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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글로벌 주얼리 리더 꿈꾸는 염민경 DE1993 대표
[인터뷰]글로벌 주얼리 리더 꿈꾸는 염민경 DE1993 대표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8.04.30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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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만들고 싶다"

염민경(56) DE1993 대표.<이일호>

DE1993은 유러피안 부티크 스타일의 주얼리 전문 브랜드다. 염민경(56) 대표가 1993년 직원 다섯 명과 함께 창업한 ‘위캔 앤 크리스티나(Wecan&Christina)’가 효시다. 25년 간 유럽과 미주, 일본 등의 시장을 공략하며 매년 수십억원 대 순이익을 꾸준히 내왔다.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연 매출 1000억원에 해당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 확산과 함께 ‘유통혁명’이 일어나면서 주얼리 시장 환경도 급변했다. 염 대표도 그에 발맞춰 올해 국내 주얼리 시장에 DE1993을 야심차게 선보였다. 최근 론칭한 DE1993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국내·외 주얼리 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는 염 대표를 서울시 강동구 본사에서 만났다.


DE1993이란 브랜드 네임이 특이합니다.

“‘1993’은 제가 ‘위캔 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창립 연도입니다. 어려운 이름보단 심플하고 세련된 이름을 만들고 싶었고, 또 1993년 처음으로 주얼리 사업에 뛰어든 이후 25년 간 쌓아온 역사와 노하우에 의미를 두었어요. 유럽이 주 무대였기때문에 자연스럽게 de{[드]; ~부터}를 사용하여 DE1993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어렸을 적부터 꿈이 ‘위대한 CEO’였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장래희망 적는 곳에 ‘정주영’ ‘이병철’ 이름을 적어서 담임선생님한테 불려간 적도 있어요. 그때 당시엔 ‘사업가’라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었으니까요(웃음). 나중에 사업을 하려면 영어실력이 필수라 생각해 대학교도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엔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오퍼상으로 3년 간 일했어요. 스물여덟에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세일즈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업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상남도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께선 ‘사업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서른한 살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 안에 사업가의 ‘유전자’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주얼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DE1993 디자인 스튜디오.<이일호 기자>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글로벌 세일즈로 실력도 쌓았고, 주얼리 쪽이 잘 될 것이란 비전도 있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제품도 못 팔고 적잖게 어려움을 겪었어요. 주얼리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저희가 패션박람회에 가져간 건강 팔찌나 발찌를 바이어들이 백만 개씩 도매로 주문하면서 처음 물꼬를 텄어요. 영국 출신 디자이너와 함께 ODM(제조업자 생산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1년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고요.

당시에는 주얼리 세일즈도 여타 세일즈와 다를 바 없었는데, 저희는 바이어들이 디자인을 바꿔달라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거든요. 한때는 서울 강동구에서 가장 소득세를 많이 낼 정도로 매출이 많았어요. 강동구청에서 납세자 상 준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못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해외 시장에서 부딪쳐본 경험과 제 감각을 믿었던 게 통했다고 생각해요.”

국내로 선회한 계기도 있을 텐데요.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로 위기를 겪었어요. 수출처 가운데 유럽이 95% 이상인데, 연쇄 폭탄테러로 여행객이 줄어든 영향도 받았고요. 중국에 직원 700~800명 규모의 공장이 있다 보니 유통량이 적은 업체와는 거래를 할 수 없었고, 때문에 유럽의 ‘빅 파이’들과 주로 거래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익보다 지출이 많아지면서 변화의 시점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터넷 발 ‘유통혁명’으로 전통적인 유통시장이 파괴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경쟁자가 많아진 것도 원인이었어요. 천 개 단위로 사가던 바이어가 없어지고 3~4년 전부터는 소량을 사가는 중간 도매상들이 주 거래처가 된 거죠. B2B에서 B2C로 가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이럴 바엔 큰 바이어 뿐만 아니라 중간업자들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브랜딩을 통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거예요.”


식목일이었던 지난 4월 5일, DE1993 주얼리 디자인 스튜디오가 공식 론칭됐다. 주얼리를 감상할 수 있는 1층 커피숍을 중심으로 5층짜리 건물에 라운지와 게스트하우스, 정원 공간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염 대표는 바이어나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건물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멋집니다.

“한양대 건축과 교수이자 공간디자이너인 김경숙·이민수 교수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17년 전 인수했던 건물을 그대로 리모델링해 ‘빛’과 ‘색감’이 공존하는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1층에는 갤러리와 커피숍, 지층에는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습니다. 2층에는 저희 사무실인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고, 3~5층은 바이어들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옥상에 힐링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DE1993의 정체성은 뭘까요.

<이일호>
<이일호>

“지난 4월 5일 ‘DE1993 주얼리 디자인 스튜디오’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보석이 단순한 장식 이상의 가치인 ‘기억’과 ‘잔향’으로 간직되도록 꽃의 생명력과 향기를 담은 아름다운 주얼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DE1993 스튜디오도 그 같은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공간이고요.”

게스트하우스를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20여개국의 해외 바이어가 저희 회사에 자주 방문하다보니 아예 건물 안에 숙소를 만들었어요. 바이어가 한국에 오면 보통 호텔에 묵곤 하는데, 잠깐 있다 돌아가다 보니 한 시간이 아까울 때가 많더라고요. 사무실에서 밤늦게 일하더라도 바로 위층에서 잘 수 있도록 호텔급 시설을 갖춰놨고, 함께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도록 옥상에는 정원도 마련했어요. 오시는 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수 있도록 저도 요리를 배우는 중입니다.”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고민도 이곳에 반영됐다고 들었습니다.

“건물 임대를 통해 수익을 거두는 게 가장 손쉽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DE1993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압구정이나 청담동에도 이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에 만들어져도 ‘스토리텔링’만 제대로 하면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도록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잖아요. 바이어는 이곳에서 일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요. 주변 주민들도 찾아와서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갤러리를 감상하거나 주얼리를 만드는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어요. 저희는 고객에게 복합문화공간을 제공하고, 고객은 저희 브랜드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DE1993 주얼리 제품.<이일호>

DE1993의 신제품은 어떤 게 있나요.

“DE1993 3마이크론(3M) 라인은 국내 주얼리 브랜드는 쉽게 시도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보통 패션 주얼리는 도금이 쉽게 변질되는데 저희는 유럽 황실에서 사용하는 ‘쁠라께오(Plaque Or)’ 공법을 적용했어요. 제품의 모든 표면에 3마이크론 두께의 18K 금이 입혀집니다. 이 경우 기존 화학 도금에 비해 가공비용이 압도적으로 올라가지만 변질 위험이 줄고 중금속으로 인한 알레르기도 사라집니다. 수영을 하거나 사우나에 들어가도 최소 2년 이상 변색이 없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명품 주얼리 브랜드 가운데도 패션 주얼리를 수 백 만원씩 받고 파는 곳이 많아요. 저희는 그것보다 더 나은 제품을 최대 5분의 1 가격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디자인이 뛰어나고 오래 쓸 수 있는 주얼리를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하면 충분히 국내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아끼는 원칙주의자’. 염민경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떠오른 이미지였다. 사업과 관련한 모든 일에 대해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결국 그 방향은 회사 직원들과 고객, 주변 사람들을 위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사 문화는 어떤 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 회사에 취직해 일하면서 ‘내가 사장이면 이러지 말아야지’ 했던 것들이 역지사지 형태로 반영됐어요. 사업 시작 전에 잠깐 소규모 주얼리 회사에서 일했는데, 토·일요일도 없이 철야로 일하다보니 개인 생활이 없었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것까진 참으며 일했는데, 어느 날 몸살로 하루 병가를 냈더니 월급날 하루치가 빠졌더라고요. 실망스러운 마음에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거였죠.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철칙이 ‘빨간 날은 무조건 쉰다’ ‘추가근무 수당도 그대로 준다’였고, 그 정책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어요.

직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나눠주자는 것이 경영자로서의 제 모토입니다. 모든 직원들에게 매출을 비롯해 회사 내 모든 정보를 클리어하게 공개하고 있어요. 급여도 계약상 기본급과 함께 매출 증가에 따라 일정 퍼센트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고요. 직원들도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일종의 동기부여인 셈이죠.”

‘사람을 아끼는 원칙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25년 간 사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았어요. 여러모로 노력하면서 살아왔고, 또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제가 받은 것을 주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게 제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오히려 원칙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규칙을 따르면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하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함께 고생한 동료 직원들과 도와주신 분들에게 돌려드려야 하거든요.”

끝으로 DE1993의 비전을 말해주십시오.

염민경 대표는 "DE199를 샤넬이나 까르띠에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이일호>

“처음 사업은 주얼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변화의 기로에 서있어요. 저희도 이에 순응해 DE1993 스튜디오라는 복합 공간을 만들고 제품 다각화를 통해 편집샵 같은 형태를 개발하고 있어요. 그간 인생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주변의 많은 분이 제가 하는 일을 도와주고 계세요. 덕분에 새로운 일도 잘 해나가는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에 DE1993 스튜디오를 만들어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어요. 과거엔 한국 브랜드라는 게 마이너스 요인이었다면, 세계적으로 케이팝(K-POP) 등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은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잖아요. 단순히 커피 한 잔 팔고 주얼리 파는 차원을 떠나 DE1993을 통해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싶어요. 패션 브랜드 중 샤넬이나 까르띠에 같이 한국하면 DE1993이 떠오르는,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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