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15 11:36 (금)
욱일기가 '풍어기'라는 일본 극우집단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욱일기가 '풍어기'라는 일본 극우집단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 도다솔 기자
  • 승인 2019.09.10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래 풍어기엔 욱일기 문양 없어...나치 상징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일 뿐

[인사이트코리아=도다솔 기자]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올림픽 경기장 내 전범기 사용을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우리 정부는 도쿄올림픽에서 전범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정식 요청할 방침이다.

10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전범기 논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도쿄올림픽 경기장에 이를 반입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발표 등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담아 빠른 시일 내 IOC에 공식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욱일기에 내포된 정치적 의미에 민감하지만 IOC를 포함한 유럽 회원국은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서한을 통해 욱일기 논란의 배경을 국제 스포츠계에 정확히 알리고, 올림픽에서 이를 허용하는 것은 ‘평화의 제전을 지향하는 IOC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체육회 관계자도 “유럽에서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문제에 대해 엄격하지만 욱일기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모르거나 관심이 거의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문체부와 서한의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강조했다.

같은 군국주의의 상징임에도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일본의 전범기의 이미지에는 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전범기는 풍어깃발이 원조다?

일본에서 욱일기라고 불리는 전범기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1870년 일본제국 육군 군기로 처음 사용됐다. 1889년에는 일본제국 해군 군함기로도 사용됐으며 특히 태평양전쟁 등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무력 침략할 때 육·해군의 군기로 사용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로 통한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미군에 의해 육·해군이 해체되면서 욱일기의 사용도 일단 중단됐다. 이후 1954년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햇살의 숫자만 8개로 줄인 모양의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다시 사용했고 같은 해 창설된 해상자위대는 과거 일본 해군이 사용하던 군함기를 그대로 자위함기로 제정해 쓰기 시작했다.

자위대에서 욱일기를 다시 사용하면서 현재 일본에서는 욱일기와 그 문양이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 없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 욱일기가 국기처럼 응원기로 당당하게 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등 대중문화나 상품 등에 욱일기 문양이 사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중국·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전범기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일본에서는 욱일기가 군기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기로 사용된 것이 원조이기 때문에 전범기로 규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많은 어선들은 욱일기 모양을 한 화려한 디자인의 풍어기를 달고 조업 중이다. 화려한 풍어기는 일본의 전통 조업 풍습으로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일본의 화려한 풍어깃발 가운데 전범기 모양이 눈에 띈다.야후재팬
일본의 화려한 풍어깃발 가운데 전범기 모양이 눈에 띈다.<야후재팬>

그러나 일부 일본 학자들은 전범기 디자인이 포함된 화려한 풍어기는 군기로 사용되기 전부터 사용된 오랜 전통이 아닌 1960년대부터 등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960년대 이전의 풍어기는 남색, 흰색 등 단색 위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카와시마 슈이치 토호쿠대학 재해과학국제연구소 연구원은 <어로전승>이라는 책에서 “본래 일본의 풍어기는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는 염색되지 않은 삼베 재질의 무지 깃발이 주류였으며 현대의 풍어기처럼 화려한 깃발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현대미술가 텐묘야 히사시도 이 같은 주장에 근거를 보탰다. 그는 일본의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디자인을 분석한 책 <BASARA: 越境する日本美術論縄文土器からデコトラまで>에서 “풍어기가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문양을 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일본 아오모리 현 주변에서 시작된 해산물 운송트럭에 화려한 장식을 더하는 이른바 ‘데코토라’ 붐이 일어나면서 어민 사이에 그 유행이 퍼져 나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데코토라 붐과 일본 내 양키 문화의 확산과 함께 화려한 풍어기가 일본 전국에 퍼져 정착됐다”고 주장했다.

日, 가해국 인식 부재...전범기 사용 죄책감 없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편인데, 하켄크로이츠에 대해서는 나치가 독일을 통치했을 때 관련한 모든 것을 금지했다. 독일 국민들도 이에 동의했으며 인근 국가인 프랑스는 아예 법으로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일본의 경우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을 빙자해 자위대를 만들면서 국제 정세의 혼란을 틈타 욱일기를 자위대 깃발로 결정하고 자위대 로고로 꾸준히 사용해왔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제국주의의 상징이나 금지된 것이라는 인식이 적어 다양한 곳에서 하나의 디자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전범기가 군기로 쓰이다 보니 일본 국민들에게는 일장기 외에 별도 국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영국의 유니언잭이나 미국의 성조기처럼 하나의 디자인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일본 역사교육 왜곡으로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인식 부족까지 겹쳐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 일본의 침략 피해국들이 전범기와 관련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이 주장하는 풍어기 원조설도 정설이 아니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일본의 극우적 시각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한국이 욱일기를 전범기라고 막무가내 주장을 한다며 생트집을 잡는 한국의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보도하는 등 노골적으로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태양을 디자인화한 욱일기는 풍어기로 이용돼 오다가 해상 자위대에서 군함 깃발로 채택됐다”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돼 온 욱일기는 일본의 ‘외부 간판’이며 이를 ‘전범기’라고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직 한국과 북한 뿐”이라고 강변했다.

이 언론은 “한국은 피곤한 국가다. 한국의 트집은 도를 넘어서서 방사형 디자인은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국이 강제징용 소송 건과 지소미아 협정 종료 등 한일 관계가 악화되자 후쿠시마산 식재료의 방사능 수치와 올림픽 준비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욱일기 트집도 그 일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1943년 말레이시아 페낭주에 도착한 일본군함 U-511을 위해 열린 환영회에 걸린 일본과 독일의 전범기.온라인 커뮤니티
1943년 말레이시아 페낭주에 도착한 일본군함 U-511을 위해 열린 환영회에 걸린 일본과 독일의 전범기.<온라인 커뮤니티>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사용하겠다는 일본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고 막 살겠다는 뜻을 대외적으로 밝힌 거나 마찬가지”라며 “과거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도 나치와는 다른 식으로 사용됐지만 나치의 상징 전범기로 인식된 후에는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사용을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최근 일본 방위성과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욱일기 관련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홍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나서서 욱일기는 전범기가 아니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의도적으로 욱일기를 왜곡·선전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본 국민까지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도쿄올림픽을 전 세계인들에게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똑같은 전범기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릴 찬스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ooood0903@insightkorea.co.kr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