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으로 ‘21세기 철강왕’ 오른 락시미 미탈
기업사냥으로 ‘21세기 철강왕’ 오른 락시미 미탈
  • 오화석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승인 2017.09.0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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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세계 최대 철강회사 일군 락시미 미탈 회장
▲ 락시미 미탈 회장.<오화석>

오늘날 세계 최대 철강 왕은 누구일까. ‘철강 왕’ 하면 우리는 미국의 앤드류 카네기를 떠올리지만 세계 철강 지배력에서 카네기를 훨씬 능가하는 ‘21세기 철강 왕’이 있다. 인도인 락시미 미탈로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스틸 회장이다. 

이 회사의 연간 조강 생산능력은 2017년 현재 1억1300만 톤으로 2위인 일본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의 4900만 톤보다 2배 이상 많다. 한 때 세계 최대 철강기업이었던 포스코(4143만 톤)인도의 2위 갑부다. 한때 그는 세계 갑부순위 3~4위로 빌 게이츠, 워런 버핏과 맘먹을도 상대가 안 된다. 특히 카네기 철강회사를 물려받은 미국의 유에스철강(1973만톤)보다 5배 넘게 앞선다. 세계 철강업계에 감히 경쟁자가 없는 매머드 철강기업이다.

올해 66세인 락시미 미탈은 맨손으로 시작해 당대에 이처럼 거대한 기업을 일궜다. 미국 경제잡지인 <포브스>에 따르면 2017년 3월 현재 그의 재산은 164억 달러(약 19조원)로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세계 철강업 부진으로 아르셀로미탈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그의 재산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적자를 거듭하던 그의 기업 실적이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아서면서 세계적 갑부 대열에 다시 합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락시미 미탈은 1950년 인도의 대표적인 상인계급 마르와리(Marwari)의 고향인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 사둘푸르에서 태어났다. 사둘푸르는 수도 뉴델리에서 약 300km 떨어져 있는 자그만 시골 마을이다. 그는 다섯 아이 중 맏이였다. 

어릴 적 가시덤불 숲에서 빈궁한 생활 

어릴 적 그는 매우 빈궁한 생활을 했다. 그가 거주한 곳은 타르사막의 가시덤불 숲에 지어진 작은 콘크리트 집이었다. 이 집에서 20여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함께 살았다. 그는 장판이 없는 맨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하고, 밧줄로 엮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가난한 동네였던 그의 고향은 그가 떠날 때까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라자스탄 주에서 보낸 후 미탈 가족은 당시 마르와리 상인들이 많이 몰리던 인도의 동부 캘커타(현 콜카타) 지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이주한다. 남한의 33배나 되는 엄청난 땅덩어리를 가진 인도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 대장정이었다. 그때 미탈의 나이 6살이었다. 

그는 캘커타에 이사해서도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다. 그의 집은 전차길 바로 옆 낡은 2층 아파트로 창문을 열면 얽히고설킨 전차 전깃줄이 시야를 가렸다. 새벽마다 시끄러운 전동차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그는 집에서 4킬로미터나 떨어진 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다녔다. 

아버지 모한 랄 미탈은 캘커타로 이사해 한동안 영국계 철강회사에 다녔다. 그 후 철강 사업에 익숙해지자 마르와리 출신들이 늘 그렇듯 자신의 철강 사업을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어린 미탈은 아버지 회사로 달려가 우편물 처리 등 잔심부름을 하며 일손을 도왔다. 

뜨거운 용광로와 빨갛게 달궈진 철강 봉,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고무벨트 등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강회사에서 미탈은 철강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이 같은 경험은 어린 미탈에게 장차 철강 왕의 꿈을 키우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6세에 인도네시아로 진출해 사업 시작

미탈은 1976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인도네시아로 진출해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인도네시아 진출은 미탈이 장차 세계 철강 왕이 되기 위한 시금석 역할을 했다. 당시 고국인 인도에서는 여러 가지 규제가 심해 사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탈은 인도네시아에서 ‘이스팟 인도’라는 이름의 제철회사를 세웠다. ‘이스팟’은 산스크리트어로 ‘철강’을 뜻한다. 인도인이 해외에 설립한 최초의 철강회사였다. 그는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스팟 인도’ 운영을 통해 그는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장차 세계적인 경영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탈이 철강 사업을 시작한 첫 해 연간 생산량은 3만 톤이었다. 14년 후에는 33만 톤으로 11배가 증가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세계 철강왕이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옹색했다. 이 정도의 속도로는 일생을 바쳐도 세계 철강왕의 꿈을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무언가 다른 게임 방식이 필요했다. 

해답은 글로벌 진출이었다. 해외에 나가 다른 철강회사를 인수해 몸집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해외 철강회사 인수에 필사적으로 나선다. 미탈은 경영난에 빠진 해외 국영기업을 싸게 사들여 이를 빠른 시간 내에 우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을 썼다. 1989년 중미의 작은 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제철소 대리경영은 그 첫 시도였다. 

그는 한 달에 10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던 트리니다드&토바고 국영 철강회사를 맡아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흑자 회사로 바꿔놓았다. 매출도 2배로 늘렸다. 이 회사는 미국과 독일의 유명 컨설턴트와 전문가들이 회생 길이 없다며 포기한 기업이었다. 

불량기업 인수해 우량기업으로 탈바꿈

미탈은 당초 트리니다드&토바고 정부와의 약속대로 1994년 이 회사를 인수했다. 장차 ‘세계 M&A의 제왕’으로 불릴 미탈의 첫 기업 인수합병이었다. 이후 그는 카자흐스탄·멕시코 등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냈다. 이어 캐나다·독일·미국·아일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제철업체를 계속 사들여 몸집을 급속도로 불려나갔다. 10년간 그가 인수한 기업만 30여 개에 달했다. 

미탈의 경영 전략 특징은 불량기업을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후에도 이 회사들을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새 회사를 계속 소유해 덩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급성장했다. 그 결과 그의 회사는 1995년 조강능력 총 560만 톤에서 9년 후인 2004년에는 4600만 톤의 조강 능력을 갖춘 세계 제1의 철강회사로 급부상했다. 

그러다 2006년 그가 소유한 세계 1위 미탈스틸이 2위 아르셀로스틸을 인수합병 해 역사상 최대의 공룡 철강기업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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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키워드
-핵심 전략은 세계화와 M&A

락시미 미탈 회장이 ‘세계 최대 철강 왕’이 되기 위해 취한 가장 중요한 경영전략은 세계화와 인수합병(M&A)이다. 그는 세계화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부터 세계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남보다 앞서 실행에 옮겼다. 

당시만 해도 철강업계에서 기업 M&A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때였다. 그가 1990년대 말 전 세계를 돌며 ‘세계 철강업계는 통합해야 살 수 있다’고 역설했지만 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미탈 회장은 아무도 넘보지 않는 블루오션에서 마음껏 기업사냥에 나서 마침내 ‘21세기 철강 왕’에 등극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