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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여성 도우미가 보도자료 배포하니 기자들 눈이?
미모의 여성 도우미가 보도자료 배포하니 기자들 눈이?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18.10.31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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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대전엑스포 전시관 홍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
올해 2월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모바일월드 콩그레스) 전시장 앞에서 도우미들이 개막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올해 2월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모바일월드 콩그레스) 전시장 앞에서 도우미들이 개막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인사이트코리아] 얼마 전 아내와 같이 서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휴가 대신이기도 했지만 그보단 두 번째 맞이한 무술년을 기념해서다. 프랑크푸르트, 로마 등 회사원이던 시절 업무 출장 차 몇 번 간 적이 있던 도시들이었다.

그래도 순수 관광으로 간 것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기만 했다. 여러 국가, 도시들을 개인 일정으로 잡기가 번거로워서 여행사 패키지 투어를 신청했다. 스무 명 남짓의 일행들로 구성된 단체 여행이다. 필자처럼 부부가 온 경우도 여럿 있었고 한 동네 이웃사촌인 듯한 초로의 여성 다수가 참석한 팀도 있었다. 시집간 30대의 딸이 친정 엄마를모시고 온 경우도 두 팀이나 있었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구성은 없었다.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 각자 살고 있는 지역도 그야말로 전국 각지였다.

그 중에서 유난히 앳되어 보이는 젊은 한 쌍이 눈에띄었다. 요즘은 세태가 많이 변했다는데 혹시 사귀는 연인들인가 추측만 하고 선뜻 아무도 물어보질 못하다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식사 자리에서 본인들이 먼저 밝혔기 때문이다. 며칠 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으로 왔다고 한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박수치고 축하를 해준다.

그러면서 자연히 집과 나이도 알게 되었다. 신랑은 89년생, 신부는 92년생이고 대전에서 산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친척이 살고 있다든지 사업차 자주 간다든지 저마다 대전에 대해 알고 있는 얘기를 늘어 놓는다. 필자도 빠질 수 없어 대전을 떠올려 봤더니 오래 전에 회사 일로 자주 갔었던 생각이 난다. 바로 1993년에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만국박람회 ‘대전엑스포’ 말이다. 다음은 당시 석 달간 지속된 대전엑스포를 배경으로 한 언론홍보 에피소드 한 편이다.

대전엑스포 전시관 홍보전쟁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감격에 겨워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정부는 1989년 2월 느닷없이 대전박람회 개최를 공식 발표했다. 개최 시기는 1991년 5월. 올림픽 이후 불과 3년 만에 이에 버금가는 국제적 행사를 용감(?)하게 계획한 것이다.

그러나 일정의 촉박함과 비공인 국제박람회로는 외국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88올림픽 유치 때처럼 정부와 기업이 다시한번 총력을 기울이게 됐고 마침내 1990년 12월, 국제박람회기구로부터 상품 위주가 아닌 기술을 중심으로 한 전문박람회로 승인을 받게 된다. 개발도상국 최초의 국제박람회, 즉 대전엑스포가 영광(?)스럽게도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이후 1991년 4월, 대전시 유성구 도룡벌 현장에서 기공식을 가졌으니 개최시기인 1993년 8월까지 불과 2년 반 동안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하는 그야말로 한국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초 스피드 국제박람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드디어 1993년 8월 6일 개회식. 다음 날 정식 개장을 앞두고 있는 대전세계박람회장에는 40개의 외국국가관, 20개의 국내기업독립관 및 대규모 과학공원과 공연장이 완공돼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모두 마쳤다. 기업 독립관 중 특히 대우, 현대, 삼성, 럭키금성 등 8개 그룹과 한전, 포항제철 등 4개 공기업은 영구독립관을 세웠다. 각자 300억~5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결과물이었다.

대우그룹의 영구독립관인 ‘인간과 과학관’도 2년 반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됐고, 드디어 대전엑스포는 93일이란 짧지 않은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종합상사 ㈜대우의 홍보팀장이었던 필자는 서울과 대전을 수시로 오가며 ‘인간과 과학관’의 홍보팀장을 겸직으로 맡고 있었다. 우리 홍보팀의 사명은 분명하고도 명확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공기업들의 전시관 홍보팀과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홍보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기사는? 아무 걱정말라”

치밀한 홍보계획에 따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획기사를 작성하고 각종 인터뷰와 관람기사 유도를 통해 ‘인간과 과학관’을 최고의 인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보니 보도자료의 중앙 언론 반영률이 신통치 않은 것이 아닌가? 위기감을 느낀 필자는 즉시 대전으로 내려갔고, 다음 보도자료 배포 때 직원들과 함께 직접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는데 그제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엑스포 조직위원회 건물 중앙에 위치한 프레스센터 기자실은 넓은 공간에 다닥다닥 많은 책상이 놓여있는 여느 프레스센터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삭막하고 냉랭해 보였다. 휙 둘러보니 벌써 몇몇 그룹 전시관 홍보팀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서둘러 보도자료를 들고 언론사 표시가 되어 있는 책상들을 돌며 배포를 시작했다.

일부 면식이 있는 기자들이 “오랜만이다. 자료를 보고 문의사항 있으면 전화하겠다”며 아는 척은 했지만, 지쳤는지 표정이 밝지 못 했다. 처음 만나는 기자들은 휙 한 번 쳐다보고는 “여기 놓고 가세요”란 무덤덤한 반응이다. 이래서야 제대로 기사가 보도되겠는가?

대책회의를 가졌다. 우선 오늘 목격한 프레스센터 내 기자들의 반응을 분석해 봤다. 대부분이 1개월 혹은 그 이상 장기 파견을 왔다고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 명언도 있지만 일정이 여유로운 해외출장일지라도 5~6일이 지나면 지치는데, 하물며 한달 이상을 머물러야 하니 심정들이 별로 였을 것이다.

게다가 프레스센터 기자실이라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언론 기자들과 모여 기사를 작성하며 나름대로 특종을 발굴하거나 최소한 타언론사와 차별화된 기사를 써야 하는 중압감에 항상 눌려 있어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도에 달했으리라. 불시에 떨어지는 데스크의 업무지시,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각종 공식 보도자료의 홍수, 이외에도 단독 취재 및 인터뷰 일정 소화 등….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도우미들

그리고 장기 체류의 특성상 대부분의 언론사가 미혼 남자 기자들을 파견했다는 점. 또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이 모였으니 일과 후에는 자의반 타의반 소주 파티도 거의 매일 밤 열렸으리라. 이런 상황이니, 우리 홍보팀이 갔을 때 그런 반응이 나왔고 이에 따라 큰 차별성이 없는 보도자료의 게재율이 낮은 것은 차라리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골똘히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보도자료 배포 때 남자들로만 구성된 우리 홍보팀 직원을 보내지 말고 대신 도우미들을 보내면 어떨까?” 당시 대우관만 해도 운영 및 안내요원으로 활약하는 여성도우미(대전엑스포 때 ‘도우미’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음)가 60여명이나 있었다.

모두 늘씬하고 똑똑하며 한 미모하는 엄선된 정예 도우미였다. 좋은 아이디어는 즉각 실행에 돌입하는 것이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그래서 60여명 중 다시 엄선한 도우미를 2인 1조로 구성해 보도자료의 내용을 숙지케 하고 예상 질의응답 사항 등 배포 요령을 가르친 후 드디어 프레스센터를 향해 출동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통상 아무리 오래 걸려도 1시간이면 충분한 배포시간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도우미들이라 설마 근무 중 땡땡이 치지는 않았을텐데….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전화해 볼 수도 없고 답답하고 걱정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약 3시간이 지난 후 피곤해 보이지만 밝은 표정의 두 도우미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보고 내용은 이랬다. 그들이 프레스센터 기자실에 들어서자 시선이 집중됐고 보도자료를 내밀자마자 거의 모든 기자들이 의자를 내주고 음료수를 권하며 앉아서 보도자료 내용을 설명하라고 해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보도자료 기사화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더니 거의 대부분 아무 걱정 말라고 하며 대신 자주 배포하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튿날, 언론에 게재된 결과는 대성공! 아쉽게도 우리의 ‘미녀특공대 작전’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워낙 소문이 금방 도는 좁은 지역이고 게다가 홍보전략의 진입장벽도 높지 않아 눈치빠른 다른 기업 홍보팀들이 즉각 벤치마킹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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