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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새판짜기' 승부수 통할까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새판짜기' 승부수 통할까
  • 노철중 기자
  • 승인 2019.02.0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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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 교체로 계열사 독립경영 완결 ‘빅 픽처’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전경. 이랜드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전경. <이랜드>

[인사이트코리아=노철중 기자]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후 재계의 관심이 박 회장의 향후 행보에 쏠리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12월 3일 박 회장의 퇴진 소식과 함께 계열사 총괄 대표이사를 부회장, 사장급으로 격상시키고 각 사업 부문 대표에 30, 40대 젊은 세대를 전면 배치하는 경영체제 개편을 단행했다. ‘소유’ 보다 ‘경영’에 방점을 찍는, 요컨대 세습 경영이 아닌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재계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른바 ‘무소불위’의 기업 지배권을 내려놓은 박 회장은 향후 미래 먹거리 발굴과 차세대 경영자 육성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동안 박 회장과 함께 이랜드를 이끌어온 여동생 박성경 부회장도 물러나 이랜드재단 이사장을 맡아 이랜드의 나눔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올인할 예정이다.

이랜드는 1980년 박성수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 차린 ‘잉글랜드’라는 조그마한 옷가게에서 시작한 회사다. 헌트, 브랜따노 등 고품질 중저가 브랜드로 소비자들에 어필하며 승승장구, 1994년에는 국내 최초 도심형 아울렛 ‘2001아울렛’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성공했지만 2010년대부터 경영난을 겪으며 위기를 맞았다.

현재는 위기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착실히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재계 순위 42위(2018년 8월 1일 기준)로 공정위 감시를 받는 대기업집단이다. 자산총액은 8조2427억원에 이른다.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를 중심으로 이랜드리테일, 이랜드파크, 이월드, 엘칸토 등 총 2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이랜드그룹이 다른 대기업집단과 크게 다른점은 박성수 회장이 33.92%, 부인인 곽숙재 씨가 6.7%의 지분을 소유한 것을 제외하곤 2명의 자녀(1남 1녀)는 물론 박성경 부회장도 회사 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박 회장의 자녀뿐만 아니라 박 부회장 자녀들도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소유에서 경영으로’…부채비율도 115%까지 낮춰

그렇다면 박 회장은 왜 경영 일선에서 물러 나기로 결심한 것일까. 앞서 2013년에 박성수 회장과 박성경 부회장은 모두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그것이 이랜드 경영이 ‘소유에서 경영으로’ 바뀌는 신호탄이었다면 이번 경영체제 개편은 완결편으로 나아가기 위한 박 회장의 ‘빅 픽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박 회장이 경영 후선으로 물러나겠다고 하자 이런저런 구구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랜드가 그룹으로 몸집을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2003년부터 추진해온 공격적인 인수합병 탓에 급증한 부채비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초기에는 폐업 직전의 부실기업을 인수해 부활시키는 등 과감한 인수합병이 성공을 거둬 사세 확장에 원동력이 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관측이다.

한국신용평가의 이랜드그룹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2011년 408%를 기록하고 이후 2014년까지 300% 중후반대를 오갔다. 같은 기간 이랜드그룹의 인수합병 건수는 20여 건에 이르렀다.

그룹의 주력기업인 이랜드월드의 영업이익도 2014년 655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줄어 2017년에는 3255억원으로 반토막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재무건전성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부채비율은 303%에서 2018년 9월에 115%까지 대폭 낮아졌다. 실제로 이랜드는 2016년부터 재무상태 개선을 위해 티니위니, 모던하우스 등 주요 브랜드들을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재무건전성 확보 조치를 단행했다. 게다가 부채비율이 늘어나는 중에도 매출 실적은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이며 활력을 잃지 않았다.

현재 이랜드는 이랜드리테일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에도 상장을 시도했지만 한 차례 연기한 바있다. 이랜드는 올해 상반기까지 상장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그룹 경영진 교체 인사도 상장을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눈앞 이익 좇기보단 더 멀리 더 크게 본다”

박성수 이랜드 회장. 이랜드
박성수 이랜드 회장. <이랜드>

이랜드 관계자는 “2019년 임원 인사의 배경에는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전문성과 리더십이 검증된 경영진을 주요 계열사에 전진 배치해 독립경영 체제를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며 “기존 사업 틀에 얽매이지 않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명망 있는 사외이사 영입도 적극 추진해 투명경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성수 회장은 여러 강연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기억을 회고하곤 한다. 그의 어머니는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초등학교 때 그는 품질이 한 수 위인 어머니 상품이 경쟁제품 절반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가 궁금해 어머니께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내가 이익을 더 갖는 것보다 내가 싸게 공급해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이 더 큰 이익을 보는 것이 더 보람 있고 기쁜 일이다.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더 멀리 더 크게 내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곧 박 회장의 경영철학으로 구체화됐다고 한다. 그는 “어떤 상품을 판매할 때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에게는 한 번의 구매로 그치게 되지만, 고객 이익을 생각해 가격대비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지속적인 구매로 이어진다”고 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랜드의 ‘좋은 품질, 절반 가격’이라는 경영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랜드에는 유통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국내 패션 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여 업계에 큰 획을 그었다. 또 이랜드는 ‘캐주얼 웨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런닝티셔츠와 맨투맨티 등을 국내에 첫선을 보이며 맞춤복 시대에 캐주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실제 박 회장 자신도 캐주얼 차림을 즐겨 입는다. 늘 밝은 색 계통을 선호하고 60대 후반 나이에도 야구모자나 야구점퍼 등을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계에서는 이랜드가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로 1994년 국내 최초의 아울렛 쇼핑몰 ‘2001아울렛’ 오픈을 꼽는다. ‘백화점을 할인한다’는 슬로건으로 고품질의 저렴하고 다양한 브랜드를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아울렛은 당시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2003년에는 뉴코아백화점을 인수해 아울렛으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아울렛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이랜드는 인수합병이나 신규 사업을 진행할 때 유행을 좇거나 즉흥적인 판단으로 갑자기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 전개하는 이랜드의 모든 사업은 박 회장이 30년 플랜으로 구상해온 사업들을 하나 둘씩 실행해 오고 있는 과정이라는 게 이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랜드의 모든 사업을 관통하는 박성수 회장의 또 다른 경영철학으로 ‘고객 중심적 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가 아니라 고객 이익을 먼저 생각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박 회장이 경영자들에게 현장 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인 스스로도 틈만 나면 수시로 현장을 찾아 직접 보고 판단한다.

이랜드의 재입사 제도는 어느 회사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다. 일반적으로 회사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지난 2년여 동안 이랜드를 퇴사하고 다시 돌아온 직원 수만 200명이 넘는다. 특히 육아 때문에 퇴직했던 여직원에게도 언제든 재입사 길이 열려 있다. 아이를 다 키우고 10년 넘게 육아에 전념하다 재입사한 여직원들도 상당하다. 이랜드는 차별하지 않는 4가지가 있다. 남녀차별·출신학교·지역연고·연공서열 등이다. 오로지 능력과 성과 위주로 판단하는 것이 이랜드의 경쟁력이라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전문경영인에 맡기고 미래 먹거리 창출 매진

이랜드 그룹 신임 부회장, 사장 프로필. 자료=이랜드, 그래픽=이민자
<자료=이랜드, 그래픽=이민자>

박 회장은 ‘기업은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며 그 이익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91년 재단법인 이랜드재단, 1996년 사회복지법인 이랜드복지재단을 설립해 사회복지 활동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특히 2002년에는 매년 순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공식발표하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사회공헌은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 법인도 실천하고 있다. 중국 이랜드는 2000년부터 19년째 나병원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 2년 연속 중화자선상(中華慈 善賞)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어진 이러한 이랜드의 전통은 박성수 회장을 믿고 잘 따라준 후배 전문 경영인들의 손으로 넘겨졌다. 박 회장은 미래먹거리 창출과 차세대 경영인 양성에 매진할 생각이다. 박 회장이 떠난 자리엔 그와 함께 초창기 사업을 함께 일궜던 인물들이 대거 포진됐다. 상장을 눈앞에 둔 이랜드리테일은 최종양 부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이랜드월드는 길일규 부회장이, 그리고 호텔·리조트·외식 사업을 이끄는 이랜드파크에는 김현수 사장이 각각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최종양 부회장은 유통법인 전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중국 시장 선점에 공을 세운 ‘중국통’으로 이랜드가 1994년 상해에 생산지사를 설립할 당시 중국으로 넘어가 시장 조사에 앞장섰으며, 제조법인에서 판매법인으로 역할이 바뀐 이랜드 중국 비즈니스의 초대 대표를 지냈다. 부임 전 중국 관련 서적 100권을 독파하고 부임 후에는 기차로 6개월간 중국 전역을 순회한 일화는 지금도 중국에 새로 부임하는 경영진에 이랜드그룹의 문화로 계승되고 있다.

중국의 최소 단위 행정구역인 찐(한국의 읍)까지 시장 조사를 나섰던 최 부회장은 기차와 버스는 물론 여관이나 여인숙 숙박까지 가리지 않고 전국 순회를 감행했다. 1996년부터 생산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만큼 생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 지역에 있는 백화점은 물론 생산공장까지 꼼꼼하게 검증했고, 이는 중국 사업부의 신속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랜드월드를 총괄하는 김일규 부회장은 중국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해외 명품 브랜드의 인수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김 부회장은 1980년대 후반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이전에 중국에 생산공장을 찾으러 들어가 터를 닦았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설립한 이후에는 영국으로 넘어가 유럽 법인장을 맡았고, 2007년에는 미국 법인장을 지냈다. 김 부회장은 해외법인에서만 10여 년 근무하면서 만다리나덕, 코치넬리, 팔라디움, 케이스위스 등 이랜드가 인수합병한 해외 브랜드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또 김 부회장은 커뮤니케이션 총괄로서 그룹이 전방위로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박성수 회장은 2평 남짓한 조그마한 옷가게에서 시작해 이랜드를 재계 42위 대기업으로 일궈냈다. 기업과 경영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 시기에 그의 퇴진선언으로 강한 오너십에 기반한 기업가 정신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잇속보다 더 멀리 더 크게 내다보고 결심한 박 회장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승부수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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