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1주기] 항공업계 코로나19 위기, 불굴의 리더십이 그립다
[조양호 회장 1주기] 항공업계 코로나19 위기, 불굴의 리더십이 그립다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4.07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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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운송산업 외길 50년...'위기를 기회로' 역발상 대응으로 대한민국 항공 위상 드높여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그룹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그룹>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항공업계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8일 1주기를 맞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조양호 선대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래 반세기 동안 ‘수송보국’ 일념 하나로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항공·운송사업 외길을 걸어온 전문가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이끈 주인공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조양호 선대회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탁월한 경영감각과 승부사 기질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항공업계의 큰 별이기 때문이다. 그는 글로벌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고 전 세계 유수 대형 항공사가 경영 위기로 폐업에 내몰릴 때 오히려 선제적 투자를 감행하며 역발상으로 대응했다.


조양호 선대회장이 과감한 선제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본인 스스로가 정비·자재·기획·IT·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두루 거쳐 실무까지 겸비한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항공과 운송 관련 모든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한 우물만 오롯이 판 전문성과 누구보다 먼저 앞을 내다보는 리더십과 결단력은 그를 국제 항공업계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국내 항공업계 안팎에선 코로나19로 신음하는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풍랑을 헤쳐 나가기 위해 조 선대회장의 경영 궤적을 차근차근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한항공의 지난 50여년 역시 위기의 연속이었고,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온 역사라는 평가다. 그 중심에 조 선대회장이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승부사’

조양호 선대회장이 처음 대한항공에 발을 들인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이어 1978년부터 1980년엔 2차 오일쇼크로 대한항공이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연료비 부담으로 수천여명의 직원을 감원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불황에서 오히려 호황에 대비하기로 했다.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당시의 결단으로 대한항공은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와 노선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조 선대회장은 재정 부담에도 보잉737NG(Next Generation)의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과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 체결을 강행했다. 부담은 있었지만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의 결단은 적중했다. 보잉사는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을 유리하게 주선했으며 이때 구매한 항공기들이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차세대 항공기 도입 결정도 마찬가지다. 2003년은 이라크 전쟁과 사스(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기라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조 선대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그의 예견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항공사들은 앞 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으며, 항공기 제작사가 넘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새로운 항공기 도입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앞서 구매를 결정했던 대한항공은 적기에 차세대 항공기들을 도입할 수 있었다.

국제 항공업계의 명실상부 리더...대한민국 항공 위상 높였다

2000년 6월경 미국 뉴욕에서 대한항공·델타항공·에어프랑스·아에로 멕시코 등 4개 항공사가 ‘스카이팀’ 결성을 발표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가 故(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그룹
2000년 6월경 미국 뉴욕에서 대한항공·델타항공·에어프랑스·아에로 멕시코 등 4개 항공사가 ‘스카이팀’ 결성을 발표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가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그룹>

항공시장 자유화 움직임과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조양호 선대회장은 상호협력을 타개책으로 생각했다. 시작은 ‘스카이팀’ 창설이었다. 2000년대 들어 대한항공은 명실상부 ‘글로벌 선도 항공사’ 반열에 올랐는데, 그 시작이 세계적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설립을 주도하면서부터였다.

1990년대 후반 세계 항공업계는 동맹체로 재편됐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 아메리칸항공은 ‘원월드(One World)’를 각각 창설했다. 조 선대회장은 세계 항공업계가 동맹체로 재편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2000년 대한항공·델타항공·에어프랑스·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를 아우르는 ‘스카이팀(SkyTeam)’ 출범을 주도했다.

이후 조 선대회장은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신규 스카이팀 회원사들을 위해 업무 표준화와 기술 자문을 통해 스카이팀 멘토 역할을 했다. 2020년 4월 현재 스카이팀은 19개 회원사가 170개국 1036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글로벌 항공 동맹체로 발돋움 했다.

조 선대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 항공업계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가입한 국제협력기구 ‘국제항공운송협회(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IATA)’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IATA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 위원이자 31명의 집행위원회 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의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으로서 IATA의 주요 전략과 세부 정책 방향, 연간 예산, 회원사 자격 등 굵직한 결정을 주도했다.

조 선대회장의 IATA 내 위상은 ‘항공업계의 UN 회의’라고 불리는 IATA 연차총회를 지난해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배경이 됐다.

세계 항공업계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조 선대회장의 역할은 아들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이어지고 있다. 조원태 회장은 현재 국제항공운송협회 집행위원회 위원이자 스카이팀 회장단 초대 의장 역할을 맡아 세계 항공업계를 이끌고 있다. 조 선대회장의 유산인 IATA 서울 연차총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변방이 아닌 전 세계의 중심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스포츠, 국가를 위한 또 다른 헌신

2011년 7월경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고(故) 조양호(오른쪽) 한진그룹 회장이 자크로케 당시 IOC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한진그룹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故 조양호(오른쪽) 한진그룹 회장이 자크 로케 당시 IOC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한진그룹>

조양호 선대회장과 뗄 수 없는 또 다른 단어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조 선대회장은 국가적 대사였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성공적 동계올림픽을 치러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9년 9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조 선대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유치위원장을 맡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로부터 배운 소명의식과 스포츠를 통한 국가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라는 DNA가 조 선대회장이 유치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조 선대회장은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유치위원장 취임 이후 2년간 34개의 해외 행사,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을 소화하며 평창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치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당시 이동한 거리가 64만㎞, 지구 16바퀴에 달했다.

조 선대회장은 세련된 비즈니스 마인드와 글로벌 항공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치인이나 스포츠인들이 생각할 수 없던 조양호 회장의 비즈니스적 감각과 폭넓은 인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결정적 요소가 됐다.

유치 이후에도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유치를 끝으로 잠시 본업으로 돌아간 조 선대회장은 IOC의 스케줄대로 올림픽 준비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로부터 다시 한 번 요청을 받고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먼저 조직을 정비해 올림픽 준비를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경기장 등 베뉴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올림픽 행사의 전초전인 2016 알파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회의와 긴밀히 소통하며 상호 신뢰를 위한 기반을 구축했고 궁극적으로는 평창이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심어주었다.

서울하계올림픽에 이어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가 꺼지고, 평화와 화합을 통해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전 세계 외신의 극찬이 이어졌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은 조 선대회장의 타계 직후 성명을 통해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조양호 회장의 타계 소식을 접하게 돼 IOC는 매우 비통하다”며 “평창 조직위원장으로 재임 기간 고인의 헌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추도했다.

올림픽 뿐만 아니라 조 선대회장은 생전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 안팎으로 노력했다. 단순히 현재의 스포츠 발전을 넘어 향후 어떻게 스포츠가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 시스템적으로 살폈고, 스포츠인들의 미래도 살뜰히 챙겼다. 그는 대한탁구협회 회장,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피스 앤 스포츠(Peace and Sport) 대사 등 스포츠와 관련된 국내·외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힘을 쏟았다.

조 선대회장은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스포츠 인프라과 경쟁력 강화방안,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기여,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별세한 이후에도 한국 체육계에서는 조 선대회장만큼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해온 기업인이 드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하늘길이 꽉 막힌 현재 대한민국의 항공산업은 표류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이런 위기에 처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항공산업의 붕괴를 막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항공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25만명의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IATA는 국내 항공산업이 붕괴될 경우 당장 일자리 16만개가 사라지고, GDP 11조원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는 조양호 선대회장이 생전 보여준 리더십에서 국내 항공업계가 가야할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자는 시스템을 잘 만들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스템 경영론’, 고객과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현장이며 최상의 서비스야말로 최고의 항공사를 평가 받는 길이라는 ‘고객중심 경영론’이 그것이다.

국내 항공업계가 맞닥뜨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라는 것이 조양호 선대회장 1주기의 또 다른 메시지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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