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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6 18:52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무상한 시간이 빚어낸 정신의 자취
무상한 시간이 빚어낸 정신의 자취
  • 권동철 전문위원
  • 승인 2015.06.01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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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Fine Art] 한국화가 권의철
▲ History-1414, 52.5×52.5㎝ Mixed media, 2014

이른 아침 새들이 한바탕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미하며 합창이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 나뭇잎 사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따끈하게 덥힌 찾잔 속에 실타래처럼 천천히 열리는 벚꽃의, 차(茶). 그윽한 향기 속으로 시간의 결을 풀어놓으며 생의 멍울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담벼락아래 꽤 오래된 산딸나무 하얀 꽃이 떨어져 소복하게 쌓여 차라리 처연해보였다. 차마 모두 쓸어내지 못하고 듬성듬성 몇 잎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흙 담을 넘어 그리운 이를 찾아 한걸음 달려온 듯 대금(大芩) 산조가락이 그저 수줍기만 한 채 피어난 꽃잎을 흔들었다.

▲ History-1420, 52.5×52.5㎝, 2014

엄중한 가르침 무명 꽃노래

날카로운 기암절벽의 강변엔 벚꽃나무행렬이 둑을 따라 줄지어 서서 장관이었다. 가지를 떠나며 이름을 버린 꽃잎은 미망(迷妄)을 벗어나 평안히 흘러갔다. 산들바람에 나풀거리듯 파란 물결 위를 출렁이며 반짝이다 이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숙연한 그 황홀한 광경을 사람들은 ‘무명 꽃노래’라 말했다. 아련한 정담을 나눈 입술의 온기처럼 그 순간의 교감은 깊었다. 왠지 잡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을 울컥 쥐어흔들었다. 

▲ History-1212, 91.0×72.7㎝, 2012

풍상을 이겨 낸 파르스름한 암벽이끼엔 세월흔적이 얼룩처럼 스며있었다. 다감하게도 나뭇잎 하나가 가는 목소리로 잊혀져간 어느 비망록을 낭랑하게 읽어나갔다.

▲ History-1416,52.5×52.5㎝, 2014

기꺼이 내어놓아 전승된 웅혼한 정신의 글들은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품위와 맑은 심성을 헤아리게 하는 준엄한 지혜의 기록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깎아지른 거친 절벽엔 천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풍화 속에서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장으로 남아있었다. “萬物方作(만물방작), 居以須復也(거이수복야). 만물은 두루 생육되지만, 모두 반드시 제자리인 근원으로 되돌아간다.”<초간본 노자로 보는 무위자연의 삶, 송인행 역저, 문화의 힘>  

▲ History-1420, 52.5×52.5㎝, 2014

고매한 재회 그 숭엄한 정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어느 한 날 우연히 만난 풍경이 있다. 굽이굽이 강물에 길을 터준 고봉준령의 험준한 산세가장자리에 천년노송이 인고의 연륜처럼 굴곡진 허리춤을 턱 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아래는 거짓말처럼 분지가 펼쳐져 아늑했다. 분명 무슨 터였을 것인데 듬성듬성 비석들이 호위병처럼 서 있었다. 풍상과 설한 속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혼(魂)의 비문을 껴안고 소나무와 서로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 History-1501, 52.5×52.5㎝, 2015

그곳엔 황혼이 깃들면 자그마한 연못이 모습을 드러냈다. 잡풀에 묻혀 잠자듯 고요하던 하얀 연꽃들은 붉은 노을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그 속살과 조우하듯 하여 점점 홍련(紅蓮)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자상하게 옛 영화를 전하듯 주변파편들에 새겨진 연꽃봉오리들은 마치 부유스름한 물빛연못의 꽃들과 아름다운 재회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자정(自淨)의 엄숙한 시간을 맞이하는 의식처럼 한 줄기 저녁바람이 멍한 정신을 환기시켜주었다. 그리고 해거름 대자연의 장엄한 교향곡 선율이 어둠에 사라질 때까지 슬프도록 윤기 흐르는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어느 애절한 로맨스를 경청한 새들도 차마 저녁 숲으로 서둘러 날아들지 못했다. 

▲ History-1306, 119.7×119.7㎝, 2013

상산(尙山) 권의철

화백은 ‘History’연작이라는 하나의 작품주제에 40여년을 천착해 오고 있는 비구상한국화가다. 숲과 계곡,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들녘이 해후하는 곳곳 우리 산하의 유적을 그는 화선지를 불리거나 칼로 오려 내거나 또는 찍어서 흔적과 자국효과를 내어 지난한 노력의 산물로 작품을 발표해 오고 있다. 이렇게 자아실현의 구도(求道)처럼 이미지로 우러난 화면은 소박하고 장엄하며 고상하고 조촐하다. 
“나의그림은 대자연에 새긴 혼의 조형언어”라는 그는 “사적지에는 실존인물의 시대적배경과 공덕기념비적 상황 등이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속에 내재된 구체적인 면을 나름대로 분석해서 살펴보면 한 인간의 희로애락, 권선징악,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 등 다양한 내용 등이 요약 정리되어져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며 작업의미를 부여했다.
경북상주출신의 권의철(權義鐵, Kwon Eui Chul)화백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1974년 제23회부터 1984년 제30회까지 국전(國展)에 7회 입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21회 가졌고 마니프(MANIF), France-4 countries fine art(파리, 유네스코) 등 국내외 다수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심사위원장, 운영위원을 역임했으며 미술대전초대작가이고 현재 국전작가회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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