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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에게 묻는다, 넌 정녕 누구냐
암호화폐에게 묻는다, 넌 정녕 누구냐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8.02.01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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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서 벌어지는 ‘머니게임’…각국 규제 강화로 생존 불투명
<픽사베이>

[인사이트코리아=이일호 기자] 오늘날 암호화폐(가상화폐·Cryptocurrency)를 놓고 벌어지는 게임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연상시킨다. 정부는 암호화폐 실명제를 통해 거품을 가라앉히는 한편 불법자금의 흐름을 막으려 한다. 업계와 투자자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온갖 각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사례에서 나타났듯, 이미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거나 P2P(개인대개인·Peer to Peer) 방식 등을 통해 단일 국가의 규제 정도는 손쉽게 피할 수 있다.

암호화폐 ‘진격’에 위기감을 느끼는 나라들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는 세계 여러 지도자들이 암호화폐 규제를 놓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들은 미래 대안화폐로서의 암호화폐 가능성보단 가치 변동성과 범죄 악용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국제 사회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거품이 곧 꺼질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암호화폐는 과연 규제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암호화폐 대(對) 정부, 이 대결의 승자가 과연 누가 될지 분석했다.


지난 1월 6일 한 지상파 방송에 공개된 암호화폐 투자자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다. 최초 8만원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한 23세 청년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280억원을 거머쥐었다. 무려 ‘3500만 퍼센트’라는 비상식적인 수익률이다. 많은 이들이 이 방송을 보고 앞다퉈 암호화폐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 방송의 백미는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동안 시세 차익으로 30억원을 벌어들이는 장면이었다. 화면 속에서 입이 딱 벌어진 방송 프로듀서의 모습처럼, 시청자들 또한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망가진 암호화폐 시장, 반발하는 이해당사자들

하지만 방송 후 한 달 새 암호화폐 시장은 푹 가라앉았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월 30일까지 신규 가상계좌 발급과 추가 입금을 틀어막았고, 이어 가상계좌 발급을 내주는 시중은행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일제 점검에 나섰다. 더불어 기존 계좌를 포함한 전 가상계좌에 실명등록을 하도록 의무화 했다. 거래소 폐쇄 카드를 제외한 사실상 최고의 제재다. 한때 2800만원까지 올랐던 기축통화 격 암호화폐 비트코인(Bitcoin) 시세는 지난달 6일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달 30일 1300만원대로 반 토막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암호화폐 규제 반대 청원이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암호화폐 시세가 폭락하자 업계와 투자자들의 반발 심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수된 암호화폐 규제 반대 청원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이 청원에 대해 2달 내 답변할 의무가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업계 등 이해당사자들도 암호화폐 규제가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데이터 분산 장부)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란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태는 여러 의문점을 낳는다.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인지, 암호화폐가 거래 매개체로서 실생활에 이용될 수 있는지, 암호화폐 거래 규제가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해야만 정부의 규제와 암호화폐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끝낼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 규제하는 이유는?

암호화폐 거래 규제는 기본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자금 유동성이 몰리면서 시장이 커지고, 이에 혹하는 투자자들로부터 새로운 자금이 몰려오는 게 바로 거품 현상이다. 거품의 종결과 시세 폭락은 유동성에 한계가 오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거품은 투기이며 과거 역사적인 투기 거품과 유사하게, 혹은 더 과도하게 나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2015년 1월을 기점으로 3년간 비트코인의 몸값은 300달러에서 최고 1만7700달러까지 55배나 급등했다. 이는 투기 역사상 가장 심한 거품으로 알려진 17세기 ‘튤립광풍’의 3년간 오른 50배를 뛰어넘는다. 암호화폐 투기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자산 버블보다 더 길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말 미국·한국·독일을 중심으로 벌어진 닷컴버블과 비교해보면 암호화폐 거품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책을 펼치면서 IT기업에 자금 유동성이 몰려들었다. 당시 ‘바이코리아 펀드’ ‘박현주 펀드’ 등을 통해 수혜를 본 기업이 수백여 곳에 달했고, 일개 중소기업이 현대자동차 시가총액을 뛰어넘거나 주당순이익(PER) 9999배를 찍기도 했다.

닷컴버블의 후유증은 컸다.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단타 매매)과 주가조작으로 한껏 부풀어 오른 주식시장이 2년 새 거품이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코스닥은 280포인트, 코스피는 1000포인트를 넘기기도 했지만 이후 각각 50포인트, 500포인트까지 내려앉았다. 뒤늦게 닷컴주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큰 손실을 본 투자자가 속출했음은 물론이다.

2017년 12월 2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 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뉴시스>

지난해 12월 21일 한국은행 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 이주열 총재가 암호화폐를 대고 ‘비이성적 과열’이란 표현을 썼다. 이 말은 1996년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 의장이 당시 닷컴버블에 경고성으로 던진 멘트다. 정부 또한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하지 않으면 닷컴버블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닷컴버블 과정에서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IT기업들이 살아남았다. 거품이 가라앉은 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을 가로지르는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다. 블록체인 기술 또한 향후 인터넷만큼 일상 영역에 보편화될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 IT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기술 발전은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암호화폐, 미래 화폐 역할 가능한가?

하지만 암호화폐가 미래 화폐로 도약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선결 돼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가치 변동이 심하다는 점이다. 화폐가 되려면 교환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장기간 가치가 안정적으로 보존돼야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20~30%씩 시세가 움직이는 암호화폐는 가치 보존에 부적합하다.

암호화폐는 최근 몇 년 새 ‘하이퍼 디플레이션(Hyper Deplation), 즉 화폐 가치가 말도 안 되게 치솟는 현상이 발생됐다. 경제사적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ration)’ 현상은 종종 있어왔지만 그 반대 사례는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하다. 실제로 2010년 잭슨빌의 한 비트코인 보유자는 2만원짜리 피자 2판을 사는 데 4만 비트코인을 냈지만, 지금은 1비트코인으로 2만원짜리 피자 700판을 살 수 있다. 당시 4만 비트코인을 지불했던 사람이 오늘날 비트코인 시세를 알았더라면 같은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해외 사례를 들며 암호화폐가 거래매개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일본, 독일 등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통한 상품 구매가 보편화됐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정부 의지에 따라 암호화폐를 통한 거래가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품을 암호화폐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거래 수단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미국의 경제학자 티모시 테일러(Timothy Taylor)는 션 포일(Sean Foley), 조나단 칼슨(Jonathan Karlsen), 탈리스 풋닌스(Talis J. Putnin)의 ‘섹스, 마약, 그리고 비트코인(Sex, Drugs, and Bitcoin)’ 논문을 인용해
미국의 경제학자 티모시 테일러(Timothy Taylor)는  “암호화폐가 암시장 운영 방식을 바꿀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티모시 테일러 교수 블로그>

익명성으로 인해 불법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전체 비트코인 사용자 25%와 현존하는 비트코인의 44%가 불법 행위와 연관돼 있다. 이를 환산하면 2400만명의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이 3600만 번의 거래를 통해 총 720억 달러(약 80조원) 상당의 불법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티모시 테일러(Timothy Taylor)는 션 포일(Sean Foley), 조나단 칼슨(Jonathan Karlsen), 탈리스 풋닌스(Talis J. Putnins)의 ‘섹스, 마약, 그리고 비트코인(Sex, Drugs, and Bitcoin)’ 논문을 인용해 이 같이 전했다. 이 논문은 지난 1월 17일 세계적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SSRN에 등재됐다.

티모시 테일러는 “이 정도의 금액은 암호화폐가 암시장 운영 방식을 바꿀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한다”며 “비트코인보다 더 불투명하고 사용자 활동을 은폐하기 좋은 대시(Dash)나 모네로(Monero), 제트캐시(ZCash) 같은 알트코인이 생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의 강력한 보안성과는 별개로 벌어지는 거래소 해킹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인 ‘코인체크(Coincheck)’는 지난 1월 26일 해킹 사고로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 ‘NEM’ 523만 개, 한화 약 560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탈취 당했다. 피해자만 26만 명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사고로,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된 서버의 부실한 보안이 화를 부른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이미 네 차례의 해킹을 통해 수십~수백억원이 갈취당한 바 있고, 향후 코인체크와 비슷한 규모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암호화폐 가격은 왜 폭등한 걸까

암호화폐에 이토록 문제가 많은데 왜 투자자들은 미래 화폐로서 열광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화폐(Currency)라는 용어로 인해 생기는 오해로부터 기인한다. 즉, 실제로 화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진 용어적 문제로 인해 대중에게 화폐로 인지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를 ‘화폐’로 부르지 말고 ‘자산(Asset)’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초 암호화폐를 ‘가상화폐’로 통칭하다가 최근 암호화폐나 암호자산, 디지털 자산, 가상통화 등으로 용어가 혼재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암호화폐가 그것을 채굴(암호화폐 생산 행위·Mining)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한 ‘보상(Reward)’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채굴과정을 통해 암호화폐를 얻고, 그것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민간에 거래됨으로써 사회적 가치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한 리서치 기관에 따르면 현재 1비트코인을 생산하는데 각종 제반비용을 모두 합쳐 총 60달러(약 7만원)의 비용이 든다. 비트코인 시스템 상 주기적으로 채굴 속도가 4분의 1씩 느려짐에 따라 향후 비용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데 현재 1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은 1300만원대로 생산비용보다 20배가량 높다. 암호화폐를 채굴한 것에 대한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수익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암호화폐가 거품이라는 것에 대한 방증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돈을 착취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지막은 암호화폐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과 연관돼 있다. 블록체인은 크게 공개형(퍼블릭 블록체인)과 폐쇄형(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나뉘는데, 보상체계를 제거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되지만 그 크기는 인터넷과 비교해 규모가 작은 ‘인트라넷’에 불과하다. 때문에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프라이빗이 아닌 퍼블릭 블록체인을 장려해야하고, 이를 위해선 암호화폐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뉴시스><br>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뉴시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지난 1월 18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가상화폐 열풍, 정부대책의 한계와 올바른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암호화폐 규제와 블록체인 촉진은 양립할 수 없다. 블록체인이 무작위로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컴퓨터 리소스가 제공되고, 그로 인해 장부가 공유되는 ‘자발적 분산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파생상품’일 뿐 그 가치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NYU)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비트코인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오픈 소스이기 때문에 공개된 코드를 내려 받아 누구나 쓸 수 있다”며 “이더리움 같은 일부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을 수행하도록 고안됐지만,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가치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값은 과연 얼마까지 오르나

다시 암호화폐 거품 문제로 돌아가 보자. 암호화폐 장기 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암호화폐 시세는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미래 실물화폐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역할과 유사한 ‘디지털 금’이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또한 최근 시카고선물거래소와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비트코인이 각각 상장된 것처럼, 향후 기관투자자가 활발히 유입될 경우 시세가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비트코인 시세가 2021년에는 1억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디지털 자산인 암호화폐에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는 ’장밋빛 전망‘만 있을 뿐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빠져있다는 점에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조치 이후 규제 바깥의 개인 간 암호화폐 거래가 부쩍 늘었고, ‘채굴업자’(암호화폐 채굴 전문업자)들은 자국에서 캐는 암호화폐를 한국, 일본 등의 거래소로 옮긴 뒤 ‘환치기’를 통해 자국으로 유입시키고 있다.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우회 매매 플랫폼이 존재한다. 거래소가 폐쇄될 경우 해외 거래소로 자금을 옮기거나 P2P거래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결제는 페이코(PAYCO)와 같은 간편결제 플랫폼으도 가능하다. 개별 국가의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만으로는 거래를 완전히 막기 어렵다.

암호화폐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선 국제 사회의 공조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1월 23~27일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린 WEF에선 전 세계 기업·금융·정치 분야 지도자 3000여명이 가상화폐 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암호화폐 규제에 대해 글로벌 리더들이 공감대를 갖고 논의한 것은 이번 WEF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행동경제학으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비트코인이 흥미로운 실험인 것은 맞지만,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영속적으로 사용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암호화폐 논란을 테러리즘에 비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로 자금 세탁을 조장하는 등의 행위는 일종의 ‘파이낸스 테러리즘’과 같기 때문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수장들도 암호화폐 규제 목소리를 높였다. 메이 총리는 “암호화폐가 점차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만큼 범죄 가능성도 늘어나고 있다”며 “각국 정부가 이런 위험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가 암호화폐의 흐름을 감시해야 한다”며 국제 사회의 공조를 제안했다.

국가 주도 암호화폐가 다가온다

암호화폐가 가진 탈 중앙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화폐 불균형이다. 미국 코넬 대학 가상화폐 연구그룹이 2년간 조사한 결과를 담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4대 비트코인 채굴자가 네트워크 전체 채굴 능력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이더리움(Etherium)은 3대 비트코인 채굴자가 61%를 과점 중이다. 리플(Ripple)의 경우 기업이 코인 배분을 통제하고 50% 이상을 갖고 있다. 비트코인 노드의 56%, 이더리움 노드의 28%가 채굴용 컴퓨터를 데이터센터에 두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들 암호화폐가 장차 실물화폐를 대체하더라도 부의 편중현상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간 암호화폐가 아닌 국가 주도형 암호화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만드는 움직임도 점차 커지고 있다. 스웨덴을 필두로 중국, 러시아, 네덜란드, 캐나다, 핀란드, 이스라엘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 화폐와 호환되는 암호화폐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국가 암호화폐 발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암호화폐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것은 곧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와 ‘1 대 1’로 교환해 기존 금융시스템 테두리에 넣겠다는 의미와 같다. 이 경우 민간 암호화폐의 최초 취지인 익명성과 태환성(금·은과 직접 교환 가능), 탈중앙화는 포기하되 블록체인의 보안과 다양한 기술은 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화폐의 종말>을 쓴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flickr/Richter Frank-Jurgen>

천재 경제학제로 알려진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화폐의 종말>(2016)을 통해 현금이 점차 사라져 결과적으로는 정부 발행 버전의 전자화폐로 넘어갈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로고프에 따르면 현재 암호화폐 기술은 잠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실제 사용은 어렵고, 이후 민간에서 뛰어난 기술의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면 정부가 필요에 따라 수용하거나 규제하면서 정부 암호화폐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도 “암호화폐 시장의 급성장이 금융시스템 안정을 해칠 위험이 있는 만큼 각국 중앙은행이 암호화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직접 발행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즉 암호화폐의 익명성과 안정성은 부정적이지만, 기술혁신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만큼 국가가 통제 가능하도록 직접 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운명, 개발자들 손에 달려있어

<픽사베이>

암호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민간 암호화폐가 거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현실적인 제약들을 이겨낼 것이라 예상하기 어려운 것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특히 공신력 있는 국가 암호화폐가 도입된다면 종국에는 민간 암호화폐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이 자명해 보인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업계가 여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래 사회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암호화폐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하긴 힘들어 보인다. 머지않아 단 2~3종의 암호화폐만 살아남아 통용되거나 국가 암호화폐에 흡수될 것이란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위해 암호화폐 개발자들이 ‘암호화폐=화폐’라는 관념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은행권에서 리플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빠른 송금 기술을 개발하고, 미국 IBM사가 블록체인과 사물인터넷(IoT)를 응용해 물류시스템을 제안한 것처럼 말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첨단 기술을 통해 4차 산업 혁명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IT업계는 암호화폐 열풍을 틈타 무분별한 ICO(코인공개·Initical Coin Offering)를 벌이며 일반인들에게 한탕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이들이 스스로 계도와 자정에 나서지 않는 한 암호화폐 거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앞으로 계속 힘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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