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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진화] 식모방 딸린 아파트를 아십니까?
[아파트의 진화] 식모방 딸린 아파트를 아십니까?
  • 도다솔 기자
  • 승인 2019.03.20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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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일본인 숙소용 ‘미쿠니 아파트’가 최초...60년대 박정희 지시로 현대식 아파트 개념 정립

[인사이트코리아=도다솔 기자] 우리나라에서 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파트다. 빽빽한 도심에서도 허허벌판에서도, 한 동이든 대단지든 아파트는 어디에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아파트에 거주하는 국민 수는 2015년 기준 2670만6117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3.12%에 달한다.

한반도 곳곳을 뒤덮은 아파트는 어디에 가장 처음 지어졌을까? 1930년 미쿠니상사가 일본인 직원 숙소 용도로 회현동에 지은 3층짜리 ‘미쿠니 아파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고 전해진다.

1932년 지어진 충정아파트 전경.서울시청
1932년 지어진 충정아파트.<서울시청>

1932년 관사가 아닌 임대를 위한 일반 아파트도 등장했다. 4층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충정아파트다. 충정로 철길 바로 옆에 세워진 충정아파트는 원래 토요다 아파트로, 건물 소유주였던 토요다 다네오 씨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1945년 해방을 거치며 풍전아파트에서 유림아파트로, 또 충정아파트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서울시는 2013년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해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오다

현대식 아파트가 본격 등장한 것은 1957년에 지어진 ‘종암아파트’다. 3개동 152가구 규모의 종암아파트는 우리 민족이 선호하는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배산임수형의 풍수지리를 담고 있었다. 독일에서 설계하고 미국의 자본을 받아 중앙산업이 건설에 참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낙성식에 참석할 정도로 당시 굉장히 주목받는 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에서 최초로 ‘아파트먼트 하우스’라는 명칭이 소개됐고, 이후 아파트라는 말로 굳어지게 됐다.

종암아파트를 시찰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종암아파트를 시찰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국가기록원>

종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집안에 수세식 변기를 들여놨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계였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화장실은 집 밖에 있는 것이었다. 낙성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렇게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종암아파트에 있습니다. 정말 현대적인 아파트입니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종암아파트는 방 2칸에 거실, 주방, 창고, 발코니까지 있으며 국내 최초로 경비실을 갖춘 고급 아파트였다. 베란다 한쪽 귀퉁이에 1.5㎡ 정도 크기의 공간이 있었는데, 여닫이문을 달아 장독을 두는 간이 장독대가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자면 고공병에 걸린다는 소문으로 막상 분양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종암아파트와 숭례초등학교 모습.서울역사박물관
종암아파트와 숭례초등학교.<서울역사박물관>

내부 구조의 특이한 점은 집안에서도 바닥 높낮이가 달랐다는 점이다. 따뜻한 온돌바닥을 깔았던 침실은 현관과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았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효형출판, 2009)에 따르면 ‘단이 높은 안방에서 발코니를 통해 내려다보는 공간감은 옛날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던’ 시각과 닮았다고 한다. 전통 좌식구조와 서양식 입식구조가 공존했던 셈이다.

현대식 대단지 아파트 등장...6개월 만에 완성한 아파트 붕괴 참사

오늘날과 같은 현대식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이때 탄생한 게 서울 도화동 ‘마포아파트’다. 1962년과 1964년에 지어진 마포아파트는 설계에서 전통 가옥의 흔적이었던 온돌 마루가 완전히 사라지고 서구식 입식 구조를 구현했다. 이 아파트는 당시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했다.

마포아파트 완공 직후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마포아파트 완공 직후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당시 마포아파트 실내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당시 마포아파트 실내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컬러사진으로 남아있는 마포아파트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컬러사진으로 남아있는 마포아파트 모습.<한국토지주택공사>

6층 규모의 연탄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이 아파트는 단지형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아파트였다. 단지 내에 공원과 녹지, 놀이터, 운동장 등 입주민을 위한 공공시설을 갖췄으며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계됐으나 자본 부족과 주민여론에 밀려 시공되진 못했다.

아파트 붐을 타고 1968년 12월 서울시가 시민아파트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마포구 창전2동 와우지구에 건설되던 시민아파트는 당시 가파른 산중턱에 위치했는데 ‘왜 저런 곳에 아파트를 지었냐’는 질문에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한 답변이 유명하다. “야 이 ○○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 붕괴 당시 모습.서울시청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 붕괴 당시 모습.<서울시청>

와우아파트는 건설과정에서 적은 건설비용과 무면허 건설업체 선정과 같은 부정부패, 부실시공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런 문제들이 결국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라는 참사를 낳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1년 동안 32개 지구에 406동, 1만5840가구의 아파트를 건립하는 것이었는데, 와우아파트는 1969년 6월에 착공해서 12월에 완공됐다. 6개월 만에 아파트를 올린 것이다.

시공업체에서는 뇌물을 써서 이 공사를 따냈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했다. 기둥 하나에 19mm 철근을 70개씩 박아야 했으나 5개만 박아 넣으면서 꼼수를 부렸다. 여기에 시멘트가 아니라 모래와 자갈 반죽을 이용했다. 소문에 의하면 모래는 바다 모래를 퍼와 섞었다고도 한다. 또 지반공사 없이 암반이 아닌 부토 위에 바로 아파트 기둥을 세웠다. 겨울에는 땅이 얼었기 때문에 겨우 버텼지만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자 내구도가 약해진 건축물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70년대 아파트 속 보편적인 공간 ‘식모방’

1970년 여의도시범아파트 분양 광고.서울시청
1970년 여의도시범아파트 분양 광고.<서울시청>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지어진 아파트에는 요즘 아파트와는 다른 낯선 공간이 있었다. 한강맨션·반포주공·여의도시범아파트·여의도장미아파트·압구정현대아파트 등 당시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 주방 한 켠에 지어진 ‘식모방’이다.

식모가 등장한 것은 노비 해방이 이뤄지고 봉건적 신분질서가 해체된 1920년대를 전후한 시기로, 당시 가난한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부잣집에 입주해 부엌일, 아이 돌보기 등을 하던 데서 비롯됐다. 식모살이를 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20세 미만의 소녀들과 30세 전후의 기혼여성으로 이 중 20세 미만은 농촌 출신이거나 전쟁고아가 대부분이었다.

가족들의 주생활 공간인 거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부엌 옆 쪽방의 위치는 당시 건축가들의 의견에 따라 정해졌다. 당시 건축전문가들은 식모는 가사 노동자이므로 식모방의 위치는 부엌과 가까운 곳에 두고, 문간 옆에 자리해 손님 응접에 편리하도록 하며, 뒷문간이나 다용도 공간에 붙여 행상과의 교섭, 장보기 등 출입하는데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70년대 잠실주공5단지와 압구정현대아파트 평면도 속 식모방 모습.
70년대 잠실주공5단지와 압구정현대아파트 평면도 속 식모방 모습.

 

80년대에 등장한 목동신시가지아파트·아시아선수촌아파트·올림픽선수촌아파트 등에서는 더 이상 식모방은 마련되지 않았다. 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 일자리가 늘었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개인의 인신을 남에게 의탁하는 일은 차츰 사라지고 인건비도 올라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입주 가정부보다는 공장으로 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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