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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6 18:52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감정-의식-초의식…
감정-의식-초의식…
  • 이기동 발행인
  • 승인 2016.03.0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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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안에 대해 느끼고 반응하는 인간의 마음작용에는 크게 3가지 높낮음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감정’-‘의식’-‘초의식’으로 나뉘는 ‘의식의 3단계’가 그것이다. ‘감정’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면 ‘의식’은 그것보다 조금 높고, ‘초의식’은 의식보다 휠씬 높은 꼭지점에 위치한다.

쉽게 말해 누가 나의 뺨을 때렸을 경우 불같이 화를 내며 똑같이 상대의 뺨을 맞받아 때림으로써 보복하고 응징하는 것이 ‘감정(憾情/ Emotion)’이라면 ‘의식(意識/ Consciousness)’은 뺨을 맞긴 했지만, 곧바로 뺨으로 응수하지는 않는다. 겉으로 표를 내진 않지만, 마음 속에 불쾌감을 품고 앙금을 담아 둔다. 이 경우 쌍방간에 당장 물리적 폭력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훗날 큰 화(禍)로 번질 소지가 농후하다. 
반면, 최고 의식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초의식(超意識/ Supraconsciousness)’은 뺨을 맞고도 겉으로는 물론 마음 속으로도 전혀 동요없이 초연하게 상대에게 관용을 베풀며 용서하는 것이다. 과거 마하트마 간디, 마르틴 루터 킹 목사,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보여준 사랑과 용서, 비폭력의 승리가 단적인 예다.
‘감정’과 ‘의식’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시끄럽고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양떼와 같은 민중을 이끄는 리더가 위기 상황에서 절제력을 잃고 갈팡질팡 한다면 모두가 전화위복은 커녕,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입술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나는 미국인이다!” “나는 프랑스인이다!” “나는 중국인이다!” “나는 일본인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유대인이다!”, 또는 “나는 상사다!” “너는 나의 부하다!” “나의 종교는 ***다!” “너의 종교는 ***다!” “나는 **파, 너는 **파다!” 등의 배타적 분리주의를 앞세워 ‘이중잣대’에 치우쳐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감정’과 ‘의식’의 전형이다.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온갖 테러와 분쟁, 전쟁의 위기도 그 때문이다. ‘적(敵) 개념(Concept of Enemy)’을 전제로 하는 미사일과 핵폭탄, 생화학무기 등은 물론, “70%가 살기 위해 30%는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비인간적 경쟁도 ‘똑똑한 의식(?)’의 산물이다. 같은 인간끼리의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이러한 ‘의식’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초의식’을 가로 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 역시 핵무장이나 싸드 보다는, 지혜와 통찰의 ‘초의식’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이뤄질 것이다. ‘감정’과 ‘의식’에서 나오는 리더십이 각각 하책(下策)과 중책(中策)이라면 ‘초의식’에 기반한 리더십이야말로 진정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상책(上策)인 셈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까지 내주라”고 외쳤건만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폭력과 보복의 끔찍한 악순환만 귓전에 맴돌 뿐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는가. 어리석은 어른들과 지도자들을 보고 비웃지만 아니하면 다행이리라. “삼라만상은 하나이므로 자비로 상생해야 한다”고 설파한 붓다의 중도(中道) 철학도 ‘초의식’에 다름 아니다. 휴머니즘을 강조한 공자의 ‘인(仁)’ 사상도 마찬가지다. 노자는 또 어떤가. “참다운 리더는 매사 무위로 처리하고(聖人處無爲之事), 억지로 하는 함이 없으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爲無爲則無不治)”는 ‘무위(無爲)’의 리더십은 ‘초의식’ 없인 불가능하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란 ‘상선약수(上善若水)’도 같은 맥락이다. “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며(處衆人之所惡),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다투는 일이 없다(水善利萬物而不爭)”는 대목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선한 사람에게도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한다(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그리하여 선이 이루어진다(德善). 신의 있는 사람에게도 신의 없는 사람에게도 신의로 대한다(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그리하여 신의가 이루어진다(德信)”는 ‘도덕경(道德經)’의 다른 구절에서도 노자의 ‘초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초의식’이야말로 사분오열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고 행복하게 하는 존재의 원천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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