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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5-26 19:55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허민 위메프 창업자 '마술사' 기업가 정신
허민 위메프 창업자 '마술사' 기업가 정신
  • 정회도 타카소 BIZ 대표
  • 승인 2015.01.0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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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도의 타로 경영
▲ 정회도 타카소 BIZ 대표

타카소 BIZ 대표 정회도는 Fortune Teller다.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동시에 기업가 정신을 전공한 그는 부(富)에 대해서도 스토리텔링을 한다. 사람의 운과 부를 동시에 예측하는 Fortune Teller 정회도는 서양의 점성술이자 심리적 도구인 타로 카드와 기업가 정신을 융합한 신개념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고양원더스 독립 야구단이 해체되면서 많은 안타까움 속에 주목 받았던 인물이 있었다. 고양원더스 구단주 허민이다. 위메프 창업자인 허민은 2011년부터 매년 구단운영비 30억원(추정)을 3년간 사비로 지원했다. 말이 지원이지 기부나 마찬가지인 돈이었다. 
허 대표는 2011년 9월 고양원더스 창단을 발표할 때 “나는 야구단을 하려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구단에 대해 누가 뭐라든 개의치 않는다”며 “나 스스로 자랑스러우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과연 위메프 창업자 허민은 어떤 기업인일까? 정회도의 타로 경영으로 알아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허민 대표의 이력을 보면 그가 진정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서울대총학생회장, 벤처기업인, 버클리음대생, 야구선수, 야구단 구단주라는 그의 이력을 보면 동일 인물의 이력이 아닌 듯싶다.
그의 기업가 정신은 타로 카드 1번 매지션 카드와 유사하다.
1번 메이저 타로 카드인 매지션 카드를 보면 테이블 위에 황금동전, 컵, 칼, 지팡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각각 타로 카드를 구성하는 4원소인 흙,물,바람,불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테이블 위에 4원소의 상징물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다재다능함을 의미한다. 
마술사의 머리 위를 보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뫼비우스 띄가 보인다. 4원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 그 힘은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 대표는 1999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했다. 풍부한 자금과 탄탄한 조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허민은 NL(민족민주), PD(민중민주) 같은 학생운동 그룹과도 가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한 건 즉흥적 결정이었다. 친구들과 당구를 치다가 즉흥적으로 출마를 결정하고 총 5명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허 대표는 흔한 학내 연설도, 학우들을 찾아 다니며 한 표를 읍소하지도 않았다. 대신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학생이 많이 모이는 곳에 틀었고, 홈페이지를 제작해 그걸 통해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마술사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남들과 다른 기발한 전략으로 허민은 7명의 후보자 가운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에 올랐고, 2차 결선투표에서도 쟁쟁한 운동권 연합 후보를 7표 차로 꺾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당시 언론은 허민의 당선을 ‘서울대 사상 첫 비운동권 총학생회장 선출’이라며 대서특필했다. 
허 대표는 1년 동안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숱한 조직적 반대에 부딪친 후 ‘내가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건 역부족이다’라고 느낀다. 그 후 자신의 마술사 기업가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창업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의 마술사 기업가정신의 자유분방한 아이디어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 시작은 네오플이었다. 네오플은 2001년 4월 서울대 동기 5명과 함께 차린 벤처기업이었다. 처음부터 네오플이 게임회사였던 것은 아니다. 허 대표가 내놓은 첫 상품은 ‘잠 깨우는 팔찌’였다. 미리 맞춘 시간에 가벼운 전기충격을 줘 잠을 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전기고문을 받는 것 같아 시제품만 만든 채 흐지부지됐다. 허 대표는 “원래 (그런 상황이면) 회사가 망해 없어져야 하는데 친구들이 모여 운영하던 회사다 보니 계속 명맥을 유지했다”고 회고했다.
네오플이 정식으로 선을 보인 계기는 온라인 미팅 게임 ‘캔디바’다. 허 대표는 친구의 소개팅 부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 이후 수능 퀴즈 ‘러브러브스튜디오 Plus Q’와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쿵쿵따 시리즈’ 등 다양한 게임을 추가로 만들었다.
캔디바가 2003년 2월 동종업계 사이트인 ‘넷마블’ ‘D3i’와 함께 ‘쿵쿵따’ 게임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허 대표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 출시한 게임 18개도 모두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2005년 출시한 온라인 야구 게임 ‘신야구’는 캐릭터 디자인을 놓고 일본 게임개발사인 코나미와 법정 다툼까지 갔다. 그 와중에 허 대표도 30억 원의 빚을 졌다.

사업 실패만 18번…“나의 사전에 좌절은 없다”

“실패는 나에게 좌절을 의미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음을 위한 성공 예감이라고 할 수 있죠.” 
옛날 일을 돌아볼 때면 허 대표는 항상 담담하게 말한다. 돌아보면 단번에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학생들이 한 번에 대학 들어갈 때 나는 재수를 해야 했고 사업을 할 때도 18번 실패를 겪었다”며 “그래도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되리란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후 허 대표는 2006년 8월 출시한 게임 ‘던전 앤 파이터’를 통해 반전을 이뤄냈다. 던전 앤 파이터는 출시 2개월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2008년에 가입자 600만 명, 동시접속자 15만 명을 넘기며 최대 흥행작이 됐다. 한때 빚더미에 올랐던 그는 2008년 넥슨이 3800억원을 들여 네오플을 인수하면서 3000억원대 청년 자산가로 탈바꿈했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 때였다.
여기서 그의 자유분방한 영혼의 마술사 기업가 정신이 나타난다. 돌연 회사를 매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허 대표는 미국으로 유학간 데 대해 “평생 쓰고 남을 돈을 벌었지만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길어야 백 년 사는 찰나의 인생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를 돈 많은 사람의 부러운 취미 생활이라고 성급하게 판단 내릴 수는 없다.
마술사는 한 곳에 머물러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계속적으로 영감을 얻어야 하고 그 영감으로 새로운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19번 메이저 타로 카드인 THE SUN 카드의 백마를 탄 소년은 한없이 해맑고 행복해 보인다. 따뜻하고 인자한 태양이 그 소년을 비춰주고 있다. 5월의 화창한 봄날 새로운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THE SUN 카드는 지친 마술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타로 카드이다.
허 대표는 “나는 게임 디렉터 출신이고 게임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서비스를 만들어낸다”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나 스포츠가 비즈니스적 영감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허 대표가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는 고등학교 때의 꿈인 음악을 배우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음악적 재능과 기술이 없던 그는 당연히 버클리음대 입학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받으며 6개월에 걸쳐 버클리대 입학 담당관들에게 이메일 공세를 펼쳤고 마침내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허 대표는 2년간 음악에 대해 공부를 했다. 하지만 본인의 원래 꿈인 야구선수에 대한 열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는 너클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1997년 명예의 전당 헌액)에게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내 결국 그의 제자로 들어가 너클볼을 배우고 야구 선수의 꿈을 다시 키우게 된다.
그렇게 재충전을 하고  2010년 10월 6일 열린 소셜커머스 웹사이트 위메프 공개 기자간담회에 투자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2년 전 네오플을 넥슨에 넘기고 미국으로 떠난 뒤 첫 복귀현장이었다. 그는 “열정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위메프 설립에 약 15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충전된 마술사 기업가 정신의 힘은 소셜커머스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게임적 사고로 세상을 보면서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허 대표의 지원을 업고 위메프는 공격적 마케팅을 전개했다. 웹사이트 오픈 당일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1만4900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에 판매해 매진시키며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당시 위메프가 시내버스 1천 대에 광고를 싣는 등 홍보에만 1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본다. 
이에 힘입어 위메프는 사업 개시 2개월 만에 누적매출 100억 원을 기록하며 티켓몬스터(티몬), 쿠팡과 더불어 ‘업계 3강’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위메프는 사업 시작 후 1년이 지나면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2011년 6월 들어 티몬과 쿠팡이 각각 월 매출 260억 원, 230억 원을 기록한 반면 위메프는 100억 원대에 그쳤다. 해외에서 상륙한 그루폰코리아에 업계 3위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영업 담당 직원 40여 명을 내보내고 방송광고를 끊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 대표는 2011년 7월 위메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이와 함께 30억 원을 유상 증자하는 등 총 500억 원을 더 투자했다. 10월 직원 40%를 내보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마술사의 기업가정신을 강도 높게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위메프는 드디어 소셜커머스업계 1위에 올랐다. 2014년 1월13일 닐슨코리안 클릭 조사에 따르면 위메프는 지난해 12월 순방문자 1274만 명을 기록해 쿠팡과 티몬을 따돌렸다. 거래액도 1500억 원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위메프는 지금도 소셜커머스 3사 중 방문자 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후 허민은 경영권을 당시 위메프 내부에서도 무명에 가까웠던 박은상 영업본부장에게 맡기고 본인은 일선에서 물러난다.
허 대표는 2011년 KBO에 독립구단 제안서를 보냈다. 허 대표는 ‘내가 사회로부터 큰 혜택을 받았고, 덕분에 수많은 실패 끝에 성공을 거뒀으니 이젠 내가 재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주자’는 의도로 독립구단을 창단한다고 말했다.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직접 타로카드 THE SUN 처럼 빛이 되기로 한 것이다.
허민은 원더스에 3년 동안 매년 30억원(추정) 가까이 지원했다. 프로야구 2군팀 운영비를 훌쩍 뛰어넘는 거금이었다. 그럼에도 허민은 바라는 게 없었다. 창단 때부터 감독, 코치, 선수, 프런트 누구 할 것 없이 프로야구팀에서 좋은 제의가 오면 조건 없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첫 시즌인 2012년 이희성을 시작으로 2012년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모두 22명의 선수를 프로구단으로 보내면서도 허민은 이적료를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되레 떠나는 선수에게 격려금 1000만 원씩을 줬다. 
2013년에 허 대표는 미국 독립야구리그 중 하나인 켄암리그의 락랜드볼더스 투수로 정식 등록했다. 데뷔전에서 1피홈런 5피안타로 5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하지만 처음의 실패는 당연하다는 듯이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50세가 될 때까지 메이저리그 진출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허 대표를 기인(奇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확실히 일반적인 기업가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일률보편적이고 표준화 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생각과 행동만 한다면 이 사회는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허민 대표 같은 마술사 기업가 정신의 기업인이 있어야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게임적 사고로 세상을 보면서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허민 대표가 한 말이다.
세상을 즐기면서 살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 허민 대표의 마술사 기업가 정신은 한 곳만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20대 청년들이 본 받아야 할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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