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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화(J)’ 공포가 어슬렁댄다
‘일본화(J)’ 공포가 어슬렁댄다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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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화(日本化·Japanification)’가 다시 세계경제 화두로 등장했다. 언론들이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 대신 ‘J의 공포’ 또는 ‘일본화’를 거론하고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화가 미국과 유럽을 어슬렁댄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영문판 아시안리뷰는 “선진국이 일본화 하는 모습이 당혹스럽다”는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BOJ) 총재의 기고를 게재했다.

일본화가 무슨 뜻인가. 1990년대부터 일본이 겪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빗댄 조어(造語)다. 일본화의 특징적 현상은 저물가·저금리·저성장으로 요약된다. ‘일본병(病)’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과 함께 잘못된 일본 전철을 밟지 말자는 의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이 더딘 것을 놓고 2011~2012년 일본화 우려가 제기됐다. 그 뒤 한동안 뜸하더니만 올 8월부터 다시 들먹였다. 미국의 장기국채 금리가 하락하며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진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경기가 악화됨에 따른 경고 메시지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거의 제로(0)금리 상태라서 금리정책을 쓰기 어렵고,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세계화 질서에 금이 갔고, 보호무역주의와 각자도생이 횡행하는 혼돈의 시대라는 점 또한 일본화 우려를 소환했다.  

국내에서도 ‘일본화 경고’가 다시 등장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토론회와 보고서를 통해 거론하고 나섰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는 여러 차례 있었다. 당시에는 부동산 거품과 급속한 고령화, 잠재성장률 하락 등이 주된 근거였다. 한두 가지 유사점을 부각시켜 지나치게 위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에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기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구체적 통계가 함께 제시된다. 정부의 2%대 호언과 달리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를 기록할 판이다. 석유파동과 외환·금융위기 등 쇼크라 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빚어지는 저성장이다. 경기는 2017년 9월 정점을 찍은 뒤 2년 넘게 속절없이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기준금리는 이미 미국보다 낮은 연 1.25% 초저금리인데, 내년 초 추가인하 전망이 우세하다. 소비자물가는 8·9월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가 그동안 경험하지 않은 마이너스 물가와 ‘0%대 금리’,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세계 유일의 ‘출산율 1명 미만 국가’로 고령화 속도가 빨라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숱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값은 계속 오른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경기는 살리지 못한 채 국가채무가 급증했다. 한국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강행 등 정책 실패에 따른 민간 부문 부진을 재정으로 틀어막기에 급급하다.

재정투입에 의존한 경기 활성화는 곧 한계에 봉착한다. 기업투자, 민간 부문의 활력이 살아나야 경기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 신산업 태동을 가로막는 규제 혁파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시급하다. 지금 검찰·교육 개혁을 놓고 갈등하기보다 노동·규제 개혁에 더 힘을 쏟아야 ‘일본화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