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윤종득‥.혼돈과 자율, 갈등과 화합의 궁극대립
화가 윤종득‥.혼돈과 자율, 갈등과 화합의 궁극대립
  • 권동철 미술전문위원
  • 승인 2021.04.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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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도(金蘭圖), 비단에 아교포수 위 먹, 73×60㎝, 2021
금난도(金蘭圖), 비단에 아교포수 위 먹, 73×60㎝, 2021

불견가욕사심불란(不見可欲使心不亂). 탐욕을 드러내지 않아야 마음을 혼란스럽지 않게 할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짓이 가욕(可欲)이다.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란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바람이다.”<편하게 만나는 도덕경 노자(老子), 윤재근, 동학사>

아래서부터 위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의 방향이 느껴오네. 어디서 오는지 그물에 걸리지도 않는 바람에 난()이 움직인다. 울렁거리는 쓰나미 처럼 거칠게 밀려오는 세파를 온 몸으로 견뎌야만 닮을 수 있나. 고통과 역경 속 근원을 잃지 않고 바람에 휘어지는 저 잎 새의 유연한 곡선.

윤종득 작가는 이렇게 풀이했다. “쇠와 같이 날카롭고 강하면서도 탄력으로 부러지지 않는 외유내강의 난초다. 폭풍한설과 맞서 견디는 야생의 생명력으로서의 난초 그것이 금난도(金蘭圖)의 참뜻이다.”

 

고지(古紙) 위 먹, 65×60㎝, 2021
고지(古紙) 위 먹, 65×60㎝, 2021

전서의 서예성과 전각요소

난초화는 선()으로만 공간을 구성한다. ‘양념이 없어 제일 어렵다고들 하는데 대신 재료에 의해 기운이 달라지는 흥취가 있다. 이를테면 기와 색을 띤 검은 청회색의 ()분채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반응색감이 달라지기도 하고 청, 송연 먹의 관계성도 있다.

윤종득 화백은 다섯 가지 재료로 풀어나갔다. 한지 위 아교포수한 상태에서 호분처리해서 그린 것을 비롯하여 비단에 아교포수, 한지를 도침(擣砧)한 것, 한지에 아교포수한 위 황토, 한지에 옻칠한 위에 작업했다.

 

고지 위 먹, 28×45㎝, 2021
고지 위 먹, 28×45㎝, 2021

한편 난초 선과 밑뿌리, 잎 등엔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서(篆書)의 질감과 운필기운이 배어있다. 이와 함께 산하 윤종득 화백은 전각(篆刻)에 있어서 중요위치에 있는 작가이다. 화가 윤종득 난화(蘭畵)에 전각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 방향의 안배, 장단변화의 다양한 구성력이 그러하다.

특히 전각 변()의 깨어진 틈으로 외부공간의 영향력이 미치듯 난초그림을 공간 틀에 한정해서 바라보지 않고 선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확장의 세력을 드러내고 있다. 난초가 공간 안에만 갇혀 있으면 기세가 덜 하고 그림이 왜소해 보일 수 있을 텐데 화면 바깥으로 열어놓음으로써 무한하고 풍만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금난도(金蘭圖), 한지에 먹, 81×65㎝, 2021
금난도(金蘭圖), 한지에 먹, 81×65㎝, 2021

온실과 모진세파의 양립

산하 윤종득(山下 尹鍾得)그림엔 마치 군자와 서민을 잇듯 긴 잎과 짧은 획들이 어우러져 군무처럼 형성하고 있다. 한가위 강강술래처럼 원심력형태를 띠는 것도 외형적 형태에서 벗어나 사물의 섭리를 난초로 운용한 뉘앙스의 산물이다.

그런가하면 세속의 먼지에 때 묻지 않으려는 고고한 절개처럼 200년은 족히 될 법한 고지(古紙) 위 무심의 한 획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 그러다 일순, 흐릿한 또 하나의 난초가 눈에 들어온다.

주류와 비주류가 회자되는 인간의 역사에서 집단이 지탱된다는 것, 공동체적 인식이 요구되는 지혜가 난()그림의 자연이치에 스미어 있다. 저 소외의 난초가 그 자리에 없다면 진하게 그려진 난초는 필시 우측으로 넘어질 것이리라.

 

권동철 미술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권동철 미술전문위원,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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