(1.83명), 루마니아(1.81명)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박지훈
프랑스 파리 남서부 인근 도시 베르사이유는 다산을 장려하는 로마 카톨릭을 신봉하고 대대로 부자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해 아이 3~4명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합계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80명으로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체코(1.83명), 루마니아(1.81명)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박지훈>

2023년 2분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명입니다.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1명도 안 된다는 얘기죠. 세계 최저이자 역대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추세로 가다간 몇백년 후 한민족이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월 30만원의 영아수당과 함께 7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하고 있지만 출산율 반등을 꾀하기엔 역부족입니다. 한국 청년들은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 취직, 내 집 마련 등 구조적 문제가 켜켜이 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미래를 저당잡힌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사이트코리아>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출산율이 높은 유럽 국가들을 취재하며 국내 초저출생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들의 독립 지연’ 때문으로 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봤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특별기획취재팀] 올해 우리나라 언론은 프랑스의 ‘팍스(Pacte Civil de Solidarité·PACS)’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우리말로 ‘시민연대계약’으로 해석되는 팍스는 시청에 등록하는 공식적인 동거관계로 법원에 신고하는 혼인관계보다는 느슨합니다.

팍스를 맺은 커플은 상대방을 소개할 때 아내(남편)가 아닌 파트너라고 부르지만 사회와 국가는 이들을 혼인관계와 다를 바 없이 우대하죠. 회사는 팍스를 맺은 직원에게 결혼휴가처럼 팍스 휴가를 주며 정부는 팍스 커플에게 세금 할인 혜택을, 그 자녀에게는 혼인 부부의 아이와 똑같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당초 팍스는 1999년 동성애자의 가정 형성, 혼외 출산 아이들에 대한 보호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혼외 출산율은 이미 약 40%로 높았으며 지금은 무려 60% 이상입니다.

다수 국내 언론이 팍스를 주목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혼외출생률이 2% 남짓에 불과한 한국에 만들어지면 혼외출산이 늘고 결국 출산율도 높아지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접근방법이 조금 잘못됐습니다.

프랑스 팍스 커플 여성의 가사노동 분담 비중은 65.1%로 결혼 여성, 동거 여성보다 낮았습니다.자료=파리정치대학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 편집=박지훈
프랑스 팍스 커플 여성의 가사노동 분담 비중은 65.1%로 결혼 여성, 동거 여성보다 낮았습니다.<자료=파리정치대학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 편집=박지훈>

혼외출산 아닌 성평등 효과 주목해야

팍스에 대해 처음 듣거나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팍스를 혼외출산율을 높일 비책이라고 말한다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어떻게 아이의 성장 환경보다 국가의 출산율이 더 중요하냐는 거죠.

우리는 프랑스의 팍스를 가정 내 성평등을 이끌어낸 제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팍스를 통해 혼외출산을 장려할 게 아니라 팍스를 통해 여성과 남성 모두를 성불평등한 전통의 가족·결혼관으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에는 팍스가 가정 내 성평등과 관련 있다는 논문이 나왔죠. 파리정치대학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OFCE) 라미아 칸딜(Lamia Kandil), 엘렌 페히비에(Hélène Périvier) 박사가 쓴 <가사노동 분담? 1985-2009년 프랑스의 남녀 노동 분업(Partager les taches domestiques ? La division du travail dans les couples selon le type d’union en France, 1985-2009>이라는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프랑스 가정 형태를 결혼, 팍스, 동거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고 남녀 파트너의 가사노동 비중을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2009년 기준 팍스 여성 파트너의 가사노동 분업 비중은 평균 65.1%로 기혼 여성(72.0%), 동거 여성(73.5%)보다 적었습니다. 팍스 가정이 기혼·동거 가정보다 집안일을 비교적 평등하게 나눈다는 증거입니다.

팍스 커플들이 기혼 부부보다 성평등 의식이 강한 이유는 여성 파트너가 고학력에 경제생활을 지속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09년 팍스 여성 가운데 비경제활동인 비중은 8%로 기혼 여성(13%)보다 적었죠. 대학 이상 교육 과정을 마친 여성 비중도 팍스가 72%로 기혼(46%)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두 학자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팍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동거하거나 결혼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성평등주의 가치를 신봉한다”며 “2009년 (도입된) 팍스가 성이념 측면에서 더욱 평등주의적인 커플들을 끌어들였다”고 결론 내렸죠.

팍스 파트너는 자신들의 가정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성평등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디에 프헤통(Didier Breton) 등 여러 연구진이 프랑스국립인구연구소(INED)의 저널인 포퓰라시옹(Population·인구)에 2021년 기고한 <프랑스의 최근 인구 동향(Recent demographic trends elopments in France)> 보고서를 보면 팍스 등 미혼 커플이 기혼 부부보다 자녀들에게 성평등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노력합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19년생 프랑스 아이들의 81.5%는 아버지의 성(姓)만, 11.8%는 부모의 성을 모두 씁니다. 기혼 부부 아이들 가운데 부모 양성을 쓰는 경우는 5.6%인데 반해 미혼 커플(팍스 포함) 아이들 가운데 부모 양성을 사용하는 경우는 15.7%로 3배가량 많습니다. 프랑스는 2005년부터 아이들이 부모 양성을 쓸 수 있도록 가족법을 개정했습니다.

프랑스 가족문화와 가족정책에 대한 칼럼을 남겨온 홍소라 라호셸 대학교(La Rochelle Université) 한국어·한국현대사학과 교수는 “커플의 결합 형태 중 팍스가 자유결합 (단순동거)에 비해 보다 서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동시에 결혼보다 기존의 관습에는 덜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혼외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들의 15.7%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함께 쓰는데 반해 결혼부부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이 비율이 5.6%로 3분의 1가량 적다.자료=프랑스국립인구연구소, 편집=박지훈
혼외관계(팍스 포함)에서 출생한 아이들의 15.7%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함께 쓰는데 반해 결혼부부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이 비율이 5.6%로 3분의 1가량 적다.<자료=프랑스국립인구연구소, 편집=박지훈>

팍스 도입 후 순식간에 변한 프랑스 사회

프랑스의 수준 높은 성평등은 1968년 5월 발생한 ‘68혁명’ 영향이라는 말이 많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프랑스 기혼 남성이 1주일 동안 집안일(가사노동)에 들인 시간은 1985년 5시간 12분에서 1998년 4시간 37분으로 오히려 30분 이상 줄었습니다.

기혼 여성의 주당 가사노동 시간은 23시간 23분에서 20시간 56분으로 줄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에 따른 것이죠. 68혁명을 주도하거나 이에 영향을 받는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늘릴 때 같은 세대 남성들은 오히려 과거 세대보다 집안일을 덜했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 특별기획취재팀이 만난 프랑스 청년들은 아버지의 가사노동 참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6년생 프랑스인 필립프(가명) 씨와 팍스를 맺은 후 최근 결혼한 김가영(가명) 씨는 “부모님 세대에 프랑스 아버지는 한국 아버지만큼이나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생인 프랑스 남성 파비누(가명) 씨는 “부모님이나 같은 세대 결혼 커플을 보면 남녀 모두 직장을 다니고 일해도 집안일이나 육아는 여성의 몫이지만 남성이 도와준다는 인식이 우세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오헬리엉 루베흐(Aurélien Loubert)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자신의 책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일어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를 뵈러 갔다. 거기서 선물을 받고 함께 식사를 한 후 오후에 외가로 향하는 게 정해진 일정이었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에 볼 수 있는 동선”이라고 밝혔습니다.

1981년생 루베흐 교수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명절에 아버지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하는 문화가 남아있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1990년대 후반 출생한 프랑스 사람들은 이 같은 관행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루베흐 교수 가족 내에서만 통용된 문화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 같은 관행이 있었다면 프랑스 사회가 10여년 만에 확 바뀐 셈입니다.

오히려 프랑스 남성의 가사노동은 팍스가 제도화 된 이후 늘어난 것이 관측됩니다. 기혼 남성의 주당 가사노동 시간은 2009년 6시간 29분으로 증가했고, 여성과 동거 중인 남성의 주당 가사노동 시간도 1998년 5시간 43분에서 2009년 6시간 32분으로 늘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팍스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팍스 체결 커플 수는 2007년 이전까지 매년 1만명씩 늘어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결혼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2만, 3만명씩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새로 등록된 이성 남녀 팍스 커플 수는 18만2000명으로 이성 결혼 수(23만7000명)의 수준에 육박했습니다.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한 2020년에는 절차의 간편함 덕분에 결혼 수를 뛰어넘기도 했죠. 프랑스에서 대체로 동거 → 팍스(출산) → 출산(팍스) → 결혼이라는 과정이 일반적인 루트로 자리잡았음을 생각하면 이미 팍스가 팍스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결혼보다 많을 가능성이 큽니다.

프랑스 파리 8구에서 아버지가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있다.박지훈
프랑스 파리 8구에서 아버지가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있다.<박지훈>

가족으로 부터 청년들을 독립시키다

팍스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기대하는 가족으로부터 청년들을 해방시켜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효과를 내죠. 프랑스 청년들이 팍스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거비가 매우 살인적이기 때문이죠. 학업 혹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하는 한국 청년처럼 프랑스 청년들도 임대료가 매우 비싼 파리로 들어옵니다.

많은 프랑스 청년들은 파리로 올라와 동성의 친구와, 혹은 룸메이트를 구해 원룸 같은 작은 집에 살기 시작합니다. 임대료가 매우 비싸 부담을 나누기 위해섭니다. 항상 같이 살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친구나 룸메이트가 회사 위치나 동거·결혼 등 이유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이라는 책을 출간해 프랑스 팍스 문화를 소개한 이승연 씨도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남자친구인 줄리앙(Julien)과 동거를 시작한 케이스죠. 어머니께서 “결혼도 하지 않은 애가 감히 남자와 동거를 하느냐”고 반대했지만 현실적 문제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승연 씨처럼 주거비 등 여러 이유로 이성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커플들은 동거 기간 서로 신뢰를 쌓아 긍정적인 미래를 그려보게 되면 보다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팍스를 맺게 됩니다. 아직 이룰 게 남아 있고 결혼을 하기에는 많은 비용(2만5000~5000만유로, 한화 3500만원~7000만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결혼 외 대안이 없는 한국 청년들은 모아둔 돈이 많지 않다면 결혼, 출산은 언감생심이죠. 결혼을 해야 한다면 결혼비용(결혼정보회사 듀오 평균 4720만원) 전부 혹은 일부를 부모님께 지원받아야 하니 양가 부모님의 결혼 승낙을 받고 입맛에 맞출 수 밖에 없죠. 결혼할 때 도움을 받으니 살면서 양가 부모님의 끊임 없는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승연 씨는 자신의 책에서 “한국 관습에 맞춰 결혼하려면 한국까지 날아가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했을 것이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상대를 원했을 부모님에게 줄리앙은 부족한 사윗감이었을 것”이라며 “두 개인의 합의를 통해 서로의 삶에 서로를 들이기로 했다는 점, 우리 결정에 가족이나 친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지훈·남빛하늘·정서영 기자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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