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손민지 기자] “건설 산업 분야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문명이 직면해 있는 많은 인간 안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건설방식의 혁신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바꿔나가려는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및 스마트 건설 솔루션 시스템 비전을 소개하겠습니다.”(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부회장, 2024년 1월 10일 ‘CES 2024’ 기조연설에서)

HD현대가 건설기계의 무인화·자동화에 집중해 건설산업의 미래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은 육상 인프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구현한다는 HD현대의 육상 혁신 비전이다. 물리적 건설 현장을 의미하는 사이트(Site)를 확장한 개념으로, 바다에 이어 인류 혁신의 기반이 되는 육상 인프라로 미래 비전을 확장해 육·해상을 아우르는 '퓨처 빌더(Future Builder)'로서 미래를 구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정 부회장은 미래 기술 선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건설기계장비 시장에서 자동화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중장기 성장전략으로 ‘제조’ 중심에서 ‘기술 중심 경영’으로 체질 전환을 해나가고 있다.

정기선 부회장의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 현실화

그는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 신년사에서 “친환경·디지털 대전환을 맞이해 혁신과 도전으로 흐름을 선도하는 것이 HD현대가 가야 할 새로운 50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해 11월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 열린 전동화센터 개소식에서는 “그룹의 새로운 50년을 이끌어나갈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동화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건설기계 부문에서 오는 2025년 매출 10조원을 올리고 글로벌 TOP 5에 진입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잡았다.

HD현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7개 계열사 중 하나이자, 그룹의 건설기계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정 부회장의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현실화하고 있다. 연구개발(R&D) 기능을 수행하는 HD현대사이트솔루션 기술원을 중심으로 건설기계 전동화, 무인 자율화 등 첨단 기술이 선도하는 친환경 스마트 건설 현장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지형 측량부터 기계조작까지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작업을 무인화·자동화 하겠다는 목표다.

이 회사 오대진 책임연구원은 HD현대의 일원으로서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원격으로 자동차, 보트, 드론, 헬기 등을 조종(RC)하는 게 취미였던 그는 본업인 구조·동역학해석에 사용하는 가상 굴착기 모델과 실물인 유압 스케일 RC 굴착기를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2020년 RC 굴착기를 처음 만든 것이 지금의 디지털 트윈 모델의 시초이며, 지난 1월 중순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 버츄얼 트레이닝센터를 개소한 배경이다.

센터는 무선조종자동차(RC) 모델 실내훈련장, VR 체험존, 원격조종 스테이션, VR 검증 협업 플랫폼 등 총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 중 RC 모델 실내훈련장은 오 책임연구원의 취미생활에서 시작됐다. 건설장비 구조 해석을 담당하는 그는 취미로 RC를 만들다 건설장비 RC 모델 개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굴착기 RC 1대를 만드는 데 1년이 소요됐다. RC 모델은 실제 장비의 14분의 1 크기로 제작됐으며 무게는 30㎏에 달한다.

더불어 해당 센터에서는 RC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 동역학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개발 중이다. 오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은 장비나 설비, 건물 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델을 가상공간 속 디지털 쌍둥이 모델로 구축하는 기술이다. 이 두 모델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실물 모델의 현재 상태를 진단한다. 나아가 고장예측을 통해 고장이 나기 전 사전 대응을 할 수 있게 해주며 고장이 나지 않는 방향으로 제어를 할 수도 있다. 제품 셧다운(고장으로 멈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최적의 상태로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디지털트윈 초기 모델에 해당하는 ‘구조해석’ 연구

“저는 디지털트윈의 초기 모델에 해당하는 ‘구조해석’을 연구하고 있어요. 실제 제품을 만들기 이전에 3D CAD(설계 도면)가 완성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제품이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을지 사전에 검증하고 설계를 수정하는 작업이죠.”

건설기계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제어가 잘못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정교한 제어력과 안전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실물 굴착기의 경우 크고 이를 가지고 직접 시험을 진행하는 것 자체도 위험성이 크다. 이런 허들을 알면서도 건설기계 업계가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재난 지역이나 사고 상황에서 무인 굴착기나 자동화 장비들의 활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 연구원은 “예를 들어 초고지대 광산은 산소가 부족해서 작업자가 장시간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고가의 광물을 캐는 특별한 광산이라면 아무리 비싼 무인 또는 원격장비라도 구매를 하려는 수요가 있을 것”이라며 디지털 트윈 기술 개발 배경 이유를 ‘실내에서 안전하게 다양한 테스트를 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얻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버츄얼 트레이닝 센터는 직원들의 건설장비 운전연습에도 활용된다. 현장에 가지 않고 센터에서 직접 운전해보며 장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오 연구원은 현재 버츄얼 트레이닝센터에서 디지털 트윈 및 VR 기술 등을 연동시켜 실차 장비를 운용하는 것과 동일한 환경을 구축해 임직원들의 건설장비 조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건설장비 개발부터 고객 대응까지 설계, 시험, AS, 영업 등 많은 직원이 중장비 면허를 필요로 합니다. 경기도 안산, 충북 음성에서 진행되는 면허취득 교육이 마련돼 있으나 실차를 타고 운전을 배우는 실습 교육이기 때문에 매우 비싼 교육이고 한 번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도 없죠. 이런 이유로 RC를 활용해 운전 실습을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고안해 RC 실내훈련장을 만들었습니다.”

센터의 또 다른 영역인 VR 검증 협업플랫폼은 인천, 보령, 음성 등 다양한 국내 사업장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현장 작업자, 영업사원, 서비스 직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가상공간에서 만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실례로 메타버스 안에 실차 크기와 동일한 가상 굴착기를 구현해 전문가들이 이것을 보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토론하고 부품 조립 분해 방법을 설명하고 시연할 수 있다. 또 제품 개발 과정에서 지역에 상관없이 가상공간 속에서 정비 자세가 편안한지, 공구가 들어갈 공간이 충분한지 등을 평가하거나, 가상의 운전석에 앉아 계기판이나 버튼 배치 편의성 및 시야성을 평가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다양한 미래기술 개발하고 시험해볼 수 있는 플랫폼 역할

“수익성이 얼마나 될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자동화 기술에 대한 수요는 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질수록 버츄얼 트레이닝 센터의 역할도 커지게 될 것이고, 버츄얼 트레이닝 센터가 이런 다양한 미래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해볼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오 연구원은 “주택, 도로, 항만, 대규모 도심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프라는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로 고객들이 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디지털 트윈 기술 개발 외에도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HD현대사이트솔루션이 개발하고 있는 스마트 건설 장비에 대한 연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개발된 플랫폼은 차세대 건설 장비에 적용, 안정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핵심 스마트 기능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2025년부터 출시할 차세대 통합모델에 적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