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회는 하나다!”
“기업과 사회는 하나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5.10.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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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얼마 전, 대림산업 이준용 명예회장이 2000억원을 남북통일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국내 기업인들에게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충격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베풀고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는 평을 받아온 국내 기업인들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박흥순

CEO의 책임은 기업의 신뢰로 돌아온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여름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 수습 과정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은 정치권에 집중돼 있었지만 이 부회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뜻밖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시기적으로도 이전 삼성과 관련한 사건사고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이뤄졌다. 당시 이 부회장은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겠다”며 “관계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대대적인 혁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얼마 후 삼성서울병원의 대대적인 후속대책을 발표하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삼성그룹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이미지답게 자신의 선행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 그는 몇 년 전부터 마리아 수녀원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 난치병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저신용 서민들을 지원하는 미소금융 현장을 방문해 거액의 후원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선행을 해왔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몇몇 언론이 악의적으로 그리는 모습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기 좋아하는 조용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메르스 사태에 발 빠르게 대처해 사회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 사장은 메르스 전염 가능성이 없다는 당국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폐쇄하고 투숙객 전액 환불과 항공료 전액 환불, 전액 클레임 보상 등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이 사장은 평소에도 사회에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2014년 82세 택시기사가 운전하던 차량이 급발진 사고를 일으키면서 호텔신라의회전문을 들이 받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경찰조사 결과는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부주의에 따른 사고로 조사를 마무리해 택시기사는 4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고의 사고 같지 않다. 그의 집을 방문하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운전기사의 딱한사정을 알고 난 후 변상신청을 취소해 세간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삼성은 ‘신뢰할 수 있는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간 구축해온 기업이미지로 미뤄 봤을 때 삼성가 남매의 이런 책임 있는 모습은 국민들이 삼성그룹에 보내는 신뢰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민국 르네상스 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주로 저소득층 미래 인재 육성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메디치 가문이 문화를 융성시킨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르네상스를 일으키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
정몽구 회장의 특별지시로 사재를 들여 지난 2007년 건립된 정몽구재단은 ‘인류 행복과 사회발전을 추구한다’는 슬로건 아래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온드림 앙상블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프로연주자들을 연결시켜주는 이 활동은 그간 학업에 집중됐던 지원문화를 다변화해 실효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체육인들을 알게 모르게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이 협회장으로 있는 양궁협회를 지원하면서 우리나라 양궁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시켜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2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015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대표팀에 30% 증액된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비즈니스 이외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정 부회장이지만 양궁만은 예외로 대표선수들과 격의 없이 만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것을 알고 최근 선수들과 코치진에 40만원 상당의 무선헤드폰을 선물로 증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의 양궁 사랑은 아버지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1984년 LA올림픽때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양궁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것을 본 정 회장은 “한국인이 1등을 하는 종목인데 지원을 받지 못해 세계 무대에서 밀려나서야 되겠나”면서 이후 12년간 양궁협회를 지원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의 무한한 양궁 사랑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양궁사랑은 스포츠 마케팅 차원이 아니다”며 “(정 회장은)‘선수들이 피땀 흘려 세계 정상을 유지하는 모습을 임직원들도 가슴에 새기고, 국민 여러분과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무욕(無慾)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영

1958년, 럭키치약이 출시된지 3년 만에 미국의 콜게이트 치약을 밀어내고 국내시장을 석권하게 되자 회사 임직원들은 값을 올려 더 많은 이윤을 남기자고 구인회 당시 LG 회장에게 건의했다. 이에 구 회장은 “소비자들이 잘 사준다고 값을 올리자는 거요? 몇 푼 안남아도 좋으니 봉사하는 자세를 키워 가면 럭키의 신용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남게 되고 결국 그것이 진실로 돈을 벌게 되는 길이오”라며 크게 호통쳤다. 이때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LG그룹은 ‘고객을 위한 가치창출’과 ‘인재 중심의 경영’을 모토로 삼고, 무욕(無慾)을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故구인회 전 회장의 뒤를 이어 기업을 경영하기 시작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건축가 고 김수근씨가 설계한 사저를 LG연암문화재단에 기증해 1996년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근검 절약이 몸에 배인 그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자리 잡은 자신의 사저를 국내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이자 과학기술 전문도서관으로 흔쾌히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철학은 3대 구본무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구본무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 허례허식을 없애자는 취지의 운동을 펼쳤다. 구 회장은 당시 연말연시에 의례처럼 전해지던 연하장을 보내지 말자는 취지의 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절약한 돈은 약 1억원. 구 회장은 이를 집배원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인 윤당체우장학회에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DMZ 지뢰도발’로 부상을 입은 장병들에게 각각 5억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으로 선대부터 이어져온 무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부터는 LG전자의 여성 직원들이 출산과 육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바꿨다. 구 회장은 “출산과 육아에 회사 업무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는데 LG그룹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사회문제와 별개가 아니다”

한국 기업가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외국기업으로 발렌베리 그룹이 있다. 스웨덴 국민총생산의 30%, 시가총액 40%를 차지하는 이 거대한 기업집단은 엄격한 후계자 선정과정으로 유명하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이라는 항목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군복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그랬고, 신라의 화랑은 물론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도 주요 국가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그 자제들이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지난해에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소위가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시작,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아버지 최태원 회장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니 건강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라”며 딸을 응원했다. 최 소위는 지난 6월 청해부대의 충무공 이순신함을 타고 중동 아덴만으로 파병을 떠났다.

최 소위의 이런 뜻 깊은 생각과 행동은 SK가문의 가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창업주 故최종건 회장의 장남 故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과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은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故최종건 회장은 평소 자식들에게 패기를 강조해 왔고, 이를 따라 자식들이 해병대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최신원 회장의 아들 최성환씨도 2006년 해병대로 자원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해병대 출신인 최 회장이 자신의 아들에게 해병대 입대를 권유한 것으로 SK가문의 2, 3세대가 해병대 동문인 셈이다. 최신원 회장은 한국의 더기빙플레지라 불리는 ‘아너소사이어티’의 총대표을 맡고 있다. 최 회장과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지난달 서울에서 전 세계 ‘기부왕’들을 초청해 뜻깊은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도 SK가문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특별채용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최 회장은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이 보여준 열정과 패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DNA가 될 것”이라며 “우리사회와 기업은 이런 정신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최 회장은 복역 중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을 출간하는 등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더욱 심화시켜 왔다.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주재한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는 “경영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기업은 사회 양극화, 경제활력, 청년실업 등의 사회문제와 별개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며 향후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힘쓸 것임을 내비쳤다.

경영학계의 목소리…“기업 아닌 개인 돈으로 기부하라”

경영학계는 우리 사회가 규모나 질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수의 국제경영학술단체는 “효율성,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서구적인 방식은 수명이 다 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대안으로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내세우면서 “(경영방식에 있어) 앞으로는 단순한 이윤을 창출하는 것보다 재화를 굴리는 주체인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율·합리성에서 ‘인본주의’로 갈 때

최정길 경희대 교수 겸 대한경영학회장은 “지금과 같은 구조가 계속되면 자본주의는 계층 간 단절을 일으키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개성상인과 경주 최 부잣집의 이야기를 들어 “이들(개성상인과 경주최부잣집)의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서로를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에 흉년이 들면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누어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 여기에 바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 경영학이 참고해야 할 정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한국의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사회공헌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 교수는 지난달 10일 제주 김만덕 기념관에서 열린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의 현황과 과제 세미나’ 주제연설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은 결국 기업에 득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기업전략의 한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사회공헌을 하면 기업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에는 기업의 공헌은 있어도 기업가의 공헌이 없다. 법인 돈으로만 기부하기 때문”이라며 “외국의 경우 기부는 모두 개인 돈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기부한 것 중 개인돈은 없다”고 지적했다.
굳이 자체적인 재단을 따로 만드는 것은 합리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회공헌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직접 하는 건 정말 어렵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가장 말리고 싶은 일이 개인이나 기업이 재단을 만드는 일”이라며 “재단을 만들게 되면 엄청난 비용이 그 재단을 유지하는데 쓰여지고, 실제로 목적사업에 돈을 못 쓰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다각화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은다. 기존의 기부에 국한된 실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업 연구가들도 “어떤 형태로든 의무감, 책임감 사회에 대한 헌신이라는 비전과 가치를 제시했던 기업이 오래 성공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방안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김주헌 차의과대학교 융합과학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 환원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특히 전 재산을 환원한다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즉흥적이거나 과도하게 사회 환원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자가 말한 ‘내성불구 부하우하구(內省不疚 夫何憂何懼 : 자신의 마음을 살펴 부끄러움이 없으면 무엇이 두렵겠는가?)’라는 문구를 되새겨 봄직 하다.

‘인도의 국민기업’ 타타그룹의 성공비결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보이고 있는 국가다. ‘인도 안에는 3개의 인도가 존재한다’는 말도 있는데, 인도에서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은 3억5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 세법에는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다. 부의 대물림을 하는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자 천국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시절부터 부를 축적한 재벌들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고 자녀들에게 기업을 통째로 넘겨주곤 했다. 그럼에도 인도 최대의 재벌가문 중 하나인 타타그룹은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년 11월 26일. 인도의 수도 뭄바이 시내에 있는 타지마할 호텔에서 끔찍한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2박 3일간 1500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당시 호텔 직원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2명의 호텔직원이 테러범의 손에 희생됐다.
희생된 타지마할 호텔의 모기업인 타타그룹의 보상은 파격적이었다. 해당 직원이 사망한 시점부터 은퇴까지의 모든 급료를 지급했다. 예를 들어 사망 직원의 나이가 30세였다면 은퇴나이인 60세까지 30년 치의 평생연봉을 지급했다. 여기에 자녀들의 교육비까지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4년제 대학, 대학원은 물론 해외유학비용까지 포함한다. 사망 유가족들의 평생 의료비도 지원함과 동시에 사망직원의 빚을 액수에 관계없이 전액 탕감해 줬다. 또, 직원 1인당 360만 루피(약 9000만원)~850만 루피(약 2억125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사진. 타지마할 호텔)
상상을 뛰어넘는 보상에 온 인도가 술렁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희생직원의 유가족 80명을 타타그룹의 회장이 사흘 내내 직접 찾아다니며 조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도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100여개 자회사와 45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타타그룹 회장의 행보에는 어떤 우월감이나 오만함도 찾을 수 없었다. 

수익의 60%는 사회로 환원

타타그룹이 인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라탄 나발 타타 명예회장의 공이 지대했다. 라탄 명예회장은 1991년 54세에 회장직을 물려받아 혁신적인 경영과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타타그룹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2004년 대우차를 인수해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졌고, 2008년에는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급자동차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를 사들이기도 했다.

라탄 명예회장의 진면목은 그가 지닌 정신에서 발휘된다. 150년의 역사를 지닌 타타그룹은 창업자 잠셋지 타타의 정신을 받들어 ‘신의’와 ‘헌신’을 모토로 삼는다. ‘사회로부터 받은 것은 사회로 환원한다’는 창업주의 철학 아래 직원과 협력업체, 고객과 국가에 헌신하고 있다. 라탄 명예회장도 이 영향을 받아 성공과 이익을 추구하는 여타 기업가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타타그룹의 독특한 소유구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복잡한 문어발식 출자구조로 봤을 때 타타그룹은 한국의 여느 재벌기업과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차이점은 타타그룹의 자금 중 3분의 2, 66%를 그룹 내 자선단체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타그룹이 수익을 올리면 그 중 60%는 사회로 다시 환원되는 구조다. 이를 토대로 타타그룹은 철강과 수력발전 등 국가의 기간산업 육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물론, 복리후생, 빈민 구제사업, 협력업체와 상생, 인재양성, 이익금의 사회환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할에 있어서 타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을 상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 기업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례로 지난 2009년 200만원대의 초저가 자동차를 내놓으면서 라탄 명예회장은 “더 이상 오토바이에 한 가족 모두가 매달려 위험한 운행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相生의 깨어있는 자본주의’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라고 불리는 타타그룹의 이런 기업경영 방식은 주주에만 신경 쓰고 단기적인 이윤에 집착하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심에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윤보다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더 많이 두면서도 타타그룹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부단한 기업혁신과 라탄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타타)
2008년 3월 타타그룹은 미국의 포드자동차로부터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했다. 23억달러가 투자된 이 거래는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타타그룹이 기술만 빼먹는 ‘먹튀’가 될 것이라느니, 적자로 인해 타타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이라느니 하는 안 좋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규어-랜드로버는 수 십년째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부실기업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인수 첫해 판매량은 전년보다 32% 급감한 16만7000대를 기록했다. 4억4800만 달러의 적자가 났다. 그 후 타타그룹의 철저한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2010년에는 24만3621대의 판매량을 기록, 26%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고 순익도 18억 달러에 달했다. 2011년에는 30만6000대를 팔아 처음으로 30만대 고지를 넘었다. 매출은 29%가 증가했다. 부실기업의 대명사였던 재규어-랜드로버의 성공은 부단한 기업혁신과 위험을 무릅쓰는 기업가정신, 군림하지 않는 기업문화, 노동자·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이 주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내부고발자’ 라탄 회장

평소엔 친근하고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라탄 명예회장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 가지는 바로 청렴이다. 2002년 인도를 뒤흔든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타타그룹의 금융자회사 타타파이낸스. 당시 타타파이낸스는 경영상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타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타타선즈가 부정의 낌새를 알아차렸고, 자체적으로 내부감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타타파이낸스에서 내부자 거래 및 분식회계 등 비정상적인 행동이 포착됐다. 타타그룹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타타파이낸스를 사정당국에 즉각 고발했다. 후폭풍은 컸다. 타타파이낸스는 파산하고 사장은 구속됐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그룹 자금 70억루피(약 1750억원)가 투입됐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발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인데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든 꼴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이를 무마하기 위해 관계당국의 조사도 무산시키려 하는 일부 기업인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라탄 명예회장은 무슨 생각으로 고발을 강행한 것일까?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론 부정행위를 조용히 덮고 넘어갔더라면 손실은 최소화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으면 이는 묵시적으로 ‘이런 종류의 부정은 회사에서 용인해주는구나’라고 사원들이 생각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라고 당시 고발을 하게 된 심경을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오늘날 타타파이낸스를 거론할 때 아무도 당시 타타의 부정행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타타가 내부부정을 어떻게 용기있게 드러냈는지와 모든 손실을 감수하면서 책임을 진 존경스러운 행위만 기억할 뿐이다. 정직, 용기, 신뢰, 이것이 기업을 성공시키는 라탄 명예회장의 진짜 전략이 아니었을까.

타타 vs 릴라이언스…‘明과 暗’

타타그룹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다른 기업이 있다. 바로 인도 제1의 부자 무케시 암바니 회장의 릴라이언스그룹이다. 릴라이언스그룹은 창업자 시절부터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다. 인도가 1990년대 초반 규제완화와 개방을 추진할 때, 릴라이언스는 정경유착을 통해 여러 사업권을 따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릴라이언스는 내수시장에 집중하는 화학, 석유, 에너시, 통신, 유통, 미디어 등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시가총액은 인도 증시의 4%에 달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2세 경영자인 암바니 회장의 재산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 ‘안틸라’를 소유하고 있다. 그의 영향력은 필요에 따라서 장관을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는 매우혼탁해 내부거래가 연 12억 달러규모로 추정될 뿐 정확한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잘 나가던’ 릴라이언스 그룹이 휘청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창업주 디루바이 암바니가 유언장 없이 사망하면서부터다. 형제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축적됐다. 결국 2009년 리온델바셀을 인수하는데 실패했고, 2011년 타타그룹에 인도 재계 1위 자리를 뺏긴데 이어 최근에는 인도 최고의 부자자리도 ‘인도의 제약왕’ 딜립 샹비 선 파마슈티컬 회장에게 내줬다.
전문가들은 타타그룹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는 반면 릴라이언스그룹의 몰락이 가속화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릴라이언스는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로 앞으로도 정경유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반면 타타는 일찍부터 정경유착을 지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며 “만일 인도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면, 타타가 승자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백성으로부터 두려움과 사랑을 함께 받아야 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배신할 수 있지만 두려움의 대상에게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군주론은 서양에서 금서로 지정되고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최근 인문학 열풍을 타고 마키아벨리가 경영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을 알려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경영자들 역시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마키아벨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처세술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도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교활하거나 잔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항상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의 기업인이 마키아벨리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아마 타타그룹의 라탄 명예회장처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라고 할 것이다. 주주, 직원, 고객은 물론 더 나아가 국민과 사회가 양심 있는 ‘고귀한’ 기업인을 원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이며, 글로벌 경쟁이 더 심화하고 있는 이 상황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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