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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1회용 컵 커피문화 '전복' 하고 싶다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스타벅스의 1회용 컵 커피문화 '전복' 하고 싶다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8.09.03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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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 상상...세계 첫 목걸이형 MP3 플레이어 N10 디자인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 '샤블리에'를 탄생시킨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 '샤블리에'를 탄생시킨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상사하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이노디자인>

[인사이트코리아=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핸드 드립 기구와 텀블러를 융합해 ‘드립부터 마시는 것까지’ 한 번에 해결하면 어떨까?”

커피 애호가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은 2년 전 어느 주말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곧바로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두 기능을 복합하려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 물건을 뒤집어야 했다. 뒤집는다는 생각에서 모래시계가 연상됐다. 마침내 스케치가 완성됐다. 드립 기구 겸용 텀블러 ‘샤블리에’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나 같은 디자이너들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머릿속 상상을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어 합니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거죠.”

샤블리에 스토리는 2000년대 초 김영세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MP3 플레이어 N10을 연상시킨다. 그가 이노디자인의 본사 이노디자인 USA가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서 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일이다. 서울에 장기출장을 와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지나가는 젊은 여성이 목에 건 MP3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무거워 보이는 검정색의 투박한 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를 목걸이형으로 디자인해 거기에 이어폰 줄을 집어넣으면 어떨까?’

그는 냅킨을 한 장 뽑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세계 첫 목걸이형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의 N10은 이렇게 탄생했다. N10 이후 ‘소리 나는 목걸이’는 MP3 플레이어의 대세가 됐다. 사람들이 음악 듣는 습관을 바꿔놓은 그가 이제 커피 마시는 문화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세상에 없던 텀블러 샤블리에를 뒤집으면 커피의 문화가 바뀝니다. 세계적으로 해마다 버려지는 종이컵이 연간 600억 개라고 합니다. 이 많은 종이컵을 만드느라 해마다 멀쩡한 나무 2000만 그루가 잘려나가요. 샤블리에로 지구적인 1회용 커피 문화를 ‘전복’하고 싶어요. 지난 40년 간 스타벅스를 탄생시킨 하워드 슐츠가 주도한 1회용 컵 커피 문화를 바꿔 보려고요.”

뒤집는다는 건 곧 바꾸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달걀의 한쪽 끝을 깨 책상 위에 세웠다. 100년 된 나무를 자르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걸린다. 나무는 심고 기르기도 어렵지만 자르고 나면 복원하는 데 같은 시간이 걸린다.

“디자이너는 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에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경험과 습관, 생활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N10은 사람들이 음악 듣는 습관을 바꿔놓았죠.”

샤블리에는 불어로 모래시계다. 실물이 모래시계처럼 생겼다. 아니 모래시계처럼 한손에 잡히도록 그가 디자인했다.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하기 위해서다. 샤블리에의 윗덮개를 열어 드립 기구에 커피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서 3~5분 후 뒤집으면 텀블러가 된다. 뒤집었기에 위를 향한 밑 덮개를 열고 드립 커피를 즐긴다.

샤블리에는 경제적이다. 가격이 6만원이지만 샤블리에 전용 커피백은 500원이다. 프랜차이즈 커피점 커피 가격의 10분의 1 안팎이다. 샤블리에는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전기 등 어떤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수명이 길고 텀블러인 만큼 당연히 휴대하기 편하다. 디자이너 출신의 기업인이 친환경적 커피 비즈니스를 디자인한 셈이다.

샤블리에로 테이크아웃 문화 바꾼다

샤블리에는 제조원도, 판매원도 샤블리에다. 김 회장이 이노디자인의 자회사로 샤블리에라는 이름의 별도 회사를 차렸다. 종이컵이든, 플라스틱 컵이든 1회용 용기에 담아 마신 후 용기를 버리는 오래된 커피 문화를 바꾸려 작심한 것이다. 인터뷰 전날 두 달 만에 미국 본사에서 돌아온 그는 “샤블리에를 미국에서도 론칭했고 아마존에도 1주일 전 올라갔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국민은 다 잠재적 고객이죠. 샤블리에 몸체에 ‘커피 앤 티 텀블러’라고 프린트돼 있습니다. 차를 마실 땐 드립 기구 속의 망만 바꾸면 돼요.”

김영세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샤블리에'
김영세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샤블리에'<이노디자인>

점심 식사 후 플라스틱 컵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는 게 오피스타운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샤블리에를 매개로 과연 테이크아웃 문화가 텀블러 사용 문화로 바뀔까?

“젊은 세대가 주도해 이 낙후된 커피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5000원짜리 커피를 1회용 플라스틱 컵에 마시면 플라스틱 처리 비용이 플러스 알파로 드는 거예요. 커피를 마시느라 지구적인 골칫거리인 1회용품 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죠. 우리가 ‘굿바이 페이퍼 컵스-종이컵 안녕 캠페인’을 벌입니다. 이노디자인으로서는 디자인으로 지구를 구하고 살리는 시도예요. 샤블리에가 올린 수익의 일부는 환경단체에 기부합니다. 식수 오염지역을 살리려는 비영리사단법인 오픈 핸즈 등이 대상이죠.”

환경부는 이달 초부터 커피 전문점 등의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단속에 나섰다.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되는 데는 약 500년이 걸릴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물에 타서 마시는 믹스커피는 음료수지 커피가 아닙니다. 모름지기 커피는 핸드 드립으로 내려서 마셔야죠. 이렇게 내리는 과정은 커피를 즐기는 문화의 일부입니다. 드립 커피는 3~5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일종의 슬로우 푸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샤블리에를 창안한 디자이너이자 샤블리에라는 기업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샤블리에는 미국의 킥스타터를 통해 아마존에 진입했다. 국내에선 이노디자인의 자회사인 DXL(Design Accelerator Lab)이 주선해 와디즈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다. 올린 후 1시간 반 만에 목표액 1000만원을 달성했다.

그는 샤블리에를 통해 일종의 공유 경제를 실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샤블리에의 유저가 누리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샤블리에를 만드는 생산자 및 판매자, 커피·차 재배 농가 모두 우리의 파트너입니다. 샤블리에용 커피는 한국·미국 등 현지에서 생산합니다. 샤블리에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 커피를 조달하고 이들 나라에 샤블리에 영업의 기회도 제공하겠다는 거죠. 이런 콜라보를 통해 공유경제를 실현하려는 거예요.”

그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디자인은 더 이상 제품의 껍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디자인이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비즈니스야말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때 타인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 같은 타자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친환경 비즈니스를 해 보려는 거예요. 기업가는 이해관계자와의 콜라보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으로써 돈도 벌고 박수갈채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기업이 사회적 기업, 착한 회사가 돼야 합니다. 저는 샤블리에도 사회적 기업이라고 봐요.”

아이리버 세대에게 꿈을 전수하다

그는 샤블리에를 론칭하며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모교인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생활을 접고 맨땅에 헤딩 하듯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설립했습니다. 그 시절 나를 움직인 건 어떤 예감이었어요. 그 예감이 다시 작동하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이노디자인을, 회사를 디자인하는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어요. 샤블리에는 직접 창업했지만, DXL을 통해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디자인과 펀딩을 지원하고 있죠. 지난 1년간 10개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창업자들은 30대 중후반으로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아이리버 세대라고 주장합니다. 고교·대학 시절 아이리버를 통해 김영세를 알게 됐다고 하더군요. N10을 지금도 애용하는 친구도 있어요. 이들 젊은이는 아이리버 제품 디자인을 접하고 그 제품들을 애용하면서 나중에 아이리버 같은 회사를 만드는 꿈을 키웠습니다. 내일도 그런 젊은이들이 투자를 받으려 몇 십 명씩 옵니다. 샤블리에가 친자식이라면 이들 스타트업은 입양자라고 할 수 있죠.”

김영세 키즈들이 태어난 셈이다. 펀딩할 회사는 그가 직접 고른다.

“나의 경험과 능력이 그 회사에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인 잣대죠. 그동안 전기 자전거, 올해 라스베이가스에서 열린 CES에서 인기를 끈 디지털 저울, 곧 생산에 들어가는 전동 보드 등에 디자인과 펀딩을 지원했어요. 매년 10개사씩 지원하고, 앞으로 더 늘리려 합니다. 장차 이렇게 키운 회사를 실리콘 밸리에 진출시키는 꿈을 꿉니다. 이노디자인은 본사가 실리콘밸리에 있어, 실리콘밸리 현장에 미국 진출의 기반을 갖고 있는 회사예요.”

그는 10년 전 아모레 퍼시픽의 라네즈 거울 슬라이딩 팩트를 디자인했다. 세계 최초이자 지금도 유일한, 한 손으로 밀어서 여는 콤팩트다. 뚜껑에 거울이 달려 거울을 보기 위해 뚜껑을 열 필요도 없다. 의뢰를 받은 게 아니라 그가 제안해 탄생한 디자인이다. 매출에 대한 기여는 물론 아모레의 위상을 높인 이 디자인에 대해 그는 빅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제품이 디자이너의 상상에 의해 창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디자이너의 창조 덕에 사용자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평창올림픽 성화대와 성화봉 디자인

“스티브 잡스 전기에 ‘디자이너로 하여금 디자인하게 하고 그 물건을 엔지니어가 만들게 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빅 디자인적 발상이죠. 이런 발상의 가치를 부동의 1위 기업 애플이 성과로 입증했고요. 이 시대 디자인은 모든 상품 개발의 첫 장입니다. 빅 데이터와 만나 빅 데이터 가공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죠. 앞으로 기업인은 빅 디자인 개념으로 회사를 경영해야 합니다.”

김영세 회장은 평창올림픽 성화대와 성화봉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김영세 회장은 평창올림픽 성화대와 성화봉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이노디자인>

김 회장은 평창올림픽의 성화대와 성화봉을 디자인했다. 한국의 멋이 서린 조선백자가 모티브였다. 자신이 디자인한 성화봉을 들고 네 번째 주자로 성화 봉송도 했다.

“가문의 영광이죠. 상업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5년 전 디자인한 국립중앙관 나들길과 더불어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의 성화대를 디자인한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디지털 시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밀레니엄 세대가 디지털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보면 디지털 제국의 이민자입니다. 그런데 이 이민자들이 의사결정권을 손에 쥐고 있죠. 신구 세대가 융합해야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일거리가 늘어야 일자리도 생깁니다.”

그는 지난 6월 ‘김영세의 기업가정신 콘서트’를 열었다. 기업가정신협회가 주최한 한국형 TED. 300여 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이 나라 경제 성장의 실마리는 여전히 기업가가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쏟아 부어 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창조하는 사람이 기업가입니다. 나는 지난 30년 간 디자이너로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을 디자인으로 서포트했어요. 이제 기업가로서 스타트업들을 도우려 합니다.”

이노디자인의 이노는 이노베이션에서 왔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렸을 때 그는 다짐을 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 한국에 디자인이라는 나무를 심으리라.’

디자인 구루로 자리매김한 그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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