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韓·美·英 돌며 참전용사 6000명 사진 헌정한 라미 작가
[인터뷰] 韓·美·英 돌며 참전용사 6000명 사진 헌정한 라미 작가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9.08.0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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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세월만큼 바뀐 군인의 표정을 담다

지난 7월 13일 정오, 광화문 근처 한 음식점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 16명이 모였다. 한국전쟁 때 창설된 육군예비사관학교 동기라고 했다. 화기애애한 식사가 끝나자 덩치 큰 사진작가가 분주히 움직였다. 여섯 평 남짓 좁은 공간에도 익숙한 듯 재빠르게 구도를 잡은 뒤 어르신들 사진을 찍었다. 이날 찍은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 집에 보내준다고 했다. 한 어르신이 물었다. “사진 값으로 얼마를 줘야 합니까?” 작가의 대답. “공짜입니다. 어르신들께선 이미 69년 전에 비용을 지불하셨습니다.”

사진작가 라미.<사진=이일호 기자, 그래픽=이민자>

[인사이트코리아=이일호 기자] 사진작가 라미(한국명 현효제·40)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한 군인을 전문으로 찍는다. 작가 생활 10년 중 절반 넘게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 영국을 오가며 그간 찍은 군인만 6000여명에 달한다. 대가 없이 오직 후원과 자비로만 작업을 진행하느라 빚까지 진 상태다. 그래도 라미 작가는 군인 사진을 찍는 게 재밌고 뿌듯하다고 한다.

지난 7월 16일 서울 강남 한 작업실에서 만난 라미 작가는 분주했다. 지난 2월 영국 참전용사들을 찾아가 찍은 사진을 직접 전해 줄 거라 했다. 작업실 곳곳에 포장한 액자들이 잔뜩 쌓여있었는데, 문득 외국까지 가서 직접 건네주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득이하게 돈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배고플 때쯤 누가 밥 사주더라”

-이 많은 사진을 직접 전해줍니까.
“직접 줍니다. 예전에는 국제 택배로도 보냈는데, 몇몇 문제 때문에 이제는 비행기 타고 가서 건네줍니다.”

-적잖게 돈이 들겠습니다.
“오히려 직접 가져가는 게 더 쌉니다. 외국으로 사진을 택배로 보내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간혹 못 받는 분도 생깁니다. 또 사진 액자는 아트워크로 처리돼 세금도 내더라고요. 대신 직접 가면 항공권 값에 수화물 비용까지 쳐도 택배비랑 비슷합니다. 파손이나 분실 위험도 덜하고요.”

-대신 몸이 힘들겠습니다.
“힘들어도 만족이 더 큽니다. 저는 서비스업 종사자이다 보니 만족감이 없으면 기운이 빠져요. 비행기 타고 운전하고 가서 피곤해도 그들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니까요. 사진 찍고 이야기 나누고 음료수 한 잔 얻어 마시면 기운 납니다. 재미있기도 하고요.”

-한 달에 보통 몇 번 촬영합니까.
“바쁠 때는 15일씩 찍습니다. 국내 촬영은 당일치기도 있지만 며칠 자고 오기도 합니다. 매달 한 번 정도는 외국에 나가 촬영하고요.”

-생계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옛날에 대출받은 게 있었는데 거의 다 썼습니다(웃음). 사실 저는 돈을 벌 때도 주변 친구들한테 밥 사주는 거 아니면 장비만 샀습니다. 연애도 많이 안 했고 술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오로지 장비에만 투자했어요. 돈이 부족하면 웨딩 촬영하고 작품 팔고 장비 팔면 됩니다. 최근 미국 일정도 조명이랑 카메라 판 돈으로 다녀왔고요.”

-돈 걱정은 없습니까.
“정말 힘들 때쯤 주변에서 한 번씩 도와주더라고요. 지난해 미국 올랜도와 애리조나에서 열린 전미 참전용사 행사에 가서 200여 분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후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갑자기 한화그룹에서 자기들이 돈을 대주겠다는 제의가 왔죠. ‘지성이면 감천이구나’ 싶었습니다.”

-큰 힘이 되겠습니다.
“살다 보니 그런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배고플 때쯤 되면 누가 밥 사주고 도와주더군요. 어떤 분은 금일봉을 주며 자기 회사 영상 찍어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영상 잘 찍는 사람 소개해주겠다’고 했더니 ‘그런 사람 필요 없고 그냥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일하다 보니 그런 분이 한두 분씩 계십니다. 외국에 갈 때도 항공료랑 렌터카 비용만 빼면 웬만한 숙식은 다 현지에서 제공해줍니다. 고마운 분들 덕분에 지금껏 일 할 수 있었죠.”

라미 작가가 찍은 참전용사들.<라미스튜디오 현효제>

‘삽질’은 나의 힘

대학교에서 사학(史學)을 전공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학길에 나섰다. 처음엔 영상을 공부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앞서 사진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까. 그는 “엄마 영향은 하나도 안 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학도가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됐습니까.
“군대에서 CBT(Computer-Based Training) 병으로 복무했습니다. 2001년 군번이었는데, 당시 ‘플래시(Flash)’가 유행하면서 군대에서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훈련이 도입됐거든요. 입대 초 간부가 너 ‘플래시’할 줄 아느냐고 묻길래 ‘그거 손전등 아니야?’ 싶어서 안다고 해 뽑혔습니다(웃음). 그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종합예술학교(AAU)로 가게 됐고요.”

-군대가 본인 인생을 바꿨네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AAU에서는 비주얼 이펙트(Visual Effect)를 전공했습니다. 비주얼 이펙트는 영화에서 보는 특수효과를 컴퓨터로 구현하는 작업입니다. 사진과는 너무 다르죠.”

-그럼 사진은 어떻게 접하게 됐습니까.
“우연히 한 유명 디렉터 작업물에 매료돼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일 년 동안 사진을 10만 장쯤 찍어보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날로 보급형 DSLR을 사서 사진을 밥 먹듯 찍기 시작했죠. 1년간 13만 장쯤 찍으니까 그제야 왜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으라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사진을 많이 찍으니 뭐가 달라졌습니까.
“세상을 관찰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가더라도 사진을 찍으면 그걸 보는 눈이 더 민감해집니다.”

-인생을 바꾸는 조언이었네요.
“디렉터한테 잘 찍은 사진과 함께 감사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답변이 오더라고요. ‘Who are you?(너 누구야)’ 그런 이메일을 많이 받다 보니 기억도 못 한 듯합니다(웃음).”

-그래도 전공 바꾸기는 쉽지 않았겠습니다.
“이미 2년 반이나 공부한 영상을 포기해야 해 고민이 컸습니다. 어느 날 저랑 의형제처럼 지내는 상호 형(태상호 종군 사진기자)에게 털어놨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인생에서 하나만 할 수 있다면 재미있는 것보단 미치는 게 낫지 않을까?’ 비주얼 이펙트는 재미있었지만, 제가 진짜 미쳐서 할 수 있는 건 사진이었습니다.”

-‘삽질’을 잘하는 스타일인 듯합니다.
“그게 저에겐 제일 중요한 ‘자양분’입니다. 삽질을 많이 하면 경험이 생기고 ‘토양’이 되거든요. 사진은 수학처럼 공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드는 학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지 않고 남이 가진 지식만 보는데, 저는 삽질을 많이 하면서 ‘내 것’이랄 게 생겼습니다.”

‘군인 팔아먹냐’며 욕도 먹어

지난 7월 13일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라미 작가가
찍은 육군예비사관학교 총동문회원들.
<라미스튜디오 현효제>

라미 작가는 원래 군인에 대해 인식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2013년 우연한 계기로 군인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후 근 6년에 걸쳐 ‘프로젝트 솔저스(Project Soldiers)’라는 이름으로 참전용사를 만나왔다.

-사진은 보통 어떻게 찍습니까?
“주로 인터뷰를 합니다. 리차드 아베든(Richard Avedon)이란 작가 스타일인데, 사진 찍을 사람과 대화하다가 마지막에 ‘당신이 만약 내일 죽는다면 어떤 표정을 짓겠나’하고 묻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표정이 변하는 그 순간을 잡는 거죠.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찍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습니다.
“실제로 3일이면 되는 촬영을 한 달 걸려서 찍은 적도 있습니다. 또 그냥 찍으면 되는 걸 ‘타임 랩스(Time-lapse·저속 촬영)’ 형태로 3박 4일간 찍기도 했고요. 엄청 힘들긴 한데 또 재미있습니다.”

-흑백을 자주 쓰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진은 빛과 구도, 색으로 구성되는데 색은 사람과 시대, 장소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가집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군인정신은 색 때문에 변하면 안 됩니다. 또 대부분 군인이 햇볕에 오래 노출돼서 피부가 어두워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죠.”

-군인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습니까.
“서울대병원 제의로 의사들 사진 찍고 인터뷰 영상을 만들었는데, 육군 1사단에서 그걸 보고 홍보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이 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원래 군인에게 호감이 있었습니까.
“아뇨. 저는 후방 부대에 복무해서 그런지 군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주적은 북한군이 아닌 간부’라고 말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전업으로 하고 계십니다.
“군인 80명의 인터뷰를 찍는데, 그중에 원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나누는데 28년 근무하면서 가족들이랑 놀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사진첩 한 권의 반도 못 채웠다고, 2년 후 만기 전역한 뒤 가족여행이 소원이라며 울먹이더라고요. 제가 업신여기던 군인이 자기 신념을 지키고 인생을 거느라 가족여행도 못 간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일에 투신하신 거군요.
“2014년부터 전국 방방곡곡 군대를 다녔죠. 장병들은 좋아했지만 2년여쯤 되자 육군본부로부터 제재가 들어왔습니다. 자비로 국회에서 ‘군복 사진전’을 열었는데, 당시 정치권 파행과 맞물려 육본에서 가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온 거예요. ‘이제 군인 좀 그만 괴롭혀라’ ‘당신 좋아지려고 우리 팔아먹는 것 아니냐’는 전화도 받았습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군을 홍보해주고도 욕을 먹었군요.
“실제로 그만해야겠다고 까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간 찍어준 게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사진 요청이 많이 왔습니다. 명분이 없으니 합당한 이유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당시 또 구구절절한 사연을 많이 받았죠. 안 하기로 해놓고선 60개 부대를 또 다녔습니다. 군 관계자들의 협조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찍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인상 깊은 사연이 있습니까?
“‘저는 사회에서 왕따였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한 병장의 편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때까지 따돌림 당했는데, 입대 후 조교가 돼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전우들과 헤어지는 게 두렵다며 사연을 보냈는데, 그게 전역 휴가 5일 전이였습니다. 급하게 아는 부대 참모에게 도와달라고 해 사흘 만에 가서 찍은 기억이 납니다.”

“군 홍보학교 만들고 싶다”

지난 7월 13일 광화문 일정 중에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라미 작가가 촬영 후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안아달라고 한 것이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이들은 이내 그를 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피부와 피부가 닿는 게 말보다 더 따뜻하다’고 라미 작가는 말했다.

윌리엄 웨버 미국 예비역 대령과 라미 작가가
포옹하고 있다.<라미스튜디오 현효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윌리엄 웨버(William Weaver) 대령입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있는 ‘19명의 미국 병사 조각상’의 실제 모델이 된 분입니다. 일제강점기 직후 일본 내 조선인 노예를 700명 가까이 본국으로 송환하셨고, 한국전쟁에선 수류탄에 맞아 오른팔을 잃고 후송 중 포탄을 맞아 오른 다리를 잃으셨습니다. 그래도 지금껏 정정하십니다.”

-참혹하군요.
“그분은 자유와 의무에 대한 제 인식을 바꿨습니다. 저는 사진 받으시는 분들께 ‘비용은 이미 지불하셨고, 저는 작은 빚을 갚을 뿐이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선 ‘너는 우리한테 빚진 게 없다.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걸 전파할 의무가 있고, 우리도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정치성향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중도입니다. 보수나 진보, 우파나 좌파는 만들어진 것이라 믿습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어느 진영이나 지난 69년간 똑같이 정치를 잘 못 했어요. 저는 그냥 중립이에요. 그래야 사진도 찍고 돈도 어느 쪽에서든 다 받을 수 있습니다(웃음).”

-편견을 갖고 보는 분도 있겠습니다.
“많습니다. 제가 군인 사진만 찍는 줄 아는 거죠. 근데 제 장르는 넓어요. 작업적으론 군인·나무·공원을 찍고 그 외에도 커머셜, 패션이나 행사든 뭐든 다 찍습니다. 중요한 건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겁니다.”

라미 작가는 2023년까지 ‘프로젝트 솔저스’를
마무리하고 군 홍보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라미스튜디오 현효제>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음악이라는 게 ‘1차 언어’라서 판단하지 않아도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제가 하는 비주얼 작업은 ‘2차 언어’거든요. 주로 클래식이나 영화음악, 재즈를 듣습니다. 작업할 때도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 음악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참전용사는 언제까지 찍으실 건가요.
“내년이 한국전쟁 발발 70주기라 2년간 미국 48개 주를 돌며 참전용사 사진을 찍을 생각이에요. 2022년에는 20개 참전국을 돌고, 2023년에 전시회를 하게 되면 일단 ‘프로젝트 솔저스’는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거의 안 살아계실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요?
“각국마다 군대를 홍보하는 조직이 있어요. 근데 그들이 하는 홍보물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기관은 없습니다. 그걸 가르쳐주는 학교를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제가 학교를 만들면 10년쯤 가지 않을까요? 그다음엔 아마 나무 찍으러 다닐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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