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바로 그때야”
“지금이 바로 그때야”
  • 김문현 전문위원
  • 승인 2016.11.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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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이 즐겨 쓰던 한자어 중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말이 있다. ‘양자강은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 듯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뒤에 오는 사람이 앞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므로, 후대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고 초석이 되고자 하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 미국 빅3와 손잡음으로써 떼돈을 벌 수도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정주영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업계 빅5의 대열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은 1977년 1월, 미군 사령부에 버스를 기증하는 정주영.

미국 대사 리처드 슈나이더의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신차 사업을 강행한 정주영, 후대를 위해 자동차산업의 초석을 놓겠다는 정주영의 일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동차 5대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내 후대는 앞으로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내 간절한 희망이다”라며 후대를 위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었다. 아시아에서 2번째, 세계에서 16번째로 신차를 생산한 현대자동차의 감춰진 이야기를 들춰내 본다.

내 후대는 나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1967년 12월, 정주영은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코티나’를 조립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포드사와 50:50의 비율로 합작회사를 만들지만 현대를 하청 기지화하려는 포드사의 속셈을 간파하고 합작을 포기해 버린다. 
포드사와 결별한 후 정주영은 독자적인 개발로 100%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 낼 방안을 세우라고 지시하지만 자본도 부족하고 기술수준도 낙후되어 있던 때라 아우 정세영을 비롯하여 일선 중역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은 “지금까지 때를 기다렸잖아? 지금이 바로 그때야”라고 외쳤다. 정주영은 한번 결단이 서면 즉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임직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정주영의 꿈은 “해보기나 했어?” 정신을 근간으로 실현된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중시하는 현장 경영 정신으로 정주영은 오늘날의 현대를 일궈낼 수 있었다. 사진은 1985년 현대자동차 전시장에서 아우 정세영과 함께 신차 제막식을 하는 모습.

때마침 영국의 BLMC 부사장인 조지 턴블을 영입하여 엔진, 엑셀레이터,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 제작 기술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1974년 7월부터 1억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연산 5만6천대 규모의 국산 종합자동차 공장 건설에 착수한다. 그리고 1976년 1월 정주영은 국산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를 탄생시킨다.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신차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자동차는 혈액이다

그러나 신차가 곧 세계인이 사랑받는 차로 성장되는 것은 아니다. 각국의 무역장벽을 넘어서고 환경규제와 안전도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인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서 신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현대가 확보했다는 것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특히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인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때마침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이 ‘죽의 장막’을 걷어 올림으로써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가 매력적인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던 터였다. 이를 놓칠세라 지역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일본은 발 빠르게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나선다. 이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국의 빅3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한국의 현대자동차를 낙점한다. 때마침 신차를 출시한 현대를 교두보로 삼아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7년 봄 리처드 슈나이더 주한 미 대사가 정주영을 조선호텔로 부른다. 일국의 대사가 일개 기업인을 만나자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일이기에 정주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슈나이더 대사는 단도직입적으로 현대가 신차사업에서 손을 떼고 미국의 빅3와 손 잡고 사업을 한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현대자동차를 빅3의 하청기지화 하겠다는 복안인 것이었다. 백악관을 등에 업고 하는 사업이니 대단히 매력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후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다

그러나 정주영은 재고의 여지없이 단호하게 슈나이더 대사의 제의를 거절한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우리 몸의 혈관이 도로라면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이 자동차다.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려면 건강한 혈액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져야지, 신장투석을 하듯 외부에서 공급받는다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설령 내가 자동차 사업을 실패한다 하더라도 후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에 슈나이더 대사는 할 말을 잃고 “앞으로 현대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조선호텔을 떠난다. 

▲ ‘자동차는 바퀴 달린 태극기’라는 정주영의 고결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성장한 현대차는 전세계 곳곳에서 한국민의 자부심을 드높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1987년 3월, 캐나다 브로몽(Bromont) 현대자동차 조립공장 건설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아마도 이때 정주영은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백악관이 후원하고 빅3가 떠받쳐 주는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를 마다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날 정주영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현대자동차는 결단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은 “자동차는 그 나라 산업 기술의 척도이며 자동차를 완벽하게 생산하는 나라는 항공기든 뭐든 생산이 가능한 나라”라고 굳게 믿었으며, “자동차 생산이 100% 국산화되면 그에 따라 우리나라 기계 공업이 발전한다”는 생각에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동차에 막대한 투자와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철강, 전자, 화학 등 산업기술의 총합이 자동차산업이라는 신념, 아무리 자동차산업이 힘들다 할지라도 후대를 위한 디딤돌이라도 놓겠다는 강한 의지, 그리고 ‘자동차는 바퀴 달린 태극기’라는 고결한 애국심이 없었다면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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