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출신의 멋진 기부 릴레이
흙수저 출신의 멋진 기부 릴레이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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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로가 쌓이는 판에 모처럼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렸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국내 최대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의 잇따른 재산 기부 약속이다.

두 기업인의 재산 기부 결정은 여러 면에서 남다르다. 우선 두 사람 모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선대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재벌 2·3세가 아닌 흙수저 출신이다. 재벌가 출신 오너가 작은 지분으로 상호 출자한 여러 계열사의 경영권을 쥐고 흔들며 사용하는 ‘회장’ 직함이 아닌, 이사회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하며 책임을 지는 ‘이사회 의장’으로 불린다.

사실 그동안 ‘회장님’들의 기부 발표는 불법행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수습하거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가 많았다. 정권의 강요에 비자발적으로 따르면서 개인 재산이 아닌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돈을 동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와 달리 두 ‘이사회 의장’은 회사 돈이 아닌,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는 통 큰 기부를 약속했다.

김범수 의장은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가 상경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기도 했다.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SDS를 박차고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김봉진 의장은 전남 완도 작은 섬 소안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화가를 꿈꿨지만 실업계 고교에 진학해야 했다.

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웹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전화번호부 앱’ 콘셉트로 배달 앱 사업을 창업했다. 당시 이를 위해 직접 여러 동네를 돌며 광고 전단지를 수거했다.

두 사람의 기부 결심은 나이 쉰셋에 33년 동안 이끌던 회사를 떠나 재산의 90%를 기부하고 재단을 만들어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지구온난화 해소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애쓰는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를 연상시킨다.

김범수 의장은 기부금 용처로 ‘사회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빌 게이츠가 롤 모델이라고 했다. 빌게이츠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만든 자선기부클럽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한국인 최초로 가입한 김봉진 의장은 교육 불평등 해소와 문화예술 지원, 자선단체 지원 등에 기부금을 쓰겠다고 했다.

김범수 의장이 쉰다섯, 김봉진 의장이 마흔다섯으로 젊다. 두 사람이 창업한 기업들도 IT 플랫폼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젊은 혁신기업이다. 많은 젊은이들, 신생 스타트업들이 두 기업인의 선한 기부 의사와 향후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두 사람의 기부 재산은 5조원, 5500억원으로 어마어마하다. 금액을 떠나 한국 기부문화에 새 이정표가 될 것이다. 차제에 성공한 기업인들의 기부에 박수를 보내는 제도와 문화를 확립하자.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재단을 만들려 해도 의결권 있는 주식은 5%까지만 증여세가 면제된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하려면 현행 세액공제 방식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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