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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6 18:52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유대계 헤지펀드 정체성 논란
유대계 헤지펀드 정체성 논란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5.07.0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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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강도’ ‘지독한 금융테러리스트’…국경 넘나들며 곳곳서 ‘惡名’ 높아

유대자본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유대인들이 꽤 오래 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근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진입하면서 유대자본의 시장 잠식은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인구 약 1500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민족은 독특한 방식으로 그들의 저변을 키웠다. 상거래에 일가견이 있던 자신들의 재능을 극대화해 세계 경제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금융업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유대계 출신 금융투자가로서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소로스가 헤지펀드 업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인데, 그는 자신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 “세상의 악의 대부분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해악이 사실은 악의 없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많은 해악을 불러왔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조지 소로스와 영국의 ‘검은 수요일’

이런 소로스를 논할 때 영국, 태국, 한국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3개 국가를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지만 상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례는 영국과 한국이다. 소로스와 영국은 파운드화를 매개로 한판 대결(?)을 펼쳤지만 소로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1992년 9월 16일은 영국 역사에 있어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돼 있다. ‘검은 수요일’ 사건 때문이다. 독일의 통일과 금리인상에서 촉발된 불행의 씨앗은 당시 독일과 유럽 패권을 다투고 있던 영국에 전해졌다. 영국은 불황을 맞아 파운드화 폭락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 
영국 보수당 출신 존 메이저 총리는 “파운드화 평가절하는 영국 장래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파운드화 방어를 호언했다. 하지만 조지 소로스는 영국 경제를 초토화 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말라리아에 걸린 영국 파운드화는 곧 대폭락 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선전포고를 한 소로스는 9월 15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퀀텀펀드(Quantum Fund)와 동원 가능한 모든 자금을 투입해 파운드화 매도 주문을 냈다. 그가 개인적으로 동원한 자금만 100억 달러에 달하며 다른 헤지펀드들이 가세한 후 시장에는 1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화 팔자 주문이 쏟아졌다. 영란은행은 필사적으로 파운드 하락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를 총동원해 파운드화를 사들이고 하루에 두 차례나 단기금리를 인상시켰다. 하지만 1조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투기자본의 공세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이었던 영국은 발칵 뒤집혔다.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경제는 공황상태에 빠져들었고, 야당과 국민들은 영국의 유럽통화제도(ERM) 탈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ERM 가입을 추진했던 메이저 총리는 굴욕적인 ERM 탈퇴를 선언했다.
약 한달 간에 걸친 공세로 소로스는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손에 넣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자신에게 투자했던 사람들에게 최소 몇 배의 금액을 되돌려줬으며, 그들이 나눠가진 수익은 다름 아닌 영란은행에 쌓여 있던 영국의 국부(國富)였다.

‘구세주’ vs ‘먹튀 사냥꾼’

1999년 2월 한국이 외환위기의 칼바람을 맞고 있을 때, 소로스는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소로스펀드를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소로스는 곧이어 서울증권을 인수하는데 유상증자와 구주주 실권주 인수에 175억 원, 해외전환사채(CB) 인수에 500억 원 가량을 투입했다. 소로스펀드가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는데 사용된 금액은 약 675억 원이었다. 

소로스에 인수될 당시 서울증권은 자본금 951억 원, 자기자본 2천271억 원, 약정순위 13위의 중소형 증권사였는데, 여기에 소로스가 지분참여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이 요동을 쳤다. 소로스가 서울증권의 대주주였던 7년 동안 그들은 매각 차익 339억 원, 배당금 약 300억 원, 중간 지분매각 차익 약 160억 원 등 총 820억 원의 차익을 간단히 챙겼다. 수익률로 따지면 168% 수준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달러 찾기가 어려웠다는 약점을 정확하게 파고 들어온 소로스가 냉정하고, 철저한 단기 이익 추구의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줄 때 국내 여론은 ‘먹튀’라고 손가락질만 할 수 있었을 뿐 자본주의의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스를 수 없었다. 소로스가 대부분의 지분을 처분하고 철수한 서울증권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등 각종 어려움에 맞닥뜨렸고, 2006년 7월 유진그룹 계열사인 유진기업이 서울증권을 인수하게 됐다.

KT&G 공격한 ‘칼 아이칸’

소로스가 유대계 헤지펀드의 ‘대부’라면 칼 아이칸(Carl Icahn)은 무자비한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하다. 1936년생인 칼 아이칸은 미국 뉴욕의 허름한 지역인 퀸스 펄록카 웨이에서 태어났다. 유대인가정에서 자란 전형적인 유대인인 그는 1985년 미국 굴지의 항공사였던 TWA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를 성공시키면서 월가의 스타로 떠오른다. 스스로 행동투자자라고 자처했던 그는 조금이라도 틈새를 보이는 기업이 있으면즉시 매처럼 달려들어 행동에 옮겼다. 

칼 아이칸은 지난 2006년 국내에서도 활동했는데,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의 지분 6.59%를 매입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그의 특징은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해 임원진을 바꾸거나 업종을 바꾸는 공격형 스타일이다. KT&G를 공격했을 당시에도 칼 아이칸은 이사회에서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했다. 2대주주였던 아이칸은 주주배당 확대, 상장, 부동산 매각 등 단기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압박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경영을 통해 잘 되면 경영권을 취하고 잘못돼도 막대한 부를 손에 넣는 비인간적인 방식이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칼 아이칸 측이 M&A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주가를 의도적으로 띄웠다는데 있다. 정식으로 공개매수를 선언하지 않았던 그는 의도적으로 주가를 조작했음에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법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여기에 주식 매각으로 벌어들인 약 1천500억 원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았다. 아이칸은 KT&G 주식 700만 주를 매각하면서 0.15%의 거래세와 0.15%의 농특세 등 매각대금의 0.3%인 12억7천만 원만 세금으로 냈다. 외국인 투자자 양도세 부과기준 25%에 미치지 못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아이칸은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칼 아이칸은 소유하고 있던 주식 대부분을 다시 외국인에게 매각했다. 실질적으로 그 주식에 대한 대가는 외국인이 지불한 것이지 한국 자본을 가지고 도망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칼 아이칸의 시세차익에 국내시장은 외국계 자본을 혐오하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외국자본의 투자유치가 어려워지는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시장이 떠안게 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각에서 말하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지켜주는 수호자라는 이미지가 과연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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