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코리아=남빛하늘 기자]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만 25~54세 여성 10명 중 4명 이상(42.6%)은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경력단절 여성 비중은 2019년(35.0%)보다 7.6%포인트나 증가했다.

특히 이들 중 절반에 달하는 49.8%는 경력단절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긴급한 자녀돌봄 상황에서 대응방안의 부재’를 꼽았다. 사회적 지원·제도가 탄탄하지 않은 탓에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 이를 메꾸기 위해 일하는 엄마가 일을 그만두는 경력단절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이슈에 문제의식을 느껴 출범한 회사가 있다. 인적자원(HR) 플랫폼 스타트업 ‘부켓(Bukett)’이 그 주인공이다. 2022년 8월 설립된 부켓은 여성의 생애주기에 맞춰 적합한 일자리를 찾고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지은 부켓 대표는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창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사회활동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이트업(Light-Up)’ 운영사 ‘블루에그’와 퀵서비스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퀵퀵’이 이 대표가 창업·운영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대표 역시 다른 여성들처럼 결혼과 임신·출산을 겪으며 경력단절을 경험해야 했다.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 부켓 본사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만난 이 대표는 “아이가 20개월 정도 됐을 때 ‘다시 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능력 있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이를 계기로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재진출을 위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그는 “시장 조사를 해보니 대학 진학률 1위인 나라에서 여성의 경제 참여율은 최저 수준이라니, 손실이 크겠다고 생각했다”며 “사업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기획을 마친 뒤 2~3년 준비 기간을 거쳐 부켓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부켓은 육아로 경력단절된 엄마들을 타깃으로 한 커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켓 사이트에서는 국내 중소·중견기업, 대기업의 계약직·정규직 등 다양한 기업 및 형태의 채용 정보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우리는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일자리가 필요한 엄마들을 플랫폼으로 모아 자율적으로 채용·구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업 내 여성 인력 확대가 중요해지면서 부켓을 찾는 회사는 더 많아지고 있다. 부켓은 현재 코오롱·삼일제약·한진·부민병원 등 40여개 기업과 협력 중이다. 이 대표는 “재능 있는 직원이 육아휴직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등 낭비되는 여성 인력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부켓 파트너로 참여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로서의 생애주기 고려한 일자리 제공

부켓 커리어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엄마로서의 생애주기를 고려한다는 점이다. 엄마들에게는 아이의 성장에 따른 생애주기가 존재하는데, 이 시기마다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는 정해져 있다”며 “엄마로서의 생애주기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부켓은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2월 국내 패션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와 함께 진행한 ‘번개케어 럭셔리 마켓 WITH 부켓’ 행사가 대표적이다. 부켓은 이 행사를 위해 프로젝트 TF를 꾸렸고, 필요한 인력 모두를 ‘아이 키우는 엄마’로 채용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출산 이후 몇 년씩 경력이 끊겨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엄마들은 갑자기 풀타임으로 일하기 쉽지 않은데, 프로젝트 TF 같은 작은 일거리를 먼저 수행함으로써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경력도 채워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엄마로서의 생애주기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그는 “출산 후 일하지 않은 기간까지 경력으로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아이 성장에 따른 생애주기에 맞춰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당연히 회사로 돌아 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이 대표는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해 남성들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남자들이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당연시 되고 있지 않느냐”며 “여성의 엄마로서의 생애주기가 인정되고, 경력을 갖게 된다면 경제적 책임이 분담돼 부부가 진정한 한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부켓 매거진·랩 운영…올해 컨퍼런스 개최 목표

부켓은 ‘성장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삶을 위한 영감을 전한다’는 목적으로 매거진(Magazine)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매거진을 통해 훌륭한 여성들을 조명하다 보면 ‘김연아 키즈’ ‘박세리 키즈’처럼 그들을 동경하면서 자라는 여자 아이들이 생길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부켓은 지난해 12월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콘텐츠 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사회 재진출 어려움, 하이브리드 형태 일자리의 필요성 등 현재 일자리 문화의 문제를 조명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주요 골자다. 이 콘텐츠는 부켓 매거진을 통해 성동구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구직 희망 여성들에게 발행된다.

부켓은 지속가능한 여성 일자리 문화 연구를 위한 문화 연구소 ‘부켓 랩(Lab)’도 운영한다. 이 대표는 “더욱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여성의 능력에 맞는 기업들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여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이분들을 한 데 모아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게 올해 큰 목표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참여율이 중위권 수준까지 올라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또 해외 진출에 대한 꿈도 꾼다. 그는 “여성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자는 방향성을 갖고 회사를 계속 확장해 나가겠다”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시아 국가들에 진출하는 목표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그냥 하면 뭐라도 된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여태까지 사업을 해오면서 안 되는 일도 많았지만, 거기에서 또 파생되는 기회들이 생기더라”며 “계속 발자국을 앞으로 내놓고 있으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