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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1-12-09 19:39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윤여정은 왜 영화에서 잡초같은 ‘미나리’를 독백처럼 웅얼거렸나
윤여정은 왜 영화에서 잡초같은 ‘미나리’를 독백처럼 웅얼거렸나
  • 이만훈
  • 승인 2021.04.27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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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수상 계기로 본 미나리의 역사와 사회학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이만훈(언론인)] 지난해에 이어 올봄도 코로나란 놈한테 빼앗겨 심드렁한데 이래저래 삶은 더 팍팍해져 죽을 맛이다. 아, <사철가> 가사가 이다지도 절절히 가슴을 저미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더랬다.

‘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더라…’

하지만 우리네 삶이 늘 그렇듯이 꼭 죽으란 법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가슴을 쥐어뜯어도 시원찮은 답답함에 짜증이 폭발 직전인 판에 마침 봄바람에 실려 온 미국 발 한 줄기 청량한 소식이 그나마 우리네 한국인의 너절해진 심사를 어루만져준다. 그건 바로 배우 윤여정(74)이 영화 ‘미나리’로 25일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침내 여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인가족의 미국이민 정착을 그린 이 영화에서 ‘K-할머니’를 연기한 그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한국인 배우로는 한국영화 102년 역사에서 최초이자 아시아 배우로서도 영화 ‘사요나라’(1957년)의 우메키 미요시(梅木 美代志·1929~2007)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해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데 이은 ‘쾌거’다.

#. 영화 ‘미나리’의 쾌거 덕분에 덩달아 제철 맞은 미나리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동포 정이삭(43)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에서 윤여정이 맡은 역은 딸 모니카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 아칸소의 농장으로 달려간 ‘순자’. 막상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외손자한테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대접(?)을 받으며 상호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에 집에서 얼마만큼 떨어진 개울가를 발견하곤 한국에서 가져간 미나리 씨를 뿌린다. 영화는 그리고 끝날 무렵 제법 훤칠하게 자란 미나리 밭을 비춘다. 장면의 비중만 놓고 보면 영화의 제목이 무색할 정도지만 감독은 순자가 씨를 뿌리며 독백처럼 웅얼거리는 말속에 영화의 ‘문패’가 왜 ‘미나리’여야 하는 지를 언뜻 비치고 있다.

“미나리는, 이렇게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먹고 건강해 질 수 있어. 아무 음식에나 넣고 먹어도 맛있어.”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의 다양한 쓰임새

#. 순자의 말마따나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미나리는 16세기 <훈몽자회>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데 물을 뜻하는 옛말 ‘미르’의 줄임 꼴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것이다. 한자로는 수근(水芹), 수영(水英), 수채(水菜)라 하고, 영어로도 water parsley 또는 water celery로 쓴다. 그만큼 물기가 많은 곳이면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미나리를 다듬은 뒤 찌꺼기 줄기를 축축한 곳에 던져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디마디 뿌리를 내린다. 농가에선 거의 씨를 심지 않는다.

이 같이 생명력이 강해 옛날에는 자손이 번성하고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기의 돌상에 미나리를 붉은 실로 묶어 올리기도 했다.예전엔 개울가나 웅덩이 가장자리는 물론 산골짜기 도랑과 논물을 대는 봇도랑이며 길가 구렁텅이, 채마밭 고랑 등에는 어김없이 미나리가 무리지어 소담스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때고 창칼 하나 들고 나서기만 하면 금세 다래끼 가득 채우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으니까. 그 바람에 무엇이든지 수확하는 게 쏠쏠할 량이면 ‘미나리 도리 듯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 미나리는 쓰임새가 많다. 날 것이나 데친 것이나 줄기를 씹을 때 톡톡 터지면서 입안 가득히 퍼지는 향과 아삭아삭한 식감이 빼어난 까닭이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덕분에 한 겨울에도 온갖 채소들을 싱싱한 채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엔 겨우내 김장독만 들이 파대는 통에 봄이 되면 입안에서 묵은 김치의 군둥내가 진동하고 입맛이 깔깔하기 마련인데, 이 때 해결사가 봄나물이고 그 중에 미나리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버들강아지가 눈을 틔우는 따지기 무렵, 겨울을 견뎌내고 파릇한 새 싹을 내미는 미나리를 도려다가 돌나물과 함께 담근 나박김치 한 사발 들이킬라치면 그 알싸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라니…. 정신이 버쩍 들어 춘곤증은 커니와 저승 갔던 식욕도 대번 돌아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마법이었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 곳에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진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

조선시대 시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시조의 작자 역시 사랑하는 임에게는 무엇이든지 주고프지만 그 중에서도 꼽는 게 봄철 살진 미나리다.

어디 그뿐이랴. 생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초고추장에 무치면 새콤한 향이 그만이고, 끓는 물에 슬쩍 데쳐설랑 갖은 양념을 넣은 뒤 조물조물 무치거나 얼음냉국을 만들어도 좋았다. 또 아귀찜과 복맑은탕, 민물매운탕에는 빠질 수 없고, 들기름을 두르고 솥뚜껑에 지져내는 부침개도 맛이 일품이었다.  
 
#. 사정이 이렇다 보니 늘 미나리를 뜯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넉넉한 집에선 조그만 연못을 만들고 그렇지 못한 민초들은 그저 수채 구멍 여분댕이에 삿갓배미를 꾸며 미나리를 키웠다. 특히 수채 구멍은 개숫물을 버리느라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아낙들의 공간이나 마찬가지여서 업둥이를 몰래 두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자식을 낳았으나 키울 형편이 못돼 남의 집 앞에 몰래 두고 가면 집 주인이 들여다 키우는데, 좋게 일러 업둥이요 그냥 부르기는 개구멍받이라 했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네(최불암·김혜자)가 들여다 키운 ‘금동이’ 같은 신세다.

일반적으로 미나리를 키우는 곳을 ‘미나리꽝’이라고 하는데 대개 일정 규모이상 크기에서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곳을 일컫는다. 여기서 ‘꽝’은 창고를 뜻하는 순우리말 ‘광’의 센 발음으로 한번 뜯고 나면 금세 자라는 미나리의 특성을 잘 나타낸 ‘화수분 같은 창고’란 의미다.

<고려사> 임연(林衍)열전에 미나리 밭을 뜻하는 ‘근전(芹田)’이라는 기록이 있고, 조선 성종 19년(1488)에 명나라의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이 쓴 <조선부(朝鮮賦)>에는 ‘한양과 개성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작은 연못에 미나리를 심는다’는 기록이 있어 ‘미나리꽝’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순조 23년 실학자 한치윤(韓致奫)이 펴낸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인용돼 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뤄 보아 미나리가 이미 고려시대 이전부터 인공적으로 재배해서 식용으로 이용되던 채소임을 알 수 있는데 <세종실록>에는 ‘제사상에 미나리김치를 두 번째로 진열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조선 초 궁중에 진상하는 채소품목에 가지, 오이, 생강, 겨자, 수박과 함께 미나리가 포함됐다. 지금도 대상, 소상, 시제(時祭) 등 제사와 환갑 등 큰 잔치 때 고임상엔 백편(白䭏)이 빠지지 않는데 여기에 웃기로 올리는 주악의 꾸미개로 대추 쪽과 함께 꼭 미나리가 쓰인다. 미나리꽝에서 자란 미나리에는 거머리가 붙어있기 십상인데 다듬기 전 놋수저와 함께 물에 담가놓으면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것도 오랜 재배 역사에서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지혜다.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왼쪽부터 스티븐 연, 앨런 김, 윤여정, 한예리, 노엘 조.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왼쪽부터 스티븐 연, 앨런 김, 윤여정, 한예리, 노엘 조. <뉴시스>

미나리는 충성심과 인재를 상징하는 채소

미나리 관련 우스개 하나.  조선 시대는 물론 일제 때까지도 서울 도성(사대문) 안에선 목덜미가 새까마면 영락없이 미나리장수인줄 알았다. 까닭인즉 한양의 동쪽인 왕십리 일대에 커다란 미나리꽝이 많이 있어 도성 안에 미나리를 거의 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싱싱한 미나리를 대기 위해선 꼭두새벽부터 미나리를 뜯고, 다듬어 짐을 꾸려서는 서둘러 지게에 지고 도성으로 가야하는데 그러다 보면 떠오르는 햇살을 등져야 하고, 물건을 모두 팔고 돌아갈 때는 반대로 지는 햇살이 역시 목덜미를 그슬렸으니 새까맣지 않고 배기겠는가?

‘(임연의 부인) 이씨는 투기가 심하고 포악한 여자로 자식들이 왕명을 거역하고 사람들을 살육한 것은 대개 그 여자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가) 숨을 곳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미나리밭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다투어 기와조각을 던졌다.…(李氏, 性妬險, 凡拒命殺戮, 多其敎也.(…그녀가)不得匿, 遂入芹田, 兒童爭以瓦礫擲之.…’

1996년 11월 21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463-14번지(신답초등학교)에서 답십리동 465-2번지(경남아파트)에 이르는 폭 20m, 길이 350m의 4차선 도로에 ‘미나리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 민초들은 물론 사대부나 궁중에서도 미나리를 즐겨 먹은 데는 독특한 맛과 향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나리가 충성심과 인재를 상징하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고사성어 ‘야인헌근(野人獻芹: 농부가 미나리가 맛있다고 여겨 바친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신하의 충성스런 마음’을 ‘근성(芹誠)’이라고 했다. 또 <시경> ‘노송경지십(魯頌駉之什)’의 ‘思樂泮水 薄采其芹(사락반수 박채기근: 즐거운 반수의 물가에서 미나리를 뜯는다’에서 유래된 ‘채근(菜芹: 미나리를 뜯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인재를 발굴하다’는 의미다. 깨끗하지 못한 미나리꽝에서 향기로운 미나리를 뜯는 걸 두고 궁벽한 곳에서도 인재를 구한다는 의미를 부여한 속이 그럴싸하다. 

조선 시대에 유학 교육을 담당한 성균관의 별칭을 ‘근궁(芹宮)’이라 하고 미나리를 심어 유생들한테 부식으로 제공한 배경이기도 하다. 성균관 역사에 대한 기록인 조선조 문인 윤기(尹愭·1741~1826)의 시문 <반중잡영(泮中雜詠)>에 따르면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석채(釋菜)라고 부르기도 했고 ‘나물을 벌여 놓는다’는 뜻인 석채 때 미나리가 사용됐다고 한다. 미나리에 대한 대접(?)이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 선조들은 미나리에 대해 세 가지 덕이 있다(芹菜三德)며 품격 있는 채소 중 으뜸으로 치면서 즐겨 먹었다. 세 가지 덕이란 ‘더러운 물을 맑게 하며, 응달에서도 잘 자라고, 가뭄에도 잘 이기는 특성’을 이르는 찬사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은 18년 유배기간에 미나리꽝을 만들어놓고 아침마다 물을 주며 미나리의 덕을 음미했다고 한다. 여염에서도 문창호지 위에 미나리를 무늬를 삼아 붙여두고 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역시 미나리의 덕을 새기기 위한 장치였다. 선조들은 또 초목에 품격을 매길 때 나무의 으뜸으로는 늘 푸른 소나무를, 꽃의 으뜸은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야채의 으뜸으로는 응달의 수렁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를 꼽았다.

#. 미나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애용되었다. 주나라(기원전 1046~기원전 771년) 초~춘추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03년)민요집인<시경(詩經)>에 이미 아욱, 오이, 순무, 쑥 등의 채소와 함께 미나리가 등장하고, 이와 함께 채소밭이 따로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채소 가운데서 가장 맛이 좋은 것은 운몽(雲夢)의 미나리라며 상(商)나라의 조리사(調理士)이자 현인이었던 이윤(伊尹)과의 관련 고사가 실려 있다. 특히 <주례(周禮)>에서는 부추, 순무, 순채, 아욱, 미나리, 죽순 등의 ‘저(菹·김치)’를 종묘제사에 쓴다고 하였는데 그때의 김치는 초나 장에 절여 먹었다고 기록돼 있어 오늘날의 김치와는 다른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고려 때는 ‘근저(芹菹)’라 하여 미나리김치도 부추김치, 순무김치와 함께 종묘제사에 올렸다.

얼음장 밑에서도 죽지 않고 파릇하니 잘도 견뎌

#. 사실 미나리는 무, 배추 같은 ‘정식’ 채소는 아니다. 오히려 냉이, 달래, 씀바귀 같은 야생 나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큰 대접을 받다보니 늘 곁에 두고 애용했다. 
 미나리는 얼음장 밑에서도 죽지 않고 파릇하니 잘도 견뎌낸다. 웬만한 시련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고야 마는 우리네 심성과도 빼닮았다. 하물며 한 겨울에도 자배기에 물을 자잘하게 깔고 미나리를 키워 먹었으니 말해 뭣하랴. 콩나물시루, 쪽파 방구리와 함께 안방 윗목에 떡하니 자리 잡고 겨우내 노리끼리한 연하디 연한 몸체를 내주던 미나리 자배기가 눈에 삼삼하다. 
미나리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정월령(正月令)에도 등장한다. ‘사당에 세알(歲謁)함은 떡국에 주과(酒果)로다. 움파와 미나리를 무어엄(무싹)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新新)하여 오신채(五辛菜)를 부러워하랴’라며 싱싱한 미나리를 예찬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각각 정월 초이레 ‘사람 날(人日)’에 먹는 ‘일곱가지 채소국(七種菜羹)’ ‘일곱 채소죽(七菜粥)’에 미나리가 포함된 걸 보면 미나리는 가히 ‘동양의 나물’임에 틀림없다.

#. 미나리를 이용한 음식이 다양하다보니 미나리로 절기를 가늠할 정도다. 시인 박목월은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고 했다. 우리 민속에 3월 시식(時食)은 탕평채(蕩平菜)요, 4월엔 미나리강회다. 탕평채는 조선 영조가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갈려 싸움질하는 정치상황을 중재하려 노력하면서 그 방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내놓은 음식에서 비롯됐는데 청포묵(白)에 쇠고기 볶음(赤), 미나리(靑), 김(黑)을 섞어 만든 묵무침이다. 여기에서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 쇠고기의 붉은색은 남인, 김의 검은 색은 북인을 각각 상징했다. 이는 오방색(五方色)에 따른 것이다. 

미나리강회는 미나리를 이용해 만드는 대표적인 궁중음식 중 하나다. 조선말 요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미나리를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 상투 모양으로 도르르 감고, 달걀 지단·석이버섯·붉은 고추·양지머리 편육을 채치고 실백을 가운데 세우고 다른 잔 재료를 옆으로 돌려가며 색색이 세워서 미나리로 감아 접시에 담고,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미나리를 감는 형태를 궁중에서는 족두리 모양으로 감고, 일반 가정집에서는 상투 모양으로 감는다’고 했는데 미나리강회는 특히 초파일에 먹는 절식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육류나 생선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소찬(素饌), 즉 채소를 중심으로 먹는 법, 제철인 미나리로 장식을 한 미나리강회가 제격이요 맛도 그만이었다. 여염에선 그냥 미나리만 데쳐 엄지손가락 굵기와 길이로 돌돌 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도 그 맛이 기가 막혀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5월 단오가 되면 다른 대부분의 산(들)나물들과 마찬가지로 미나리도 잎이며 줄기가 뻣뻣하게 쇠게 마련이어서 일부 지역에선 단오 날을 ‘미나리 환갑날’이라고 하여 그 해 마지막으로 미나리를 듬뿍 넣고 조깃국을 끓여 먹는 풍속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여름철 천렵(川獵) 때 민물고기 회나 어죽에도 연한 고갱이를 넣어 비린내를 없애면서 풍미를 돋웠고, 선선한 가을부터 추운 겨울까지 추탕 등 미꾸라지 요리에 곁들여 먹었으니 ‘사철채소’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조선 숙종 때 장희빈의 악독한 세도를 비꼬아 그 영화(榮華)가 잠깐 동안이라고 풍자한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는 노래도 그래서 나왔다. 즉, 장다리는 장희빈이요, 미나리는 인현왕후를 빗댄 것이다. 이밖에 ‘미나리 꽃 필 때는 딸네도 가지마라’는 속담도 있듯이 하얀 미나리 꽃이 피면 보릿고개가 한창인 음력 5월쯤으로 알았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미나리

#. 미나리를 민간에서는 식품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널리 사용했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수시로 채취하여 이질에 삶아서 먹으며, 폐렴에는 생 잎을 짓찧어 발라 찜질하는 민간요법도 있다. 또 황달에는 미나리를 짓이겨 꿀을 타서 먹는데 이때 삶아 먹어도 좋다고 한다. 설사에는 생즙을 짜서 하루 2~3번 마시면 좋다고 하며 변비로 항문이 파열된 경우나 치질에서 오는 하혈에도 미나리 생즙을 같은 요령으로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나리뿌리는 종기에 좋다고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갈증을 해소하며 머리를 맑게 하고 주독제거, 대·소장의 소통과 황달, 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한약명은 수근(水芹), 수영(水英). 달면서 맵고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식욕을 돋워 주고 창자의 활동을 좋게 하여 변비를 없앤다 하여 쓰이고 있다. 수분이 많기 때문에 배변촉진성 식품이라 고혈압 환자에게도 권장되고 있다. 신경쇠약, 정력이 약한 사람, 술 마시고 열이 날 때, 여성의 대하증과 하혈, 월경 불순에도 좋다고 하며 신경통이나 류머티즘에는 삶아 먹으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급하게 체해서 토하고 설사할 때는 미나리 5~6포기를 120㏄가량의 물에 넣고 15분가량 약한 불로 달여 먹이면 효과가 있고, 땀띠가 심할 때 즙을 바르면 잘 낫는다고 하며, 목이 아플 때는 짓찧어서 즙을 내어 서너 숟갈 넣고 고약처럼 진하게 달여 먹으면 잘 낫는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과 몸에 좋은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해독과 피를 정화해주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미나리에 함유된 이소람네틴 성분이 간 기능을 활성화시켜 간의 전체적인 기능개선에 도움을 주고, 미나리의 페르시카린 성분은 간의 독성물질을 해독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나타낸다. 

미나리 특유의 향은 미르센(myrcene)이라는 휘발성 물질 때문인데 이 물질은 타임, 오레가노 같은 서양 허브에도 있는 성분으로 항균에도 탁월한 작용을 한다고 한다. 미나리의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정유 성분은 입맛을 살리는 것은 물론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을 정화해주는 효능이 있다. 미나리의 초록빛 성분인 플라보노이드는 퀘르세틴과 캠프페롤이 함유돼 있어 몸 안에서 노화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활성산소의 발생을 억제시키는 항산화 작용을 하며 항암 효과도 있다. 미나리는 알칼리성 식품이기 때문에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산성화된 몸을 중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미나리를 먹으면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해독할 수 있다는 민간요법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아직 테트로도톡신을 확실하게 해독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 다만 미나리는 맛과 영양 면에서 복어와 잘 어울려서 대개 복어 요리에 쓰이곤 하는데 이것이 와전됐을 가능성이 크다.

중세 유럽에서는 인도에서 들여온 말린 미나리가 후추에 필적하는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남부 유럽에 미나리가 전파, 재배되면서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같은 미나리과 풀로 독미나리(Cicuta virosa L.)가 있다. 이름 그대로 독초인데 미나리와 모습이 매우 흡사하며 독성이 강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독미나리는 미나리 특유의 향이 없어 신경 쓴다면 구분할 수 있다.

#. 한방 의서인 <본초습유(本草拾遺)>에 따르면 ‘미나리는 사람을 자애롭게 한다(芹慈人)’고 한다. 이래저래 미나리는 ‘원더풀’이다! 요즘 일 년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란 놈에다 정치판마저 막장으로 치달아 짜증이 폭발직전인데, 미나리나 한 소쿠리 뜯어다 잘 구운 삼겹살에 곁들여 쐬주나 한 잔 해보시지 않겠는가?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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