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초원 유목민 삶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보다
유라시아 대초원 유목민 삶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보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장
  • 승인 2020.08.0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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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웨이우얼 대초원의 실크로드 2000km 탐방 여행
나리티초원.지평인문사회연구소
나리티초원.<지평인문사회연구소>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는 지금은 중국의 영토지만 오랫동안 기마유목민의 활동 영역이었으며 오아시스 실크로드와 초원 실크로드가 전개되는 곳이다. 초원로는 워낙 장거리를 이동해야 해서 여행이 쉽지 않지만 대초원의 숨결을 느끼고 초원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필자는 2016년 여름 우루무치에서 출발해 알타이 산맥과 톈산 산맥 일대의 초원과 고원을 여행하면서 북방 기 마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돌아봤다. 

실크로드의 중심축 ‘신장’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는 중국의 성급 자치구다. 인구 약 2200만명, 면적 166만㎢(남한의 약 16.7배)로 중국에서 가장 넓은 성이며 수도는 우루무치다. 중국 북서부에 자리 잡은 이 지역은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8개 국가와 54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알타이 대초원의 방목 현장.지평인문사회연구소
알타이 대초원의 방목 현장.<지평인문사회연구소>

 위구르족을 비롯한 40여 개 이민족이 살고 있고 그들의 비중은 60%에 달한다. 특히 위구르족은 900만명에 달하며 중국의 위구르인들은 거의 이 지역에 살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는 서역(西域)이라고 불렸고, 청나라 건륭제 때는 ‘새로운 강역’이라 하여 ‘신장(新疆)’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토착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동쪽에 있는 투르크인의 나라)’이라고 부른다.

신장은 실크로드의 중심축이다. 신장 지역 가운데를 톈산 산맥이 가로 지르고, 북쪽 알타이 산맥과의 사이에 ‘준가얼 분지’, 남쪽 쿤룬 산맥과의 사이에 ‘타림 분지’가 있다. 둔황을 거친 실크로드는 바로 타림 분지를 지나야 하는데, 이곳의 대부분은 ‘죽음의 사막’이라 일컬어지는 타클라마칸 사막지대여서 가로질러 건널 수 없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남쪽 쿤룬 산맥 기슭으로 돌아가는 길이 ‘서역남로’, 북쪽 톈산 산맥 남쪽 기슭으로 가는 길이 ‘톈산남로’, 북쪽 기슭으로 가는 길이 ‘톈산북로’다. 그리고 오아시스 북쪽으로는 초원 실크로드가 전개된다.

신장의 역사는 기원전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000년경 이미 청동기를 사용한 흔적이 있고, 북방 기마유목민이 오랫동안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으로 흉노·돌궐·몽골·여진 등이 활약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북방민족의 특징인 동물문양 등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고 풍습과 언어에서도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신장 웨이우얼에는 기원전 오손, 월지 등이 출현했다가 BC 2세기경부터 흉노가 장악했다. 이후 한나라 무제는 서역 개척에 나섰고 BC 60년경 오아시스 실크로드가 열렸다. 한나라 붕괴 후 기마유목 국가인 유연-에프탈에 이어 돌궐이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다. 수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서역정벌 전쟁을 벌여 ‘쿠차’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다시 오아시스 실크로드의 주인공이 됐다. 당나라 이후에는 몽골 초원에서 남하한 위구르 제국이 지배했고 키르기스가 멸망한 후에도 위구르인들이 여러 왕국을 유지했다.

톈산 산맥 기슭.지평인문사회연구소
톈산 산맥 기슭.<지평인문사회연구소>

13세기 초,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들어섰고 이후 오이라트, 키르기스, 카자흐족의 왕국이 세워졌다. 1750년대에 여진족의 청나라가 이곳을 정복했고, 청의 지배가 느슨해지면서 위구르인 등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나 1878년 청나라가 재정복했다. 신해혁명 후 다시 독립운동이 재개됐고, 스탈린의 소련이 남하하면서 이 지역의 세력 다툼에 개입하면서 위구르인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와 40년대에 한때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건국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다시 이 지역을 장악해 오늘날 중국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장’은 북방 기마유목민의 오랜 활동 무대인 동시에 한민족의 삶의 흐름과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들 북방 민족은 한민족과 그 뿌리를 같이할 뿐만 아니라 신장 웨이우얼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동서를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와 유럽 지역까지 교류가 이루어졌던 땅이다.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선지는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신라 시대에 혜초는 해상통로로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다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통해 장안으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불멸의 여행기를 남겼다.

‘신장’ 이 연결한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진 교역의 흔적을 많은 유적과 유물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스텝 지역과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이르는 교류와 협력은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던 것이다. 

신장 웨이우얼의 초원 실크로드를 찾아서

인천공항을 출발해 5시간 반 걸려 중국 신장 웨이우얼의 성도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중국 국내선 비행기 편으로 한 시간 남짓 비행해 600km 떨어진 알타이 산맥 남쪽 기슭에 있는 ‘알타이(아러타이) 시’로 향했다.

알타이 시는 신장 웨이우얼 최북단, 중국·몽골·러시아·카자흐스탄의 접경지인 알타이 지구에 있는 인구 23만명의 작은 도시다. 러시아에서도 시베리아 남서부인 이곳 접경 지역을 알타이 지방이라 하며 알타이 공화국이 있다. 몽골 서부 지역에도 고비알타이주가 있고 주도가 알타이다.

오채탄.지평인문사회연구소
오채탄.<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 일대에 알타이 산맥이 있어서 알타이란 이름의 지명이 많다. 알타이 시에서 다시 차편으로 알타이 산맥 남서편 초원 길 200km를 6시간가량 달려 신장 웨이우얼 최북단이자 몽골과 러시아 접경 지역에 있는 ‘허무 마을’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지낸 후, 새벽에 알타이 산맥 고지로 올라가 해 뜨는 허무 마을의 모습을 보았다. 자작나무숲, 만년설이 녹은 푸른 강물, 야생화들로 치장한 초원, 소박한 통나무집들, 평화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알타이 산맥 자락에 자리 잡은 100여 가구의 삶이 묻어나는 마을이다. 오가는 도중에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형형색색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바위 계곡 ‘오채탄’도 볼 수 있다.

허무 마을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의 접경 지역에 카나스 호수가 있다. 해발 1374m에 위치한 이 호수는 알타이 산맥에서 내려온 빙하가 침식해 U자 계곡에 형성된 대형 호수로 지상낙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카나스호수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카나스호수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 호수의 물줄기는 러시아를 지나 북극해로 흐른다. 카나스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450km 정도 가면 인구 27만명의 작은 도시 ‘커라마이(극랍마의·克拉玛依) 시’가 나온다. 이 도시 이름은 위구르어로 ‘검은 기름’이라는 뜻이고, 이름대로 원유가 생산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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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성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커라마이 시 인근에는 오랜 세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기묘한 형태의 지형으로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마귀성’이 나타난다. 나중에 들으니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다시 남서쪽으로 6시간 걸려 500km를 달리면 실크로드 톈산북로의 명소 ‘싸이리무 호수’가 나타난다. 만년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다음날 호수 근처 숙소를 떠나 남동쪽으로 약 500km 거리에 있는 바인부르크 초원으로 향했다. 톈산 산맥을 남쪽으로 보면서 끝없는 대초원길을 달리면 바인부르크에 당도한다. 언덕에 오르니 9개 계곡에 걸쳐 18번 굽어져 흐른다는 ‘구곡십팔만’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해지는 석양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 애호가들이 찾는 버킷리스트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절경에 감탄 하기 바쁘게 엄청나게 많은 모기가 사람들을 향해 달려든다. 참다못해 벌꿀 채집하는 사람들이 쓰는 그물 모자를 사서 썼다. 작은 돈이 이렇게 귀한 물건을 제공할 줄이야…

이어 2시간 거리에 있는 해발 1600m에 펼쳐진 광활한 나리티 초원으로 향했다. 공중정원이라 불리는 세계 4대 초원 중 한 곳이다. 다시 서쪽으로 7시간 달려 약 400km 떨어진 이닝(이령·伊寧)으로 향했다. 이닝은 이리강 북편에 있는 도시로, 톈산북로의 오아시스 도시로 발달했던 곳이다.

바인부르크 초원.지평인문사회연구소
바인부르크 초원.<지평인문사회연구소>
바인부르크 구곡십팔만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바인부르크 구곡십팔만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오아시스 도시인 만큼 상업도시로 여러 민족이 쟁탈하던 곳이며 몽골 제국 시대에는 차가타이 칸국의 수도 기능을 했다. 원래는 신장 웨이우얼의 성도였으나, 신장 웨이우얼의 서편 상당 부분을 러시아가 차지하면서 보다 동쪽에 위치한 우루무치로 성도를 옮겼다.

이닝 일대의 고성을 둘러본 후 초원 실크로드 탐방을 마무리하고 다시 항공편으로 700km 떨어진 우루무치로 향했다. 2번의 국내선 비행거리 1000km를 더하면 총 3000km에 걸친 초원로 여행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유목민들의 삶을 보면서 유라시아 대초원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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