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값도 정부가 정하나
치킨값도 정부가 정하나
  • 윤길주 발행인
  • 승인 2017.04.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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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값 인상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업계 1위인 BBQ가 치킨값을 올리려 하자 정부가 찍어 누른 겁니다. BBQ는 겁박에 못 이겨 서둘러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군사독재 시대에나 있을 법한 관치경제, 관치물가의 망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업이 고심 끝에 제품 값을 올리겠다는데 정부가 팔을 비트는 것은 미개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BBQ는 치킨 가격을 평균 9~10% 인상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8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은데다 임대료·인건비·배달대행료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해 가맹점 수익보전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생뚱맞게 농림축산식품부가 등장합니다. 농식품부는 “유통질서 문란행위에 대해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를 의뢰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하지만 부처 협의도 없이 농식품부가 공갈포를 날렸다는 게 금새 드러났습니다. 국세청·공정위가 “누구 맘대로”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겁니다.

세무조사는 탈루나 탈세 증거가 명백할 때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정위 조사도 담합이나 불공정행위가 포착됐을 때 이뤄집니다. 가격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경제 사정기관들이 칼을 빼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농식품부가 세무조사를 들먹인 것은 ‘뭐 한 놈이 성질내는’ 꼴입니다.

농식품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작년 11월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가금류의 누적 살처분 규모가 3700만 마리에 달합니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초동대응 실패가 AI 확산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충북 음성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된 후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첫 관계장관 회의가 열리기까지 27일이 걸렸습니다. 반면 일본은 총리관저에 AI 정보연락실이 설치되고 살처분까지 24시간 만에 완료됐습니다. 그 차이가 한국 살처분 3700만 마리 대 일본 100만 마리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터에 농식품부는 애꿎은 치킨 업체만 잡도리했습니다. 치킨값이 오르면 AI 대응 실패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쏟아질 것을 우려한 옹졸한 행태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중학생도 아는 상식입니다. 치킨도 마찬가지입니다. BBQ가 치킨값을 올려도 소비자가 사먹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하고 많은 치킨 가운데 굳이(품질이 비슷하다면) 비싼 걸 사먹는 바보는 없을 겁니다.

BBQ가 값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도 따라 올릴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값을 올리면 외면당할 게 빤한데 이를 감내할 업체가 몇이나 될까요.

중요한 것은 관치물가는 권위주의 시절에나 통하는 구시대 유물이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물가에 개입하면 시장 자율기능이 왜곡됩니다. 이로 인해 기업이 망하고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제품 값을 올리려다 몰매 맞는 모습을 보고 보따리를 싸서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치킨값 소동은 관료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관치의 추억’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치킨값 조차 정부가 정하겠다는 나라. 완전한 시장경제로 가기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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