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초원 주인공은 기마민족
유라시아 대초원 주인공은 기마민족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7.05.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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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뿌리는 2500년간 광활한 초원지대 지배한 유목민

유라시아 대륙을 크게 나누어 보면 북극해를 면한 가장 북쪽에 동토(凍土)인 ‘툰드라(tundra)’가 있고, 그 아래 침엽수림지대인 ‘타이가(taiga)’가 있다.

그 아래 북위 40~50도 지역에 남북으로폭이 수백km에 달하는 넓은 띠 형태의 대초원이 있고 그 아래는 사막지대다. 

▲ 몽골 대초원의 게르.<김석동>

침엽수림대와 사막지대 사이에는 아시아동부에서 유럽동부 지역까지 동서로 장장 8000㎞에 걸쳐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만주~몽골고원~카자흐초원~러시아초원~우크라이나~헝가리평원에 이르는 이 지역을 ‘유라시아대초원(스텝·steppe)’이라 하며, 알타이산맥을 기점으로 동부와 서부 초원지대로 나뉜다.

동서 문명 교류의 핵심 통로 ‘초원로’

유라시아대초원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첫째,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광활하고 평탄한 지역이다. 아시아 고원지대 일부를 이루는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형이 초원이나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해주에서 만주일대·몽골·내몽골 등 중국북부와 중앙아시아·남부러시아·우크라이나·헝가리평원 등 동부유럽 등지를 여행해 보면 그야말로 끝없이 광활하고 평탄한 지형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유라시아대초원 지역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용이해, 고대부터 이곳을 가로지르는 ‘초원로(초원길)’라는 기마유목민 전용 이동로가 있었다. 

초원로는 잘 알려진 대로 오아시스로(오아시스길), 해로(바닷길)와 더불어 동서 문명교류의 통로 역할을 해온 실크로드 3대 간선을 구성한다. 이 중 초원로는 세 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존재했던 동서이동로로, 기마유목민족 활동의 중심무대이자 동서 간 문명 교류의 핵심 통로 역할을 담당해왔다. 

▲ 겨울의 몽골 말들.<김석동>

둘째, 유라시아대초원은 전반적으로 비가 적고 건조한 지역이다. 연 강수량은 250~500mm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 연 강수량 250mm 이하를 사막이라고 하니 이 지역의 강수 사정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대초원 남쪽의 몽골고원 남부와 투르키스탄 지역,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강수량이 극히 적어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사막, 키질쿰사막, 카라쿰사막 등 사막화 된 지역이 많다. 

중국 신장 웨이우얼 지역의 투루판은 연 강수량이 50mm대에 불과한 해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1250mm의 비가 오는데도 물 부족 국가라고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물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강수가 일시적이어서 경작이 어렵고 단초(짧은 풀)만 자라기 때문에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이 지역은 연중 기온차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위도상으로는 온대지역이나 북쪽의 추운 침엽수림지대와 남쪽의 뜨거운 사막지대 사이에 있는 지형이라서 그렇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여름에는 영상 40℃까지 오르는 뜨겁고 건조한 날씨를 보이고, 겨울에는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곳이 많다. 극단적인 예로 여름에 영상 45℃, 겨울에 영하 55℃ 기록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일교차도 대단히 크다. 몽골고원에서는 낮에 30℃에 달했던 기온이 밤에는 영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유라시아대초원의 이러한 지역적 특징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착해서 농경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광활하고 풍부한 초지를 활용해 가축을 키우는 유목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라시아대초원의 주인공 유목민(nomad)

 유라시아대초원에서 살아 온 주인공은 바로 유목민이다. 이들은 불가능한 농경생활 등 삶의 여건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유목생활로 살아남았다. 

유목민은 앞에서 살펴 본 대초원의 환경으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해 살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가면서 생활했다. 그들은 드넓은 목초지대에서 말, 양, 소, 염소, 낙타 등 이동하는데 적합한 가축과 함께 물과 목초지를 찾아서, 때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광활한 지역에서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초지가 풍부한 지역과 추운 계절을 이길 수 있는 지역을 찾아 가족이나 소집단을 이루어 끝없이 움직였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es)>에서 스키타이 인에 대해 ‘농경민족이 아니라 유목민이다’ ‘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이다’ ‘도시도 성채도 없이 그들의 집을 직접 끌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도 몽골·투르키스탄·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게르’ 또는 ‘유르트(yurt)'라고 불리는 이동식 주택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초원 지역의 열악하고 엄격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유목민들은 ‘용감하고 유능’한 독특한 인간유형을 형성하게 된다. 우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선 용감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했다. 

또한 대초원에서 가족이나 소집단을 이루어 독립적으로 유목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연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강한 자부심을 갖는 독특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회전체는 강한 자립심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가족이나 소집단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목축을 하지만 외부의 침략 등이 있을 경우에는 즉각 단결하여 집단적인 힘을 발휘해 왔다.

특히 걸출한 지도자가 등장해 세력을 결집하고 외부세력과 전쟁을 하게 되면 순식간에 집단화해 대규모 기마군단을 형성, 가공할 전투력을 발휘했다. 이는 BC 8세기경에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 일대에 스키타이(Scythai)가 등장한 이래 지난 2500년에 걸쳐 전개된 유라시아대초원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대초원의 역사를 써온 이들은 민족과 종족이 다양하게 혼재돼 있으나, 대체로 몽골고원과 그 주변 일대의 ‘몽골인’, 만주·한반도· 동부시베리아의 ‘퉁구스인’, 그리고 동·서 투르키스탄과 서부시베리아 등지의 ‘투르크인’이 그 주인공들이라 하겠다. 

크리스토퍼 벡위드는 <중앙유라시아 세계사(2014, 소와당)>에서 ‘중앙유라시아는 동서로는 압록강 유역과 도하우강 하류 사이…, 중앙유라시아 사람들은 세계문명을 형성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라고 썼다.

초원의 전투 집단 기마군단의 등장

▲ 몽골 전사들이 사용한 활과 화살.<김석동>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유목민들은 말을 키워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면서부터 말은 그들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몽골에서는 4살 경부터 말을 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몽골제국시대에는 2살 때부터 말에 익숙하도록 가르쳤다. 

나무안장, 고삐와 재갈, 등자(발걸이) 등 마구의 등장은 유목민 생활과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말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된 이들은 생활과 사냥 뿐 아니라 전투 목적으로 전장에서 말을 활용하게 됐다. 

강력한 성능의 복합곡궁, 기마전용 검 등 무기가 개발되고 전투 집단으로 변모하면서 기마군단이 출현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세계사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기마군단은 동서 이동과 교역의 통로였던 초원 실크로드를 질주하며 그 전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들 기마군단은 처음에는 중앙아시아·몽골고원·동투르키스탄(중국의 신장 우웨이엘 자치구) 지역에서 세력화한 이후 급속히 동서양에 걸친 대초원지역으로 확산했다. 수많은 정주민족국가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기마군단이 가공할 전투력을 갖게 된 비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동성이다. 기마유목민들은 나무안장과 등자를 발명하면서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생활해오면서 말에 익숙했다. 말들도 비범했다. 몽골고원을 비롯한 초원지역에서 길러진 말들은 지구력과 순발력을 갖춘 강인한 말들이었다. 전시에 몽골제국 기병은 병사 1인이 7~8기의 말과 함께 이동하고 전투하는 놀라운 기동력을 과시했다. 

둘째, 복합곡궁이라는 강력한 활에 삼각철 화살을 장착해 전투무기로 활용했다. 나무와 동물 뼈를 접착해 만든 이 활은 유효 사정거리가 150m이상으로, 당시 기동력과 융합해 공포의 기마군단을 탄생시켰다.  

셋째, 기병이 착용한 전투용 갑옷은 철사를 엮은 쇠 그물 형태로 매우 가볍고 강하게 제작돼 기동성과 전투력을 배가시켰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몽골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철갑옷은 무게가 7kg에 불과해 중세 서양의 기병이 입었던 철갑옷 무게 70kg과 비교된다. 한편, 가야고분에서 발굴된 4세기 초 기병의 철갑옷은 두께 1mm의 얇은 철판을 이어 만든 것으로 무게가 10kg 정도에 불과해 기마군단의 전투력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넷째, 병참기능이 특별했다. 소나 말 등 육류는 건조시키고, 마유는 분말로 만들어 각기 병사가 가지고 다니며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다. 소 한 마리를 말리면 작은 부피에도 군사 한명의 일 년분 식량이 되었다. 물론 보조 식량이 있었겠지만, 쉽게 말해서 전투식량을 자체 수송하는 병참체제였다 할 수 있다. 

다섯째, 기마군단은 일찍이 십진법의 효율적인 군대조직과 엄격한 기강으로 대규모 병력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었다. 스키타이 이래로 이어지는 초원제국은 모두 이 십진법의 군대편성을 근간으로 했다. 

여섯째, 뛰어난 전술이다.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속도전과 널리 전략적으로 배치한 역참 등 광범위한 정보망에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는 유연성 등을 더해 전투력을 극대화했다. 특히 초원제국의 기마군은 파르티안 사법(Parthian Shot)이라는,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향해 활을 쏠 수 있는 독특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격과 후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해 적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우리 겨레의 삶 돌아보게 하는 기마군단

이와 같이 기마군단은 17~18세기 총포 화기가 전쟁의 근본을 변화시켰던 근대 이전에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기동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과시했다.

증기기관 발명 이전 말을 대체할 에너지원이 없었던 시절에 기마군단은 중국·유럽·중동 지역 등의 농업정착민군대를 순식간에 압도해 버리면서 공포의 존재로 각인 되었고 동·서·중앙아시아 대초원 및 유럽을 무대로 역사를 써내려 간 것이다.

기마군단은 스키타이 이래로 만주·몽골·북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아나톨리아·동유럽 등지의 스텝지역에서 수많은 국가를 건설했다. 서쪽으로 진출한 나라들은 흉노·훈·돌궐·위구르·토번·서하·셀주크튀르크·오스만튀르크 등으로 이어지고, 동쪽에서는 선비·5호16국·수·당·요(거란)·금(여진)·원(몽골)·티무르·무굴·후금(청) 등 수많은 초원제국이 건설되었다.

유럽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초원로는 고대부터 기마유목민의 이동경로이자 문명교류 통로의 역할을 해왔다. 선사시대의 암각화, 고분군 등 유적과 동물장식을 비롯한 청동기 유물 및 금장식품, 금관 등 금 문화 유물은 이들이 공유해온 문화적 유산을 웅변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낭당, 솟대, 제천의식 등 초원지대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와 너무나 흡사한 풍습은 우리 겨레의 삶의 흐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특히 이들 기마유목민이 건설한 국가들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 깊은 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조선상고사>에서 몽골고원에서 서쪽으로 진출한 튀르크계 국가의 조상 뻘 되는 흉노가 3000 년 전에는 우리와 형제동족이었고, 동쪽으로 진출하여 수많은 강국을 건설한 여진·선비· 몽골도 아(我)의 동족이라고 밝히고 있다. 

BC 8세기 무렵부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들 기마군단 국가들은 지역·인종·기질·문화·정서·유물 등을 볼 때 BC 2333년 건국된 고조선의 분파과정과 연관하여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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