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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13조 슈퍼예산의 ‘얼굴’
내년 513조 슈퍼예산의 ‘얼굴’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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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한다. 가을은 계절적으로 곡식과 과실을 거두는 수확기지만, 나라살림에 있어선 이듬해 뿌릴 ‘재정 씨앗’을 준비하는 시기다.

국민 세금인 재정이 경제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내려면 대내외 여건 변화에 맞춰 재정의 규모와 용처를 제대로 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행정부가 예산안을 쓸모 있게 짜고, 국회는 국민 부담과 재정 투입 효과를 고려해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

올해도 법에 따라 9월 1일 정기국회가 개원하고, 9월 3일 문재인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가을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이듬해 나라에서 쓸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일이다.

어느 해든 재정 씀씀이는 중요하지만, 2020년 예산안은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우선 규모 면에서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선다. 2017년 400조원을 돌파한 지 3년 만에 100조원 넘게 증액된다. 여당이 요구한 530조원보다는 적지만 올해보다 약 40조원, 9.3% 이상 많은 513조5000억원 규모 슈퍼예산이다.

예산증가율이 달성이 불투명한 올해 성장률(2.4%)의 4배에 이른다. 세금이 잘 걷혀 쓴다면 괜찮지만, 세수는 크게 줄어들 판이다. 지난해만 해도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혔는데, 올 들어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성장세가 약해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상반기 국세 수입이 작년 상반기보다 1조원 줄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내수 침체는 여전하고, 수출마저 9개월 연속 감소세다.

기업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세가 덜 걷힌다. 미중 무역전쟁에 일본의 수출규제, 글로벌 경기침체 등 경영환경이 악화일로라서 법인세 감소세는 어쩔 수 없다.

10월부터 민간 아파트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을 테니 양도소득세 수입 증가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쓸 곳은 많으나 세금이 덜 걷히니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 판인데 늘어날 국가채무, 즉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서인가. 여당은 ‘좋은 항아리는 아낌 없이 써야 한다’며 최대한 확장재정을 주문했다.

이에 적절히 제동을 걸어야 할 경제부총리는 “일시적 재정적자 확대를 감내하겠다”고 했다. 예산은 규모 못지않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불황기에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무턱대고 규모만 늘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경제 활력을 높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정당 간 극심한 다툼, 분당 등 파란만장했던 20대 국회는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예산을 어떻게 심의할까. 미국 스탠퍼드대학 재정학 교수 차노프는 해마다 예산이 의결되면 ‘예산 얼굴(budget face)’을 그려 발표했다. 부문별 예산의 많고 적음으로 이마, 눈썹, 눈, 미간, 코, 인중, 입술, 볼, 턱의 크기나 모양새를 달리해 그렸다. 이를테면 나라 빚이 많아지면 눈썹 복판이 솟아 험상궂고, 납득하기 어려운 곳에 예산이 배정되면 아랫입술을 돌출시켜 비웃는 상을 도출했다.

자주 그래 왔듯 여야가 정쟁으로 허송하다 법정 처리시한에 쫓겨 졸속 밀실 심사에 지역구 민원 끼워넣기 구태를 답습한다면 또다시 험상궂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재탕할 것이다. 이번 가을국회야 말로 제대로 된 심의로 편안하고 균형 잡힌 예산 얼굴을 그리길 고대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