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위탁생산’ 특종은 왜 오보로 전락했나
‘코로나 백신 위탁생산’ 특종은 왜 오보로 전락했나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1.06.01 16: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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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확인 없이 잘못 짚어 벌어진 해프닝
<게티이미지뱅크>

[인사이트코리아=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1년 6개월 전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1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방역 초기 우수국가로 자타가 공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잘 쓰고 정부의 단계별 거리두기 조치를 그런대로 잘 수행한 덕택이다. 그러다가 반전이 왔다. 코로나 극복 해결책에는 역시 백신이 열쇠였다. 백신 생산과 공급의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미국은 곧 야구 경기에 100% 관중석 개방을 한다고 한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관중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노마스크 야구경기 관람은커녕 아직도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마스크는 기본이고 손소독제까지 챙겨 하는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5월 21일 기준, 인구 100명당 코로나 백신 접종 건수로 세계 115위라고 한다.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K방역’이란 네이밍이 무색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긴 가뭄에 비 소식 같은 낭보가 전해졌다. 국내 대기업 계열의 모 제약회사가 미국의 코로나 백신 A를 위탁생산 한다는 기사였다. 경제신문의 1면 톱으로 보도된 기사는 단독 보도(특종)였다. 그런데 기사 본문을 읽어보다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기사의 핵심 소스가 익명의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기사의 주체인 해당 국내 기업이나 미국 A기업 관계자의 코멘트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장기업인 해당 국내 기업은 보도가 나가자 마자 공시를 통해 동 기사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쇼룸을 전면 개편하라”

이후 대특종은 큰 오보로 밝혀졌고 결국 그 신문사가 다음날 온라인판에서 관련 기사를 삭제하는 것으로 해프닝은 일단락 되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이 지난 후, 바로 그 국내 제약회사가 미국의 코로나 백신 B를 국내에서 위탁 생산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취재기자는 백신 B를 A로 잘못 짚은 것이다. 시간을 다투는 이른바 뉴스 전쟁터에서 다른 언론사가 보도하기 전에 단독 보도를 하고 싶은 취재기자의 열정과 언론사의 욕심은 이해된다. 그렇지만 독자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기사 작성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확인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은 안타깝고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바로 그 경제신문이 과거 취재기자의 확인 절차를 거치고도 보도하지 않은 특종 기사를 두고 벌어진 에피소드 한 편이다.

1992년 7월초 어느 날, 종합상사 (주)대우의 홍보팀장인 필자에게 특별 지시가 떨어졌다. ‘쇼룸을 전면 개편하라’는 명령이었다. (대우그룹의 본사인 서울역 앞 대우센터빌딩에는 거의 매일 바이어, 정부 고위관리 등 외국손님들이 방문한다. 특히 대우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 VIP들 대부분이 반드시 거치는 코스가 바로 대우그룹에서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제품을 전시하는 쇼룸이다) 기한은 1주일. 홍보팀에서 쇼룸을 관리한 이래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방문하기에 초특급 특별 지시가 내려진 걸까?

부랴부랴 100여개 상품별 무역부서와 20여개 계열사 홍보팀에 연락해 전시 제품을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인테리어와 벽지 등 외관 개보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모 경제신문 출입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의 고위 인사가 조만간 서울을 방문한다는데 혹시 아십니까?”(그 해 초, 김우중 회장 일행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남북 경협의 창구가 자연히 대우그룹으로 정해진 터라 기자도 대우에 확인 요청을 했으리라) 순간 필자는 쇼룸을 전면 개편하라는 소동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홍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금시초문입니다. 혹시 모르니 관련 부서에 알아보고 알려드리지요”라고 말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즉시 상부에 보고했다. 빙고! 추측이 맞았다. 1월말 김우중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발표한 남북경협 사업의 구체적 진행을 위해 경협의 북한측 최고책임자가 일주일간 남한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영광(?)스럽게도 홍보팀 관할의 대우센터 쇼룸도 방문 코스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같은 사실은 정부에서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절대 함구하라는 지시도 함께였다. 내부 직원에게조차 말하지 못했을 정도니 아무리 친한 출입기자라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후 다른 언론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해왔고, 그 때마다 필자를 포함한 홍보실 임직원들은 간신히 ‘모르쇠’ 시늉을 했다.

눈빛으로 통한 특종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7월 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그날따라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 시쯤 됐을 때다. 처음 질문을 해온 경제신문 기자가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홍보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보통은 기자실에 있다가 전화를 걸고 홍보팀으로 오는 것이 관례임) 그런데 옷 매무새가 이상했다. 머리는 물론 와이셔츠가 온통 비에 젖은 것이 아닌가. 평상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차분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감안하면 중대한 용무임에 틀림없었다.

이번에도 필자의 짐작이 들어맞았다. 기자는 방한하는 북한측 고위 인사의 이름과 남한 체류 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 남한 방문의 주요 일정이 대우그룹 계열사 공장 방문 등 대우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로 보면 실로 ‘대특종’ 사안이었다.

보통 그 정도 취재했으면 확인 없이 그냥 보도하곤 한다. 그런데 기자는 필자의 곤란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입기자의 당연한 권리를 홍보맨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정확한 사실을 알고 물어보는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며칠 후면 공개될 사실을 모른다고 잡아떼기도 힘들고. 냉방 시설이 잘 돼 있는 사무실에서 필자는 땀을 흘릴 지경이었다.

그때 필자의 머리 속을 섬광처럼 흐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말은 못해도 눈빛으로 전달하자. 텔레파시는 아니더라도 눈 대화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후 필자의 눈빛을 읽었는지 기자는 더 이상 확인 요청 하지 않고 신문사로 돌아갔다.

초조한 며칠이 흘렀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직도 그 신문에는 1면 특종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북한의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 일행의 방한’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아, 내 눈빛 대화가 실패했구나. 그 기자는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내심 실망과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마음 좋은 사람인지라 이후에도 별 내색 하지 않았고 그 사건은 어느덧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10년쯤 지난 어느 날. 이후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해온 그 기자와 소주 한잔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화제가 당시로 돌아갔다. “그 때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건넸다. 이젠 어엿이 취재 부서의 데스크가 된 그 기자의 답변은 필자를 기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하게 만들었다.

“나는 당시 문 팀장의 눈빛을 분명히 읽었다. 덕분에 오보일까봐 불안해 하는 데스크를 설득해 1면 톱으로 특종 기사를 당당히 올렸다. 그러나 최종 인쇄 직전에 정부 모처로부터 협조 연락을 받은 신문사 최고위층의 진지한 압박성 부탁(?)으로 그 기사는 출고되지 못했다. 대신 신문사로부터 내부 특종상과 거액의 상금을 받았다.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그 때 당신의 눈빛 대화에 감사 드린다.”

이후 그 기자는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고위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가끔 만나 점심이나 저녁때 소주 한잔 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소원해진 것 같다. 백신 접종 이후 만나 회포를 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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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21-06-10 21:01:16
홍보맨에게는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군요~ 이번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